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터키), ‘금리인하 역주행’
튀르키예 물가 상승률,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
에르도안 대통령 “튀르키예(터키) 경제 매우 좋다”
[위즈덤 아고라 / 전시현 기자] 튀르키예(터키)의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터키의 공식 통계 조사기관인 투르크 스탯은 지난달 3일, 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73.50%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교통비가 107.6%로 가장 많이 올랐고 식료품비는 91.6%, 생활용품비는 82.08% 상승했다. 의료비는 37.74%, 의류비 29.8%, 교육비 27.48%, 통신비는 19.8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터키는 만성적인 고물가에 시달려 왔으나,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유발한 경제 위기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곡물 가격 급등까지 겹쳐 물가가 급등세를 보인다. 특히, 올해 1월 최저임금을 50% 올리고 가스·전기·도로 통행료·버스 요금 등을 줄줄이 인상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일반적인 경제 논리와 달리,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공개적으로 중앙은행에 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중앙은행 총재를 여러 차례 경질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인하로 리라화 가치를 낮추며 수출 성장에 도움이 되고, 이는 국가 무역수지 적자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저금리’를 고물가에 대응하는 새로운 경제정책으로 제시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치솟은 물가를 낮추고자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는 다른 국가와 상반되는 행보다. 이에 중앙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기준금리를 인하해 19%이던 기준금리를 14%로 낮췄다.
그는 “터키의 경제는 매우 좋다”라고 주장하였지만,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통화의 가치가 하락하면 물가가 오르고,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한 악영향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저금리 집착에 터키 화폐 리라화 가치는 곤두박질쳤고, 이는 물가상승으로 이어졌다. 로이터통신은 “터키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은 중앙은행이 에르도안 대통령이 추구하는 금리인하를 시작 후 리라화 가치가 추락했던 지난가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달러 대비 터키 리라화 가치는 지난해 무려 44%가 하락했고, 올해에는 약 20%가 추락했다. 지난해 초 리라화의 가치는 1달러당 7.5리라에 달했지만, 이날 정오 기준 터키 리라화는 1달러당 16.67리라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또 지난해 11% 이상에 달했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둔화 조짐도 나타났다. 터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GDP 성장률은 1.2%로, 지난해 4분기 성장률 1.5%보다 0.3% 포인트 줄었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나고 수입이 줄어 무역수지가 개선된다. 그러나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2010년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춰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는 방식의 정부 개입을 비판하였다. 또한 골드만삭스 분석가들은 “저금리·리라화 가치 하락이 수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지나치게 높은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세력 약화를 부분적으로만 상쇄할 뿐”이라며 터키 경제성장 둔화 가능성을 경고했다.
터키와 다르게 최근 많은 국가들은 자국 통화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 중이다. 코로나19로 물가 급등세가 나타나자 자국 통화 가치를 높이며 수입품 물가를 낮추려는 것이다. 미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 간의 금리 격차가 커지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 따른 유럽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1 유로의 가치가 1 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와 멕시코 등은 금리 인상을 실천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5차례 금리를 인상하였고, 하반기에도 추가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자칫 급격한 금리 인상이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켜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 속 지속적인 물가 상승이다.
중국도 터키처럼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 인하 등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터키 측 요청과 국립국어원 결정에 따라 터키 공화국의 국명 표기를 기존 ‘터키'(Turkey)에서 ‘튀르키예'(Türkiye)로 변경했다. 터키 측은 영어단어 ‘터키'(turkey)가 ‘칠면조’ 뿐만 아니라 ‘실패작’ ‘겁쟁이’를 뜻하는 속어로도 쓰이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작년 말부터 영문 국명 표기를 ‘튀르크인의 땅’을 뜻하는 ‘튀르키예’로 바꿔줄 것을 국제사회에 요청했고, 유엔은 이달 1일 국호 변경 신청을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