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구글 Gemini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신승우 기자] 2022년 2월 24일, 전 세계 정보기관과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러시아군이 사흘 안에 키이우를 함락시킬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하지 못했다. 전쟁은 5년 차 소모전으로 접어들었고, 양측의 사상자는 200만 명에 육박한다는 집계까지 나온다. 이는 6·25 전쟁의 두 배에 가까운 기간이다. 세계 최강 군사력 중 하나로 꼽히던 러시아는 왜 이 전쟁을 예상대로 끝내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 실패는 어떻게 5년 가까운 소모전으로 굳어졌을까.
속전속결에 실패한 러시아
개전 초기 러시아의 전략은 명확했다. 공수부대로 키이우 인근 호스토멜 비행장을 신속히 장악하고, 정부를 무력화한 뒤 친러 정권을 세운다는, 이른바 ‘참수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러시아군은 단기전을 전제로 병참을 준비했고, 그 결과 수도 인근까지 진격한 기갑부대는 연료와 탄약 부족으로 도로 위에 멈춰 섰다. 우크라이나의 대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미국과 유럽이 제공한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은 값비싼 러시아 전차를 보병 한 명이 파괴할 수 있게 했고, 저렴한 상업용 드론은 정찰과 타격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며 전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여기에 지방방위군을 중심으로 한 국민적 저항이 더해지면서, 러시아가 예상했던 전격전은 한 달여 만에 참호전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초기 단계의 패배가 왜 5년째 이어지는 소모전으로 굳어졌는가에 있다.
장기화의 요인
전쟁이 왜 이렇게 길어지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청중 비용(audience cost)이다. 지도자가 전쟁 초기에 내건 강경한 공약을 지키지 못하면 국내 여론과 정치권으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하는 비용을 뜻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개전 당시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와 영토 탈환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한 채 물러선다면 국내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잃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영토 수호를 마지노선으로 걸어두었기에, 동부 지역을 양보하는 순간 국민적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양측 모두 전쟁 개시 일주일 만에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4년 넘도록 실마리를 찾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방의 고강도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배경에는 중국, 인도 등으로 향하는 에너지 수출이 있다. 제재로 유럽 시장을 잃은 대신 아시아로 판로를 돌리며 전쟁 지속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정을 확보한 것이다. 여기에 최근 부각되는 것이 북한과의 밀착이다. 북한은 전쟁 병기와 병력을 지원하고, 러시아는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관계가 구축되었다. 이는 단순한 군사 지원을 넘어, 러시아가 서방의 압박 속에서도 전쟁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
최근 전황은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만만치 않은 반격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군은 개량 엔진과 배터리, 위성 통신, 인공지능 표적 식별 기능을 탑재한 드론으로 근거리 전선부터 1,000㎞ 이상 후방까지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병력 이동을 차단하는 동시에, 중거리 물류망과 원거리 에너지·군수 시설까지 동시에 타격하는 방식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이를 두고 전쟁의 새로운 국면 진입이라고 평가했으며, 우크라이나 연구그룹 딥스테이트에 따르면 2026년 5월은 2023년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가 순 영토 손실을 기록한 달이었다. 러시아 점령지인 크림반도에서는 이미 연료 배급제가 시작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패트리엇 방공 요격 미사일 재고가 위기 수준에 달했다고 경고했고, 러시아는 이 틈을 타 주요 도시에 대한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개전 초기 예상됐던 일방적 열세와는 분명히 다른 양상이다.
미국이 종전 협상을 주도하고는 있지만, 그 중재 역량은 최근 이란과의 전쟁으로 상당 부분 분산되고 있다. 여기에 안보 보장의 실효성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근본적인 불신도 협상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아무리 서방이 안전 보장을 약속해도, 그 약속이 실제 침공을 막아줄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우크라이나로서는 쉽게 양보할 수 없다. 결국 이 세 요인이 맞물리며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국제사회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파장은 유럽 대륙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러시아가 이 전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중국, 북한은 물론 이란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비서방 연대를 구축하는 모습이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의 유착은 단순한 군사적 지원을 넘어 교통, 경제적 분야까지 확대되며 사실상 동맹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동북아시아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이 실전에서 축적하고 있는 병력 운용 경험과 러시아와의 기술 교류는 한반도 안보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파장도 만만치 않다. 개전 직전 45%에 달했던 EU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급격히 낮아졌고, 그 자리를 미국산 액화천연가스가 채우며 세계 에너지 시장의 공급망 자체가 재편됐다. 러시아는 에너지를 무기화해 유럽을 압박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국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유럽 시장을 영구히 상실하는 대가를 치렀다.
동시에 제재를 우회하는 무역 네트워크가 굳어지면서, 국제 경제 질서는 제재 진영과 우회 진영으로 서서히 갈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전쟁 하나가 에너지 시장을 변화시키고, 무역의 흐름까지 바꿔놓은 셈이다.
승자 없는 휴전
현재 진행 중인 종전 협상은 영토, 안보, 대러 제재 완화라는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패배도 감당할 수 없는 딜레마 속에서 이 전쟁이 향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결말은 완전한 종전이 아니라 재무장과 재협상을 동반한 불안정한 휴전, 혹은 전선의 동결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전쟁이 정전협정 이후에도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만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봉합되지 않은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분명한 것은, 휴전이 성립되더라도 2022년 이전의 질서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4년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사회와 국제 에너지 시장을 재편했다. 72시간을 예상했던 전쟁이 4년을 넘겼고, 그 4년은 세계 질서 개편의 서막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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