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영화 속 경제학

< 일러스트 출처 > https://x.com/UniversalPicsKR/status/2051522372277358746?s=20 

[위즈덤 아고라 / 윤채원 기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에게 고향 이타카는 긴 여정의 유일한 목적지다. 즉 이 긴 서사시는 ‘집에 가기 위한 10년 동안의 목숨 건 생존기’로 요약된다.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은 진퇴양난의 위험 구역을 지나야 했다. 한쪽으로 가면 배 전체를 삼키는 거대한 바다 소용돌이(카립디스)를 만나 전원 수장될 위기에 처하고, 반대쪽으로 붙으면 6개의 머리를 가진 바위 괴물(스킬라)에게 선원 6명을 바쳐야만 했다. 결국 그는 배 전체가 전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6명의 희생을 감수하고 괴물 쪽을 택해 해협을 탈출했다. 여기에 들으면 빠져들어 배를 바위에 박게 만드는 세이렌의 치명적인 노래 유혹까지 견뎌야 했고, 여신 칼립소의 섬에서는 무려 7년 동안이나 발이 묶였다. 그동안 고향 이타카에서도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한 구혼자들이 몰려들어 재혼을 강요하자, 아내 페넬로페는 “시아버지의 수의(장례용 옷)를 다 짜면 재혼하겠다”고 약속한 뒤, 낮에는 실을 짜고 밤에는 이를 몰래 풀면서 낮과 밤을 오가는 눈속임으로 10년을 버텨냈다. <오디세이>는 결국 피해갈 수 없는 희망의 손실과 고난을 견뎌낸 떠난 자, 오디세우스의 시간, 그리고 약속을 믿고 자리를 지킨 남겨진 자, 페넬로페의 시간이 교차하며 비로소 목적지에 도달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첨단 기술기업과 그 투자 시장이 처한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로봇 같은 딥테크 기술은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시장의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다. 치열한 연구개발과 끊임없는 경쟁과 시행착오, 시제품 제작과 검증이라는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시기 기업은 막대한 개발비를 계속 지출하지만 당장 벌어들이는 수입은 거의 없다. 기술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정작 기업의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는 구간, 산업계에서는 이 혹독한 시기를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이라 부른다. 

문제는 현행 금융 시스템의 시선이다. 시중 은행은 재무제표의 영업이익이나 담보 같은 ‘눈앞의 확실한 숫자’를 요구하지만, 초기 기술기업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뿐이다. 그렇다고 정부나 투자자가 모든 기업에 무차별적으로 돈을 집어넣을 수도 없다. 가능성이 희박한 사업에 자금을 쏟아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무작정 돈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진흙 속에서 원석을 골라내듯 기다릴 가치가 있는 기술을 정밀하게 선별하고, 그 가능성이 결실을 맺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낸 방식은 여기서 중요한 힌트를 준다. 아름다운 노래로 배를 난파시키는 세이렌의 구간을 지날 때,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몸을 돛대에 밧줄로 꽁꽁 묶게 했다. 순간의 유혹이나 공포에 흔들릴 자신을 알았기에, 의지력에 의존하기보다 장기적인 목표를 지켜낼 ‘제도적 장치’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기술혁신 역시 단기 성과나 시장의 조급함이라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기업에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는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라는 밧줄이 필요하다. 

시간의 문제는 2026년 8월 현재, 글로벌 경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AI 버블론’과도 맞닿아 있다. 시장에서는 “지금이야말로 AI 거품의 진짜 위험 구간에 진입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이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첨단 반도체, 전력 인프라로 쏟아져 들어갔지만, 막상 AI 서비스가 창출하는 실제 수익화(Monetization) 속도는 투입된 자본의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채권 시장과 고금리의 여파가 시장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동안 빅테크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AI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해 왔다. 하지만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미 재무부는 늘어난 국채 이자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 단기채 발행을 늘리는 등 긴급 처방을 이어가고 있고, 중앙은행 역시 과거와 같은 무제한 양적완화(QE)로 돈을 풀어 시장을 구원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였다. 자금 조달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졌는데 정작 AI의 실질 생산성 입증은 지연되면서, 시장은 “이 거대한 투자를 과연 회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IMF와 OECD 역시 AI의 장기적 생산성 향상 잠재력은 인정하면서도, 시장의 과도한 기대가 현실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자산 가격이 순식간에 급락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위험을 지적한다. 만약 이 버블이 흔들린다면 그 파장은 단지 기술기업 몇 곳의 실적 악화에 그치지 않는다. 빅테크 주가 폭락을 시작으로 금융권의 채권 부실, 스타트업 자금줄 경색, 그리고 기술 생태계 전체의 유동성 위기로 번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낙관으로 돈을 퍼붓는 것도, 공포에 질려 투자를 완전히 거두어들이는 것도 아니다. 냉정한 판단력으로 진짜 가치 있는 기술을 선별하고, 그 기술이 버블의 경련을 버텨내고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받쳐주는 금융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실제 정책으로도 구체화되었다. 금융위원회는 8,800억 원 규모의 초장기기술투자펀드를 발표하고, 차세대 반도체와 첨단 바이오처럼 상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기술기업에 최대 16년 동안 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전체 자금의 77%인 6,800억 원은 정책자금으로 마련해 정부가 먼저 위험을 부담하고 민간자금을 끌어들이는 구조다. 성균관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신준석 교수도 서울경제 칼럼에서 <오디세이아>를 소재로 비슷한 문제를 짚었다. 혁신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보다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견뎌내는 시간이 중요하며, 재무제표와 담보만으로 기술기업을 평가하기보다 기술과 사람의 가능성을 함께 봐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공공금융이 먼저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민간자금도 뒤따라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인내자본은 모든 기업을 무조건 기다려주는 돈이 아니다. 실패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성공했을 때 만들어낼 가치가 큰 기술이라면 그 가능성을 시험할 시간을 주는 자본이다.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고향 이타카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긴 항해의 풍랑을 견뎌낸 본인의 의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그가 돌아올 자리를 지켜준 페넬로페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죽음의 계곡과 버블의 폭풍을 지나 시장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누가, 얼마나 현명하고 끈기 있게 기다려 줄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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