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Z세대, 총리를 굴복시키다

[위즈덤 아고라 / 신승우 기자] 지난 5월, 인도 대법원장 수리야 칸트는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을 향해 게으른 바퀴벌레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국가 최고 사법기관 수장의 입에서 나온 이 표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청년들은 모욕을 되받아치는 대신 그 단어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바퀴벌레 국민당(CJP)”이라는 풍자 정당이 온라인에서 태어났고, 창당 두 주 만에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 인도인민당(BJP)을 앞질렀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7월 25일, 다르멘드라 프라단 인도 교육부 장관이 전격 사임했다. 외압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알려진 모디 정권에서, 국민의 압력에 의해 각료가 물러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롱 섞인 밈 하나가 어떻게 두 달 만에 총리를 굴복시키는 사건으로 번졌을까.

72시간 만에 태어난 정당

이 정당의 설계자인 아비지트 딥케는 정치 경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서른 살 청년이었다. 그는 인도의 뿌리 깊은 신분제 카스트에서 최하층으로 분류되는 달리트 출신으로, 모디 정권에 비판적인 야당 암아드미당에서의 공보 담당 경험이 유일한 정치권과 인연이었다. 대법원장의 발언 당시, 그는 미국 보스턴 대학교에서 홍보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구직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취업하지 못한 청년을 향한 조롱은 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SNS에 “모든 바퀴벌레가 뭉치면 어떻게 될까”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이 게시물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딥케는 곧바로 움직였다. 이튿날 아침, 그는 집권당 BJP를 패러디한 이름 CJP(Cockroach Janta Party)를 떠올렸고, 슬로건을 “게으르고 실업 상태인 바퀴벌레들의 연합”으로 정했다. 인공지능으로 바퀴벌레를 의인화한 로고와 이미지를 만들고, 자격 제한이나 당비 없는 가입 제도를 갖춘 웹사이트를 열었다. 가입 조건은 철저히 풍자적이었다. 실업 상태일 것, 육체적으로 게으를 것, 하루 11시간 이상 온라인에 접속해 있을 것, 전문적인 비판 능력을 갖출 것. 이 네 가지만 충족하면 누구나 당원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바퀴벌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도 함께 제작됐다. 창당 일주일도 안 돼 팔로워는 1,000만 명을 넘어섰고, 두 주 만에 2,000만 명을 돌파하며 인도 거대 야당의 공식 계정을 앞질렀다. 당국은 뒤늦게 CJP의 계정을 차단했으나, 계정 차단 시도 자체가 “정부가 우리를 두려워한다”라는 서사를 강화하며 오히려 팔로워를 더 끌어모으는 역효과를 낳았다.

고용 없는 성장

이 현상을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아래 깔린 경제적 토양 때문이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형 경제 중 하나로 꼽히지만, 그 성장의 온기는 청년들에게까지 닿지 못했다. 전체 실업률은 3% 안팎에 머무는 반면 청년 실업률은 그 세 배에 달하는 10%에 이른다. 딥케 자신이 명문대 유학까지 다녀오고도 구직난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통계가 결코 특정 계층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화려한 GDP 성장률 뒤에서 좁아지는 취업 문이라는 모순이, 이미 오래전부터 인도 청년들 사이에 쌓여 있던 셈이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지난 5월에 치러진 의대 입학시험이었다. 220만 명이 응시한 이 시험에서 문제지가 사전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고, 시험 전체가 무효 처리되며 재시험이 결정됐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최소 12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좁은 취업 문을 향한 경쟁만으로도 버거운 청년들에게, 그 경쟁의 공정성마저 무너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닌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번졌다. 

총리가 굴복한 순간

지난 7월 20일, 인도 의회의 몬순 회기 개회ㅍ일에 맞춰 수만 명의 청년이 뉴델리 의회로 행진했다. 당국은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5인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며 행진을 막으려 했지만, 시위대는 강행했다. 경찰은 곤봉과 최루탄으로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150명 넘는 부상자가 병원 치료를 받았다. 야권도 가세했다. 최대 야당 인사들이 규탄 성명을 냈고, 트리나물회의 소속 의원은 국가의 강압적 폭력이라 비판했으며, 사마지와디당 의원은 평화적 시위조차 용납하지 않는 것은 독재라고 지적했다. 7월 25일, 프라단 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이어 보건장관과 총리실 차관이 CJP 대변인단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요구 사항을 대부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부정행위에 취약한 국가시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시위 과정에서 제기된 모든 사법 처리를 철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학생 유가족에게 1인당 1,000만 루피(약 1억 5,000만 원)를 보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외압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정치 스타일로 유명했던 모디 정권에서, 국민의 압력만으로 고위 각료가 물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AFP통신은 이번 사태를 2024년 3선에 성공한 모디 총리가 집권 이후 맞은 최대의 정치적 도전으로 평가했다.

살아남은 바퀴벌레

정부의 전격적인 요구 수용으로 두 달 넘게 이어진 시위는 승리 선언과 함께 막을 내렸다. 수용 소식이 전해지자, 뉴델리 농성장과 뭄바이의 거리는 축제 분위기로 물들었다. 이번 사태가 남긴 것은 단순한 승리 이상이다. CJP는 여전히 2,000만명이 넘는 팔로워와 조직망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인도 인구 구조의 반절이 30세 이하 인구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 네트워크는 다가올 주 선거와 차기 총선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세력을 남을 가능성이 크다, 

[위즈덤 글로벌] 국제 사회에서의 권력은 역변하는 정치, 경제, 외교적 요소로 인해 형성됩니다. 본 칼럼 시리즈는 글로벌 권력 구도부터 자원 외교, 금융 관계, 안보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국제 정세를 조명합니다. 시대별 주요 사건과 현상들을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복잡한 경제, 정치외교적 현상을 쉽게 전달하고,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위즈덤아고라 신승우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 칼럼을 통해 정치, 경제, 외교의 연관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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