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10기 / 윤채원 기자] 21세기 경제는 종종 디지털 플랫폼이 중심이 되는 무중량 경제로 묘사된다. 그러나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배터리, 서버 설비 등 대부분의 시스템을 지탱하는 자원은 물질적이다. 세계 생산과 무역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발전 가능한 과학 기술과 경제를 이해하려면 그 연결고리인 금속, 광물, 연료 등 다양한 자원을 이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반도체는 정보처리의 핵심 장치지만, 제조 과정에서는 매우 높은 순도의 실리콘, 구리 배선, 희가스(아르곤, 네온 등) 등이 필요하다. 실리콘은 순도를 99.9999% 이상으로 만들기 위해 정제 과정이 매우 길고 복잡하며, 반도체에 새겨지는 미세 패턴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특정 파장의 광원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네온 가스는 미세 공정용 레이저에 사용된다. 이러한 자원의 공급이 특정 지역에 집중될 경우 제조 비용과 공급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반도체는 디지털 기술인 동시에 자원과 이를 활용하기 위한 고도의 공정 기술이 결합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구리는 전기를 다루는 거의 모든 장치에서 쓰이는 기본 소재다. 전기가 잘 흐르고 열에도 강하며 휘거나 늘릴 수 있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연결 등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 또한 전기차는 기존 자동차보다 훨씬 많은 전선을 사용하기 때문에 구리를 더 많이 필요로 하며,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늘어나면 전력을 먼 거리로 보내야 해 이때도 구리선이 필요하다. 구리는 알루미늄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같은 전류를 보내려면 더 두꺼운 선이 필요해 효율이 떨어진다. 구리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광산 개발이 필요하고, 이는 토지와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지역 사회와의 협의가 뒤따른다.
리튬은 충전식 배터리에 필수적인 금속이다. 리튬은 질량이 매우 가벼워 한 번에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고, 이온 형태로 이동하며 충전과 방전이 가능하다. 전기차 배터리와 대용량 에너지 저장 장치는 모두 리튬을 사용하며, 이는 태양광과 풍력처럼 출력이 일정하지 않은 에너지원의 활용을 가능하게 한다. 리튬은 염호나 광석에서 추출되는데, 정제 과정에 시간이 걸리고 많은 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배터리 기술은 앞으로 더 발전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리튬 배터리가 전기 이동과 전력 저장에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이다.
희토류 원소는 강한 자석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네오디뮴과 같은 원소는 작은 크기에서도 강력한 영구자석을 만들 수 있어 전기 모터, 풍력 발전 터빈, 드론, 스마트폰, 정밀 장비 등에 사용된다. 이러한 자석이 없으면 모터는 더 커져야 하고 효율도 떨어진다. 희토류는 지각에 비교적 풍부하지만 여러 원소가 섞여 있어 정제 과정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현재는 정제 능력이 특정 국가에 집중돼 있어 공급 불안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화석연료 역시 여전히 중요한 자원이다. 석유는 액체 상태로 비교적 쉽게 저장하고 운반할 수 있으며, 무게와 부피 대비 에너지 밀도가 높아 항공기, 선박, 대형 트럭을 작동시키는 데 적합하다. 또한 플라스틱, 비료, 섬유 등 다양한 산업 재료의 원료로 사용된다. 천연가스는 가정 난방과 발전, 공장 가열에 쓰이며, 비료 생산에 필수적인 암모니아 제조에도 활용된다. 비료 공급이 줄어들 경우 세계 식량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석탄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지만, 철강 생산을 위한 제철 공정에서는 여전히 필요하다. 특히 수소 기반 제철 기술이 완전히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석탄 사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자원은 기술의 전제 조건이며, 기술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는 변수다. 이 지점에서 과학 기술 산업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문제로 확장된다. 자원을 확보하는 과정에는 토지와 물, 노동력, 전력, 환경 영향이 뒤따르며, 그 비용과 이익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필요하다. 채굴 지역 주민이 환경 부담과 토지 사용을 감당하는 반면, 산업적 부가가치는 다른 국가나 기업으로 이전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원은 기술 발전을 위한 단순한 ‘재료’를 넘어 책임과 권력의 문제를 동반하는 대상이 된다.
국가 간 관계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정 자원이 특정 지역에 집중될 경우 해당 지역은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된다.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공급망을 둘러싼 정책적 움직임이나, 그린란드의 희토류와 우라늄 매장량을 둘러싼 투자 논쟁, 이란과 중동 지역의 에너지 안보 갈등은 모두 자원이 외교와 안보 문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21세기의 기술 변화는 디지털 기술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기술을 작동시키는 물질적 기반과, 그 기반을 둘러싼 경제적·정치적·도덕적 결정이 함께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