OPINION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을 위한 소설, ‘변신’을 읽고

1916년 F.카프카의 중편소설 ‘변신’

‘인간소외’는 무엇인가

< Illustration by Hae jin Choi (최해진) >

[위즈덤 아고라 오피니언 / 오민경 ] 도대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것이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 삶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 대답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경제적 자유를 넘어 행복과 직결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외에는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없는 것일까? ‘부’를 위한 경쟁이 심화될수록 현대 사회는 사회적 편견, 차별, 혐오와 소외감이 심화되고 개인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어렵게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복잡성, 비인간성과 개인의 소외를 비판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바퀴벌레로 변신하며 시작한다. 영업사원이었던 그는 평소처럼 출근하려 했으나, 바퀴벌레의 몸으론 자신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었고, 가족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방 안에서 혼자 끙끙대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갔고 결국 출근 시간이 지나자, 회사 지배인이 집에까지 찾아왔다. 고된 시간 끝에 문을 열고 자신의 상태를 가족들과 지배인에게 드러내자 가족들은 놀라 충격에 빠졌고 그레고르가 수금한 돈을 찾으러 왔던 지배인은 놀라서 쳐다보기만 했다. 그레고르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실적과 형편을 고려해 몸이 회복되어 다시 일할 수 있는 처지가 되면 더 부지런히 일할 수 있게 이해해 달라고 지배인에게 빌어보기도 했으나, 지배인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눈 깜짝할 새 집을 나가버렸다. 그레고르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가족들은 차츰 자신들의 경제적 역할을 찾아 나섰다. 평소에는 무기력하게 집에서만 생활했던 아버지도 은행경비로 일하고, 동생과 어머니도 하숙집을 운영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가족이 의존하던 모든 수익과 생계를 책임졌던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자, 그의 사회의 위치는 물론, 가족들과의 관계, 일상이 뒤바뀌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상당한 충격에 빠져 그레고르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특히 어머니는 그를 피해 문을 닫고,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걱정은 둘째치고 가족의 재산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느라 바빴다. 그레고르를 “오빠”라고 불러왔던 동생 그레타도 점점 직접적으로 그를 벌레 취급하듯이 “저것”, “이것”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심지어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없애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그를 향해 사과를 던져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그레고르가 그레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에 정신을 빼앗겨 거실로 나오자, 가족들은 깜짝 놀랐고 집을 보러 왔던 하숙인들도 충격에 빠져 당장 방을 해약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결정을 내린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내쫓아내야 한다고 결정한다. 등에 박힌 썩은 사과로 인해 기어오르는 것은 물론 평평한 바닥도 기어 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이미 쇠약해진져 있던 그레고르는 끝내 그날밤 방 안에서 혼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레고르의 죽음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육체적으로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치명타였지만, 결국은 그동안 시달렸던 정식적인 고통과 내적 갈등이 그의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는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가치와 존엄성을 찾는 것에 실패했고, 음식을 거부하며 죽음을 선택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가치,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언가를 마시기 위할 때 쓰는 컵이 깨지면 버려지게 된다. 이것은 이 물건의 용도가 있기 때문인데, 목적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 쓸모가 없어지니 어쩔 수 없이 폐기 처분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쉽게 버릴 수 없는 존재이며, 물건처럼 버려서는 안 된다. 컵과 같이 물건은 특정한 용도와 목적이 정해져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레고르는 가족들에게 컵과 같은 존재와 다름이 없었다. 컵이 무언가를 담는 용도인 것처럼 그레고르는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돈을 벌어왔고,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니까, 깨진 컵처럼 버림받았다. 지배인이 집에 찾아왔을 때도 걱정이 되서가 아니라, 영업사원인 그가 전날 수금했던 돈을 입금하지 않아 돈을 갖고 도망갔을까 하는 의문에 집을 찾아왔다. 바퀴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모습을 본 후에도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어차피 일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쓸모없는 물건과 같이 보았기 때문에 도망친 것이다. 그레고르는 그동안 아무리 고되게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자신의 업무능력과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고, 심지어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완전히 고립되어 생활했다.

살다 보면 우리 모두 변신을 꿈꾸게 된다. 외적으로든 내적이든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보고 싶다는 심정을 가지기 마련이다. 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거나, 똑같이 돌아가는 하루하루가 지루하거나,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변화를 꿈꾼다. 아마 그레고르도 이러한 이유들로 변신을 꿈꾸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생활하였기 때문에, 만약 그 일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가족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을 것이다. 단지 자신이 가족에게 현금인출기 같은 존재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지, 내가 일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가족에게 자신의 존재는 무엇일지 궁금했을 것이다. 아마 가족들이 돈을 벌어주지 못하게 돼도 자신을 사랑해 주고 믿어줄 수 있을지 실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벌레로 변하는 순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가족이나 회사에서 그레고르는 돈을 버는 기계였을 뿐이었다.

그는 이미 인간이었을 때도 바퀴벌레 같은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바퀴벌레로 변신했을 때 자신의 존재감이 더 확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이었을 때는 ‘인간답게’ 살지 못했던 그레고르가  바퀴벌레로 변신했을 때는 ‘벌레답게’ 살 수 있게 된다. 벽을 기어 다니고, 바닥에서 자면서 생활하고, 썩은 음식을 먹는 것처럼 바퀴벌레의 몸으로 생활하는 것에 그레고르는 인간이었을 때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함을 느꼈다.

변신할 수 있는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왜 그레고르는 하필 바퀴벌레로 변하였는가? 바퀴벌레는 대부분이 혐오하는 존재로, 사람들은 이를 보면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거나, 죽이려고 든다. 바퀴벌레로 변한 후 사람이 아닌 몸으로 생활하는 것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도 있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그레고르를 소외되게 했던 것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혐오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면 놀라 도망가고, 가족들조차 자신의 근처에 다가가는 것을 혐오하니 그가 경험했던 외로움과 상처는 굉장히 컸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레고르가 바퀴벌레로 변신하기 전에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람이었을 시절에도 가족들에게는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로 취급받고, 회사에서는 영업직으로 일해 돈독한 동료들도 없었을뿐더러 그레고르를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어쩌면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희망과 행복을 잃어 바퀴벌레 마찬가지인 삶을 살아온 것 아닌가? 또한 그레고르가 바퀴벌레의 몸으로 변한 아침, 그는 변해버린 자신의 몸을 보고 처음엔 살짝 당황하는 듯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가장 마음에 걸려했던 것은 출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레고르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책임은 경제적 능력이었였으며, 이것이 그의 존재의 가치였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이미 벌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 바퀴벌레로 변해버렸을 때 놀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여 가족을 위해서라면 365일 1년 내내 아침 일찍 새벽에 나가 저녁에 들어와 힘들게 일하며 집안의 모든 생계를 책임졌지만, 가족들은 이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레고르를 심하게 배척했다. 반대로 만약 주변 사람들이 그레고르를 배려하고 도와주었다면, 그의 심리적인 고통을 덜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레고르가 가족들과 소통하려 노력했다면 관계 간에 갈등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바퀴벌레로 변한 아침, 그는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바로 알리려고 조차 하지 않았고, 방 안에서 혼자 애쓰며 출근하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신의 상태를 숨기려고 하고 방 안에서 단절된 생활을 하고, 그 바깥에 나가볼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입장을 고려해 그랬을 수도 있으나, 만약 갈등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방 안에만 갇혀 생활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레고르가 더 이상 돈을 벌어올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가족들은 형편이 부족해 막대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다. 오히려 직업을 찾아 나서고, 오래전부터 할 수 있었던 하숙집을 운영하게 된다. 자신 없이도 경제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그레고르는 이것에 대한 조금의 의문도 품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혼자 외롭게 생활했다. 이러한 그레고르의 의사 표현과 소통부족은 그의 소외를 더욱 심화시킨 요소이다. 아마 그레고르가 더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도움을 청했다면, 그의 비참한 생활과 고통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소외는 보편적인 경험으로 누구나 살다 보면 겪어보게 된다. 이것은 친구, 직장, 가족, 주변 사람들, 즉 사회적으로부터 경험하는 고립, 무시, 무언가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 같은 상태를 나타난다. 사회적 연결부족이나 소통부족, 차별 등 여러 가지 이유들로 발생하며 막대한 정신적인 고통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아무리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게 노력하더라도, 어딜 가든 고립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사회적 위치, 편견, 성별, 종교, 인종이든 사람들은 지금도 수많은 이유로 소외를 당한다. 그러나 최대한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우리 모두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소통을 해야 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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