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구글 Gemini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신승우 기자] 자원이 많으면 국가가 부유할 것이라는 생각은 흔하다. 석유, 천연가스, 희토류 같은 전략적 자원을 가진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는 경제적 우월함에 따른 외교적 영향력 차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자원을 보유한 국가들은 무대에서 정치·외교적 영향력을 가지지만, 동시에 자원의 풍요는 관리 방식과 국가 정책 역량에 따라 위험을 안겨줄 수도 있다. 1990년대 경제학자 리처드 오티(Richard Auty) 와 제프리 삭스가 제시한 ‘자원의 저주’ (Resource Curse) 이론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국가들이 그렇지 않은 국가들에 비해 경제성장에서 더딘 성과를 보이는 역설적인 현상을 설명한다. 즉, 자원의 풍요가 오히려 국가 산업의 다각화와 제도 발전을 가로막고, 정치·경제적 취약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풍부한 자원은 어떻게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일까? 이번 칼럼에서는 자원의 저주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실제 사례들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풍요로운 자원이 불러온 재앙
자원의 저주란 자국 내 자원이 풍부한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자원이 부족한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저조해지는 현상을 뜻한다. 중동, 아프리카 및 중남미 자원 부국들이 한국이나 대만 등 자원 빈국들보다 경제 성장이 뒤처지는 현실이 이 이론을 뒷받침한다. 자원의 저주가 발생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주로 한 나라가 생산 수단을 석유 생산과 같은 단일 산업에만 집중하고 다른 산업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할 때 일어난다. 이 현상은 ‘풍요의 역설’이라고도 불린다.
이 저주의 전개 방식은 치명적이다. 우선 경제적 취약점을 설명하겠다. 자원이 풍부한 국가는 손쉽게 외화를 벌어들이기 때문에 제조업이나 첨단 산업에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산업 다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가의 경제는 한 자원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다. 더욱 심각한 점은 자원 수출로 인한 자국 화폐 가치 상승이 다른 수출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원의 저주와 함께 거론되는 ‘네덜란드병 (Dutch Disease)’ 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네덜란드는 1959년 북해에서 다량의 천연 가스전을 발견하면서 가스 수출로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수출로 인한 대량의 외화가 네덜란드 경제에 흘러 들어오면서, 네덜란드 화폐 단위인 길더의 가치가 크게 상승해 1970년대에 들어 천연가스를 제외한 다른 네덜란드 수출업체들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즉, 막대한 달러가 유입되면 이를 자국 화폐로 바꾸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자국 통화 가치가 상승한다는 의미다. 물가는 치솟았으며 노사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경제가 위축되었다. 게다가, 통화 가치가 상승하면 자국 수출 품목의 가격도 높아진다. 이는 자원을 제외한 다른 상품들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켜 결국 상품이 팔리지 않게 되고 결국 다른 산업 분야가 몰락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궁극적으로 한 국가의 경제가 하나의 산업, 자원에만 치중되게 만든다.
또한, 자원의 풍요는 국가를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자원이 특정 지역에 편중되면 지역 간 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내전의 불씨가 된다. 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의 갈등은 불가피하며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부재할 경우 이는 곧 무력 충돌로 이어지게 된다. 중동의 국가들이 왕권과 이슬람이라는 이념으로 자원을 독점 및 관리할 수 있었던 반면에, 아프리카의 많은 자원국들은 중앙집권 체제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원이 발견되며 끝없는 내전에 시달렸다. 이러한 갈등을 통제하기 위해 독재 정권이 등장한다. 독재 정권은 대체로 부패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자원 수익이 중앙정부에 집중되면서 부의 독점 현상이 발생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독재자들이 부의 재분배나 인프라 확충, 교육 투자를 의도적으로 외면한다는 점이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민주화 요구가 늘어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대신 자원 수익은 권력 유지를 위해 본인의 주요 인사에게 수익을 분배하고 국가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경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반대 세력을 억압한다.
이처럼 자원의 저주는 경제적 현상을 넘어 한 국가의 사회구조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실패 사례: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는 자원의 저주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다만, 여러 정치적, 제도적 요인이 결합하여 악화되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3,038억 배럴(=303.8 billion barrels) 로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 나라는 과거 수출 소득의 80% 이상을 원유 판매에 의존하며 단일 산업에 국가의 운명을 걸었으나, 현재는 경제 제재와 생산량 급감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과거에는 단 하나의 산업에 국가의 운명을 건 셈이다. 이보다 취약한 경제 구조를 상상하기 어렵다. 이렇게 풍부한 석유를 보유한 베네수엘라는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는 석유 수출로 호황을 누렸다. 정부는 낮은 세율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 인해 국민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1980년대 원유 가격이 하락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미래의 석유 소득을 담보로 얻은 차관을 상환해야 하는 시점과 경기 후퇴가 맞물렸고 1989년 ‘카라카소’ 라 불리는 민중봉기가 일어난 이후 정치 불안이 심화됐다. 석유가 지탱하던 민주주의는 경제 위기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1998년, 육군 중령 우고 차베스는 당시 유가 상승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차베스는 국영 석유회사 PDVSA를 장악하고 그의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했고, 석유 수익을 복지 프로그램 ‘미시온 (Misiones)’ 에 쏟아부었다. 빈민층 무상 의료와 교육 확대 등은 당장의 지지율을 높였지만, 산업 다각화에 대한 투자는 철저히 외면되었다. 차베스 정권은 고유가 시기에 벌어들인 막대한 석유 수익을 제조업이나 첨단 산업 육성에 투자하지 않았으며, 그는 오히려 통신, 전력, 철강 등의 기업을 국유화해 민간 투자를 억제했다. 또한, 로이터, AP통신 등에 따르면, 2003년 당시 PDVSA에서 18,000명 이상의 직원이 해고되어 전문성을 잃게 되었다. 전문 경영이 사라진 자리엔 정치적 충성심만 남았다.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석유 의존도 98%라는 매우 극단적인 구조로 굳어졌다. 차베스 정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환율 통제와 가격 규제를 남발했으며, 2003년부터 이를 시행했다. 단기적으로는 물가를 억제하는 듯 보였으나 규제는 암시장을 키웠으며 생산자들은 적자를 견디지 못해 생산을 중단했다. 물자 부족의 시작이었다. 정부는 배급제를 도입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2013년 차베스 사망 후 집권한 니콜라스 마두로는 차베스 정권 시절 실패한 정책들을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 무능함까지 더했다. 그는 정책 실패를 바로잡지 못하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2014년 국제 유가가 100달러 이상에서 50달러 아래로 폭락하며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는 군 장성 출신을 석유장관에 임명하는 등 군부 측근들을 경영진에 배치했다. 석유 산업에 대한 전문성은 전무했다. 결국 유가가 폭락하자, 베네수엘라의 석유 의존 경제는 한순간에 붕괴했고, 초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사라졌다. 2018년 베네수엘라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IMF 기준 약 9만 3천%~13만%을 기록하며, 3,032억 배럴의 석유를 보유하고도 국민의 90%가 빈곤에 시달리는 나라로 전락했다. 석유의 풍요는 부를 약속했지만 통제되지 않은 권력과 지지율만을 생각한 포퓰리즘 정책은 자원의 축복에서 저주로 바꾸었다. 베네수엘라는 자원의 저주가 얼마나 잔인한지 증명하고 있다.
극복 사례: 노르웨이
석유라는 같은 자원을 두고도 노르웨이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1969년, 북해에서 석유가 발견됐을 때, 노르웨이는 이미 투명한 민주주의 제도와 다각화된 경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당시 노르웨이 정부는 석유 수익을 당장 쓰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해 저축하기로 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1990년 노르웨이 의회는 석유 가격의 높은 변동성과 자원 고갈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 연기금 글로벌 (Statens pensjonsfond Utland, SPU)’ 을 설립했다. 이 펀드는 석유 생산 흑자로 인해 생긴 잉여자본금으로 운영되는 국부펀드로, 노르웨이 중앙은행에서 관리한다. 오늘날 노르웨이 정부 연기금은 세계 최대의 국부 펀드가 되었다. 2024년 말 기준, 약 19조 크로네(약 1조 6천억~1조 7천억 달러) 에 달하는 이 기금은 노르웨이 국민 1인당 약 31만 달러에 달한다.
노르웨이가 자원의 저주를 극복한 이유는 석유 수익에 안주하지 않음과 그 수익을 관리하는 방식에 있다. 핵심은 바로 ‘재정 준칙’이다. 정부는 기금 가치의 예상 실질 수익률인 3%만을 매년 국가 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나머지는 모두 원금으로 보존되어 계속 불어난다. 더욱 인상적인 점은 이 기금이 100% 해외에 투자된다는 점이다. 이는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외화를 국내로 들여와 자국 통화로 환전하는 과정 자체를 생략하고, 그 외화를 곧바로 해외의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했음을 의미한다. 이 전략 덕분에, 막대한 외화가 국내 외환시장에 유입되어 자국 통화 가치를 비정상적으로 급등시키는 ‘네덜란드병’의 근본 원인을 차단할 수 있었다. 노르웨이는 전 세계 약 70여 개국 9,000여 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게다가, 노르웨이 정부는 석유 수익에만 의존하지 않고 산업 다각화에도 투자했다. 제조업, 수산업, IT 산업 등 다양한 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했고, 교육과 연구 개발에도 사용했다. 이렇게 노르웨이는 석유가 고갈되어도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노르웨이는 1인당 명목 GDP 약 9만 5천 달러 수준으로 세계 4위, 인간개발지수 2위, 부패인식지수 5위 등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나라가 됐다.
노르웨이의 정부 연기금은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만약 노르웨이가 베네수엘라처럼 석유라는 단 하나의 자산에 극단적으로 의존한다면 국제 유가의 변동성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다. 베네수엘라와 노르웨이의 차이는 명확하다. 석유 발견 이전에 확립된 민주적 제도, 정부 운영, 장기적 비전 그리고 무엇보다 ‘자원은 언젠가 고갈된다’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인식이었다. 노르웨이는 석유를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로 바라봤다.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권력 유지의 도구’ 로 바라봤다. 결과적으로 베네수엘라는 무너졌고, 노르웨이는 번영했다. 자원을 다루는 지혜가 같은 석유를 가진 두 나라의 운명을 갈랐다.
선택이 만드는 운명
세 번의 칼럼을 통해 우리는 자원의 세 가지 면을 목격했다. 1회에서는 오일쇼크와 러시아의 가스 외교를 통한 자원의 정치·외교적 무기화를, 2회에서는 비동맹운동과 한국의 사례를 통해 자원 빈국들이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전략을 활용했는지 살펴봤다. 그리고 이번 3회에서는 풍부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저주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같은 석유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서로 상반된 결과를 낳은 베네수엘라와 노르웨이의 사례는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자원 그 자체는 축복도, 저주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지다. 즉, 국가의 정치·외교적 역량과 장기적인 비전에 달렸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에 국가의 운명을 걸었고, 지지율 향상을 위한 포퓰리즘에 빠져 미래를 위한 투자를 외면했으며, 부패한 정권이 자원을 사유화했다. 그 결과는 베네수엘라의 몰락이었다. 반면 노르웨이는 자원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석유로 얻은 수익으로 국부펀드를 구축해 미래를 위해 대비했다. 그 결과는 노르웨이의 번영이었다.
땅속의 자원은 유한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인간의 선택은 무한하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선택이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자원의 무기화, 자원 빈국의 생존법 그리고 자원의 저주는 하나의 교훈으로 모인다.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위즈덤 글로벌] 국제 사회에서의 권력은 역변하는 정치, 경제, 외교적 요소로 인해 형성됩니다. 본 칼럼 시리즈는 글로벌 권력 구도부터 자원 외교, 금융 관계, 안보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국제 정세를 조명합니다. 시대별 주요 사건과 현상들을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복잡한 경제, 정치외교적 현상을 쉽게 전달하고,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위즈덤아고라 신승우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 칼럼을 통해 정치, 경제, 외교의 연관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