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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 빼앗긴 미얀마의 봄을 찾기 위한 연대와 지지

Illustration by Donghwan Kim (DAA Grade 10)

by Seoyun Jeon (GWA Grade 9)

독재란 국민의 자유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한 사람 혹은 한 집단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는 것이다. 한편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스스로 권리는 행사하는 정치형태이다. 1600년대 후반부터 사람들은 천부인권 사상과 이에 따른 자유를 열망하며 공화정을 이뤄냈다. 1686년 영국 명예혁명을 시작으로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혁명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렸으며, 우리나라 4.19 혁명과 5.18 민주화 운동은 독재에 맞선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160개 이상의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로 나라가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미얀마는 군부독재에 대응하는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얀마는 1885년 영국의 식민지를 겪다가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국호를 버마 연방으로 바꿨다. 하지만 미얀마 군사정부는 국내의 혼란을 틈타 네 윈이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54년간 미얀마 정치 경제의 주축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군부는 부정과 비리를 일으켰고 미얀마를 최빈국으로 전락시키며 시민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던 1988년, 군부 타도를 외치며 8888항쟁이 시작됐지만 군부는 무력으로 진압하며 3000여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키며 군부독재를 유지하였다. 그러던 중, 미얀마의 사실상 지도자였던 아웅산 수치 여사가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2016년 문민정부를 수립하였고, 2020년 총선에서도 NLD는 75%의 의석 중 83.2%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하면서 문민정부 2기 수립을 앞두고 있었다. 문민정부 2기는 1기에서 추진하던 계획을 뿌리내리고 군부의 힘을 약화시킬 법안을 준비하고 있어 중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군부는 이번에 막지 못하면 군부의 모든 사회 경제, 토대로 가지고 왔던 걸 내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총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면서 미얀마 정부에게 재선거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자 2월 1일 경고한 대로, 아웅산 수치 및 주요 인사를 구금하고 정부를 해산하였다.

쿠데타 선언과 동시에 미얀마는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법 행정 전권을 장악했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냄비를 두들기며 저항했고, 시민 불복종 운동(CDM)을 시작했다. 선거, 민주주의, 자유를 뜻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저항은 번져 나갔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20대 청년들은 노래, 랩, 춤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평화시위를 하였다. 평화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물대포, 곤봉과 총을 든 무력진압이 시작되었다. 고무탄 발사로 부상자가 속출했고, 점점 그 강도가 격해져 공포탄은 물론 섬광탄 심지어 실탄도 사용됐다. 무력진압의 명분을 주지 않겠다며 평화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경찰은 무차별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2월 28일 미얀마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겨냥해 마치 사격연습을 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고, 군인이 나서 지도까지 했다. 이날 하루만 부상자와 1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더군다나 국군의 날이 3월 27일 시위에서는 군부의 총격으로 최소 114명이 사망하였고, 4월 4일, 현재 사망자는 560명을 넘어서고 있다.

군부는 시위 12일째, 죄수 2만 3000여 명을 사면했다. 이날부터 미얀마 곳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잇따랐다. 범인의 지갑을 열어보니 군인 신분증이 나오고 그 이름으로 페이스북을 검색해보니 군인이었다는 확인 됐다. 즉, 당시 죄수와 함께 잡힌 사람은 민간인 복장을 한 군인이었다. SNS에서도 독이 들어있는 약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체포되기도 했다. 평화시위를 하는 시민들에 이들로 하여금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군부가 사회의 혼란을 잠재우고 국가의 법과 질서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더 높은 군사작전 진압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려는 꼼수였다. 1988년 8888 항쟁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군인들을 불을 지르고 마을 물탱크에 독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8888항쟁과는 달리 시민들의 힘으로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시위가 날로 거세지고 있지만 언론통제로 제대로 된 소식이 전해지고 않고 있다. 기자들 체포와 감시도 계속되었고 거짓 뉴스들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현지 매체 미얀마 나우는 CNN 취재팀과 인터뷰한 이들 중 최소 6명이 군 시설에 구금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시위대를 진압하는 군인들 중에도 시민들의 편에 서는 군인들이 있고, 중형 간부인 경찰도 시위대에 편에 서고 있다. 

약 30년 전 1980년, 우리나라에서도 오늘날 미얀마 민주화 운동과 비슷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80년 신군부 쿠데타에 시민들은 저항했지만 군사정부는 진압하기 위해 왜곡보도를 이어갔고, 계엄군을 보내 시민들을 학살했다.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는 공식 집계로 최소 163명, 암매장 등으로 행방을 찾지 못한 사람은 166명이다. 당시 광주는 엄격하게 통제되어서, 진실은 왜곡되고 있었다. 하지만 힌츠페터라는 독일 기자에 의해 광주의 진실은 알려질 수 있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도 자신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우리나라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부하며 민주화에 대해 배우고 있다. 미얀마 한국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 사회의 연대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미국 등 몇몇 국가들은 경제제재와 함께 수출 규제를 예고했고, 우리 정부도 강력한 규탄 성명을 했다. 하지만 UN은 규탄 성명만 낼뿐 이렇다 할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상임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 시민이 나서야 할 때이다. 우리 개개인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이 일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SNS 등의 여러 플랫폼에 게시하는 것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미얀마 불복종 운동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고 미얀마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함께 연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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