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및 출처 : OpenAI의 DALL•E 제공>
[위즈덤 아고라 / 한동욱 기자] 올해 전 세계가 쏟아내는 데이터의 양은 약 221제타바이트(ZB)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감이 잘 오지 않는 숫자다. 분명한 건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데이터가 새로 쌓이고, 그 대부분이 우리가 검색하고 클릭하고 결제하고 화면을 넘기며 남긴 흔적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 데이터의 약 90%는 표 한 칸에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형태로 흩어져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데이터는 이렇게 넘쳐나는데, 왜 어떤 기업은 그 데이터로 시장을 휘어잡고 어떤 기업은 데이터에 파묻혀 길을 잃을까?
먼저 시장을 보자. 글로벌 빅데이터 분석 시장은 올해 약 4,477억 달러 규모로, 2034년에는 약 1조 1,800억 달러까지 세 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전 세계 기업의 97% 이상이 빅데이터에 투자했고, 10곳 중 8곳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데이터 분석이나 AI에 기댄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데이터 자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여기서 크게 달라진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데이터의 양과 속도가 사람의 직관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는 것, 다른 하나는 AI와 머신러닝이 그 데이터를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판단’으로 바꿔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는 직관만으로 부족할까? 그것은 시장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하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하고 앞날이 불확실할수록, 한 번 잘못 짚었을 때 치르는 대가는 커진다. 예전에는 경험 많은 경영자의 ‘감’이 곧 경쟁력이었지만, 수억 명의 행동이 1초 단위로 바뀌는 환경에서 사람 한 명의 직관으로는 그 흐름을 따라잡기 어렵다. 반면 머신러닝은 쌓인 데이터를 학습해 고객의 행동과 매출을 꽤 정확하게 내다보고, 그만큼 위험은 줄이고 기회는 키운다.
정리하면 이렇다. 데이터가 기업의 생사를 가르게 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 곧 생존의 조건이 됐고, 그 판단을 만들어내는 재료가 바로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숫자를 보자.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보고서 「The Age of Analytics」에 따르면, 데이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새 고객을 얻을 확률이 23배, 기존 고객을 붙잡을 확률이 6배, 이익을 낼 확률이 19배 높았다. 개인화와 AI를 함께 쓰는 영업·마케팅 조직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1.7배 높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왜 생길까? 가장 정확한 예시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가입자가 약 8,000만 명이던 2016년에 추천 알고리즘이 고객 이탈을 막아주는 것만으로 해마다 약 10억 달러의 가치를 만든다고 추산했다. 지금은 가입자가 3억 2,500만 명을 넘었으니, 그 가치는 더 커졌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실제로 사람들이 넷플릭스에서 보는 콘텐츠의 약 80%는 직접 검색해서가 아니라 추천을 통해 찾은 것이고, 가입자가 떠나는 비율도 약 2%로 경쟁사(3~5%)보다 한참 낮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왜 이렇게 앞서갈까? 흔히 “볼 게 많아서”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무기는 방대한 콘텐츠가 아니라 그중에서 딱 맞는 것을 골라 보여주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다. 넷플릭스는 2017년 별점 평가를 버리고 ‘실제 행동 데이터’로 갈아탔다. 무엇을 클릭하는지, 얼마나 오래 보는지, 어떤 시간에 어떤 기기로 보는지, 무엇을 그냥 지나치는지. 이런 사소한 움직임을 해마다 수천억 건씩 기록한다. 어떤 작품을 직접 만들지 정할 때조차 데이터로 흥행을 예측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부터 「오징어 게임」, 「웬즈데이」까지, 잇따른 성공 뒤에는 사실 ‘감’이 아니라 데이터가 있었다.
그럼 이 데이터는 왜 경쟁사가 쉽게 넘볼 수 없는 벽이 될까? 한 번 돌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선순환 때문이다.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가 쌓일수록 추천이 정교해진다. 추천이 정교해지면 고객은 떠날 이유가 없고, 머무는 고객은 다시 새로운 데이터를 남긴다. 이 바퀴는 돌면 돌수록 빨라진다. 그래서 경쟁사가 같은 만큼의 데이터와 학습 시간을 쌓기 전에는 좀처럼 거리를 좁히기 어렵다. 데이터가 그저 쌓아두는 ‘자산’을 넘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경쟁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기서 데이터의 힘이 이렇게 분명한데, 왜 대부분의 기업은 넷플릭스가 되지 못할까?
현실은 냉정하다. 빅데이터 프로젝트의 실패율이 85%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다. 포춘 1000대 기업의 98.8%가 데이터에 투자했지만, ‘데이터로 움직이는 회사가 됐다’고 답한 곳은 37.8%뿐이다. 돈은 쏟아붓는데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대개 기술이 아니라 그 바깥에 있다. 분석가들은 일하는 시간의 80%를 데이터를 찾고 다듬는 데 쓰고, 다룰 사람도 늘 모자란다. 더 깊은 곳에는 문화와 관리의 문제가 있다. 아무리 좋은 도구도 데이터를 믿고 결정에 쓰는 습관이 없으면 멈춰 선다. 관리가 허술하면 대가는 크다. 메타와 우버, 브리티시 항공은 막을 수 있었던 관리 실패로 수억 달러의 과징금을 물었다.
결국 경쟁력은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게 아니라, 그것을 결정으로 바꿔내는 힘이다. 쌓는 것은 시작일 뿐, 승부는 그다음이다.
데이터는 이제 누구나 가진 자원이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양이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 판단으로 바꾸느냐다. 넷플릭스처럼 쌓인 데이터가 더 나은 결정을 부르고, 그 결정이 다시 데이터를 키우는 선순환에 올라탄 기업은 좀처럼 따라잡히지 않는다.
반대로 데이터를 산더미처럼 모아도 그것을 믿고 결정에 반영하는 문화가 없으면, 데이터는 비용만 남기는 짐이 된다. 승부는 ‘데이터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데이터로 무엇을 결정하는가’에서 갈린다. 데이터가 경쟁력인 시대, 그 경쟁력의 진짜 이름은 데이터를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다.
[위즈덤 TECH] 인공지능(AI)은 현대 사회에 아주 강력한 엔진입니다. 그리고 이 엔진을 움직이는 연료는 데이터입니다. 우리가 매일 누르는 ‘좋아요’, 인터넷 검색 기록, 스마트폰 위치 정보까지, 무심코 생성한 데이터들은 즉시 AI를 학습시키고 진화시키는데 핵심 자원이 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며, 우리의 일상, 산업, 미래를 혁신하고 있는지 알아볼 예정입니다. 동시에 편안함 뒤에 숨겨진 데이터 편향성, 사생활 침해, 저작권 논란 등 우리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윤리적인 문제들도 함께 고민합니다. 데이터가 인공지능이 되는 과정부터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까지, 한동욱 기자의 ‘위즈덤 TECH’와 함께 일상 속 AI의 세계를 차근차근 탐험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