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글로벌]종이 위의 평화, 현실의 드론…미·이란 종전 합의는 왜 이틀 만에 흔들렸나

[위즈덤 아고라 / 신승우 기자] 페르시아만의 입구, 이란과 오만 사이에 있는 호르무즈 해협은 너비가 가장 좁은 곳에서 고작 33킬로미터다.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 짧은 물길을 통해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매일 흘러나간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UAE, 이란의 석유가 모두 이 해협을 거쳐야 세계 시장에 닿는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95%도 이 좁은 물길을 통과한다. 세상에서 가장 비좁은 곳에,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이 걸려 있다.

2026년 6월 17일, 미국과 이란이 마침내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목표 그 이상을 이뤘다”라고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이 18일부터 재개됐고, 세계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러나 그 숨은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6월 20일, 이란군은 긴급 성명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행하는 선박에 대해 폐쇄를 선언한다”라고 발표했다. 평화 선언 48시간 만의 재봉쇄였다. 해협은 다시 닫혔고, 합의는 흔들렸다. 종이 위의 평화와 현실의 바다 사이에는 여전히 깊은 간극이 있었다.

끝이 아닌 시작

6월 17일 체결된 MOU의 성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핵심 쟁점을 해결한 합의가 아니라, 60일 안에 해결하기로 약속한 합의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MOU는 적대행위 중단, 호르무즈 해협의 한시적 무료 통행, 핵 협상 재개, 대규모 경제 재건 기금 조성 등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이란이 원하는 제재 해제와 경제적 보상은 최종 합의가 타결돼야 진행되는 구조여서, 아직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밴스 부통령이 스위스 협상 후 “집을 짓지는 않았으나 토대는 놓았다”라고 표현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호르무즈 통행 문제였다. 트럼프는 “해협이 완전히 개방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란 측 주장은 달랐다. 이란 유력 매체는 무료 통항은 60일 한시 적용이며, 그 이후 해협 관리 체계는 이란과 오만이 함께 결정한다고 보도했다. 이란 협상단장 갈리바프 의장은 자국 국영 TV와의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은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서비스 요금을 받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트럼프가 ‘완전한 승리’를 선언한 그 합의안에 이미 다음 위기의 씨앗이 심겨 있었다.

이스라엘이라는 변수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은 나라가 협상 전체를 흔들고 있다.

MOU는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 작전을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중단한다고 명시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재봉쇄를 선언한 명분도 바로 이 조항이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 공습을 이어가면서 합의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이 합의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어떤 내용도 이스라엘에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고,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무장 해제할 때까지 레바논 주둔을 유지하겠다”라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레바논 공습 확대로 MOU가 무산될 뻔했다며 욕설을 동반한 비난을 퍼부었다고 전했다. 전통적 우방 관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한 이스라엘 매체는 네타냐후 총리가 현재 핵 협상 합의보다 레바논 관련 합의 내용을 훨씬 더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국민의 67%는 미·이란 합의가 이스라엘에 불리하다고 답했다. 미국의 중재 아래 이란과 악수한 합의가 가장 가까운 동맹국에는 배신으로 읽히고 있다.

이 구도는 협상 구조 자체의 결함을 드러낸다. 이란이 합의 이행을 압박하는 수단은 호르무즈 봉쇄뿐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군사 행동을 멈추지 않는 한, 이란은 ‘위반 선언’의 명분을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다. 이란은 이미 페르시아만 해협청을 새로 설립하고 선박들에 통항 2일 전 사전 등록을 의무화하는 절차도 마련했다. 봉쇄 위협만이 아니라 통항 관리권 자체를 제도화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EOS 리스크그룹의 마틴 켈리 수석 자문은 “앞으로 며칠, 수 주간 이 같은 봉쇄 선언이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협상 기간 내내 호르무즈는 열렸다가 닫혔다를 반복하는 불확실성의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이라는 비용

실제 선박이 멈추지 않더라도 ‘재봉쇄 선언’만으로도 시장은 반응한다. 이화여대 박원곤 교수는 “이란이 실제 군사 행동에 나서지 않더라도 선박과 보험사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쉽게 움직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봉쇄 선언이 곧 운항 위축을 낳고, 그것이 곧 유가 상승과 물류비 급등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전쟁 없이도 전쟁의 경제적 비용이 청구된다.

우리나라에 이 불확실성은 특히 예민하게 작동한다. 원유 수입의 95%가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구조에서 대체 경로는 사실상 없다. 우회 송유관은 하루 원유 물동량의 7분의 1밖에 처리하지 못하고, 희망봉 우회 항로는 비용이 50~80% 상승한다. 호르무즈가 흔들릴 때마다 한국의 에너지 수입 비용은 직격탄을 맞는다. UAE의 OPEC 탈퇴 이후 산유국 간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선의 유연성은 오히려 더 중요해졌지만, 수송로의 병목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합의문이 무색해진 9일

스위스 후속 협상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호르무즈는 또 한 번 전쟁터가 됐다. MOU 서명 9일 만인 6월 26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싱가포르 선적 컨테이너선 ‘에버러블리’를 드론으로 공격했다. 상부 갑판이 타격을 입었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미군은 즉각 보복에 나섰다. 미 중부사령부는 이란의 미사일·드론 기지와 해안 레이더 기지를 공습했다고 발표했다. 이란은 ‘휴전 위반’이라고 맞받아치며 중동 내 미군 기지 등을 타격했다. 양측이 서로를 향해 ‘위반’이라고 외치는 동안 MOU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었다.

미국의 대응은 외교와 군사 두 축으로 동시에 진행됐다. 미 재무부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위해 이란과 소통하거나 통행료를 내는 행위 일체를 전면 금지하는 성명을 냈다. 이란이 신설한 페르시아만 해협청을 제재 명단에 올리며 선박당 최대 200만 달러에 달하는 통행료를 ‘갈취’로 규정했다. 미 국방부 장관은 “종전 협상이 결렬될 경우 즉각 군사 개입에 나설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미국이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의 20%를 통행료로 가져가겠다”라는 수치까지 제시했다. 이란을 압박하는 카드가, 이란이 쓰던 카드와 점점 닮아가고 있다.

평화의 유효기간

6월 22일 스위스에서 열린 후속 협상에서 밴스 부통령은 “집을 짓지는 않았으나 토대는 놓았다”라고 평가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토대가 60일짜리라는 사실이 문제다. 최종 합의 시한은 8월 16일로 설정됐다. 이란의 핵 포기와 미국의 제재 전면 해제, 레바논 휴전 강제, 이스라엘의 철군 문제까지 두 달 안에 풀어야 할 매듭의 수는 너무 많다.

역사는 중동의 합의가 얼마나 쉽게 파기되는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의 핵 합의(JCPOA)는 3년 만에 트럼프의 일방적 탈퇴로 무너졌다. 이번 합의를 주도한 것도 트럼프다. 미국 내 정치 일정, 이스라엘의 10월 총선, 이란 내 혁명수비대(IRGC)의 강경파 저항까지 합의를 위협하는 변수들은 합의의 내용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호르무즈는 이제 단순한 해협이 아니다. 그것은 이란이 세계를 상대로 협상하는 레버리지이자, 언제든 다시 닫힐 수 있는 수도꼭지다. 세계가 원유의 20%를 이 목구멍 같은 해협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제 합의했으니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평화 선언은 났지만, 바다는 아직 평화를 되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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