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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즈덤 네이처 ]기억하고 싶은 기억, 기억 하기 싫은 기억의 차이

< PIXABAY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전서윤 기자] 기억은 어떻게 우리 뇌에 저장되고 불러오게 되는 걸까? 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은 오래 기억에 남지 않지만 기억하고싶지 않은 충격적인 기억들은 왜 오래 기억에 남게 되는 걸까? 

<카이스트 제공>

장기간 강화(LTP: Long-lasting Potentiation)는 기억의 핵심 매커니즘이다. 두 뉴런이 시간상으로 동시에 활성화되면 시냅스 연결이 강화될 것이라는 ‘시냅스 가소성’의 가설이 특정 시냅스에서 실제로 증명 되었다. 우리의 학습 시스템은 크게 일화 기억 시스템과 의미 기억 시스템으로 구분된다. 

일화 기억 시스템은 해마라는 뇌 영역을 중심으로 한다. 이는 우리가 경험한 상황을 사진을 찍듯이 저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도의 코너를 돌아야하는 구간에서 돌자마자 다른 사람과 부딪힐 뻔하였다면 다음날 같은 복도에서 다른 사람이 있나 한번 살펴 볼 것이다. 일화 기억은 빠르게 저장된다는 점에선 효율적이지만, 간섭에 의해 쉽게 지워지는 한계가 있다. 쉽게 말해 까먹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처음 하는 일에 있어서는 머뭇거리고 실수를 하게 될 수도 있는 반면,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게 된다면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뇌에서 학습을 하게 된다. 또한 나중에 비슷한 형식의 일이 주어졌을 때에 그 일을 해결하는 방식이 습관처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반복되는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통계적 규칙에 대한 기억을 의미적 기억이라고 하며, 이것이 ‘개념적 지식’의 본질이라고 한다. 신피질에 저장된 개념적 지식은 해마에 저장된 일화 기억과 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진다. 

개념적 지식은 일화 기억과 달리 추출되는 과정에서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안정적이라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또 기억이 매우 구조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를 갖게 되어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헬스 트레이너들은 헬스를 처음 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어떠한 운동들이 어떠한 부위를 자극하는지 잘 알고 있고 만약 특정 운동기구가 없는 헬스장에 갔을 때 다른 운동기구지만 같은 부위를 운동시킬 수 있는 운동기구를 잘 찾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런 기억들이 안 지워진 다해도 트라우마는 차원이 다르다. 다섯 살 때 겪었던 일을 자세히 말해보라고 했을 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혹은 그때의 감정을 자세히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트라우마는 과거에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을 잊지 못하고 비슷한 상황을 겪거나 상황을 떠올릴 만한 장소, 사람, 환경 등을 접하게 되었을 때의 이상행동을 말한다. 

트라우마는 뇌의 무의식을 담당하는 ‘편도’와 의식을 담당하는 ‘해마’가 정상적으로 협업을 못할 때 발생한다. 트라우마가 생기는 상황에 처하면 편도가 과하게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해마는 억압된다. 즉, 이러한 사건, 사고, 상황 등의 기억은 대부분 편도에 무의식적인 감정형태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글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오른손, 혹은 왼손을 쓰는 것, 그리고 불안한 상황에 입술을 뜯거나 다리를 떠는 형상처럼 무의식적인 감정과 기억 때문에 트라우마를 떠오르게 하는 환경을 접하면 자신도 모르게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트라우마의 기존 치료법으로는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 (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EMDR)’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환자가 기억을 떠올렸을 때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며 시각적 자극을 주는 방법으로 환자에게 이러한 양측성 자극을 주면 공포기억이 감소하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 치료법의 원리는 밝혀진 바가 없었지만 지난 2019년 기초과학연구원(IBS)팀이 EMDR을 생쥐에게 적용하여 치료효과 원리를 밝혀냈다. 

이 연구는 특정 파장의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신경세포에 넣은 뒤, 빛을 이용해 신경세포를 활성하고 또 억제하는 기술인 광유전학 기법을 활용했다. 그리고 뇌에서 안구운동 등을 담당하는 상구와 상구에서 오는 신경신호를 받는 중앙 내측 시상핵(MD), 공포기억이 저장되는 편도체로 이어진 신경회로가 공포기억을 관장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생쥐에게 특정 소리와 함께 전기자극을 주면 그 소리에 대한 공포기억이 나타나 그 소리만 들려도 공포반응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소리를 들려주면서 전기자극을 주지 않는 훈련을 반복하면 공포기억이 서서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안전한 환경에서 공포기억을 유도하는 조건자극을 반복적으로 제시하였을 때에 왼쪽 위와 같이 이러한 공포기억을 억제하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거나 다른 환경에 놓이면 이 공포반응은 오른쪽 위와 같이 쉽게 재발되는 것이다. 반면 양측성 시각적응을 이용한 공포기억 반응-감소 모델에서는 이가 안구운동 및 주의집중을 담당하는 뇌영역을 자극해 공포반응을 담당하는 편도체를 억제하는 새로운 신경회로가 왼쪽 아래처럼 활성화된다. 이 회로는 변화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편도체를 억제해 공포반응의 재발을 줄이고 더 효과적인 정신적 정신적 외상 치료를 유도한다.

한국에서는 나날이 기억에 대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아직 트라우마, 치매, 조헌병등의 치료가 완벽의 수준을 도달하지 못하였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 카이스트에서는 기억이 만들어지는 원리 최초로 규명했고, 연구를 진행한 한진희 교수는 연구에 대해 “기억 형성 과정에 대한 증진된 이해를 기반으로 기억 형성 과정에 이상이 생긴 정신 질환인 치매나 조현병의 치료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위즈덤네이처 ]뇌의 복합적인 기능과 구조에 대한 해석을 통해 인간이 가진 가능성의 한계에 대해 답을 하는 매력적인 뇌과학은 무궁무진한 발전이 될 분야입니다. 위즈덤 아고라 전서윤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로 뇌과학의 세계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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