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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아고라 / 한동욱 기자]
지난 글들을 통해 데이터가 인공지능(AI)이라는 엔진을 돌리는 연료가 되는 과정(1주차), 그리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을 읽어내는 방식(2주차)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우리의 시선이 개인의 스마트폰 화면이라는 ‘작은 세계’에 머물렀다면, 이번 주에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거대한 물리적 공간, 즉 ‘도시’로 시야를 넓혀보려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자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한 도시는 지금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의 도시가 콘크리트, 아스팔트, 철도로 이루어진 ‘뼈대’ 중심이었다면, 현재의 도시는 보이지 않는 ‘신경망’을 갖추며 진화 중이다. 그리고 이 신경망을 흐르는 핵심 물질이 바로 공공데이터다. 개인의 사적인 데이터가 넷플릭스의 추천 목록을 바꾼다면, 시민들의 공적인 데이터는 어떻게 도시의 미래를 바꿀까?
수백 년 동안 도시는 인구가 늘어나면 도로를 더 넓히고 아파트를 더 높이 짓는 ‘물리적 팽창’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하지만 공간은 유한하고 자원은 고갈되기 마련이기에 이 방식은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차가 막힌다고 해서 무한정 도로를 넓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에는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구급차가 출동하고, 범죄가 일어난 뒤에야 순찰을 강화했다. 그러나 현재의 도시는 스스로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위해 교량, 신호등, 쓰레기통에 센서를 달고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물리적 팽창이 멈춘 자리에 데이터의 연결이 피어나는 것, 이것이 바로 스마트시티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이미 통신사, 카드사 등 민간 기업들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스마트시티의 신경망이 사기업의 데이터가 아닌 공공데이터를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간 데이터는 필연적으로 ‘수익성’이 있는 곳으로 편중되기 때문이다. 배달 앱이나 차량 호출 서비스의 데이터는 구매력이 높은 번화가나 직장인 밀집 지역에 집중된다. 만약 이러한 데이터로만 도시를 설계한다면, 저소득층, 노년층, 외곽 지역은 시스템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데이터 맹점(Blind spot)’이 되고 만다. 반면 가로등, 상하수도, 보건소, 대중교통 이용 기록 등의 공공데이터는 이윤과 무관하게 도시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다. 소외되는 곳 없이 온전한 도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수익성 없는 데이터’의 흐름이 반드시 필요하다.
테라바이트(TB)나 페타바이트(PB) 규모의 빅데이터를 단순히 쌓아두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데이터가 마법처럼 작동하는 순간은 서로 다른 성격의 데이터가 결합하는 ‘융합(Mash-up)’의 단계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의 ‘부엉이 버스’다. 과거에는 공무원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소규모 설문조사에 의존해 노선을 결정했지만, 지자체의 교통 데이터와 통신사의 유동 인구 데이터를 결합하자 변화가 생겼다. 새벽 시간대 시민들이 이동하는 정확한 경로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안전 분야도 마찬가지다. 범죄 기록과 가로등 밝기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면, 조명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지역을 정확히 찾아내 가로등을 자동 제어할 수 있다. 이질적인 데이터의 결합을 통해 도시는 시민의 문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내놓는다.
현재의 스마트시티가 문제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단계라면, 미래의 스마트시티는 문제를 ‘예측’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예측이 중요한 이유는 사후 수습 비용보다 예방 비용이 압도적으로 적으며,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붕괴한 다리를 복구하는 데는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미래에는 다리에 부착된 미세 진동 센서가 “3개월 뒤 붕괴 위험이 있다”고 미리 경고한다. 하수도의 폐수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특정 지역의 전염병 확산 추이를 환자가 급증하기 2주 전에 잡아낼 수도 있다. 미래에는 사고 후의 ‘탄식’ 대신, 데이터에 기반한 ‘확신’과 ‘선제적 대응’이 일상이 될 것이다.
물론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도시가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것은, 반대로 도시의 수많은 CCTV와 센서가 나의 동선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면 인식 기술, 결제 내역, 교통카드 동선이 하나로 통합될 때 우리는 편리함 속에서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국가나 거대 기업이 이 데이터를 통제 수단으로 악용한다면, 스마트시티는 조지 오웰이 경고한 ‘빅브라더(디지털 감옥)’로 변질될 수 있다. 따라서 스마트시티의 완성은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공공의 안전’이라는 두 가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
우리가 데이터를 통해 도시를 똑똑하게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결국 기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돕는 든든한 도구일 때 비로소 가장 빛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