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글로벌]자원 빈국의 외교 전략 – 생존을 위한 외교

< 일러스트 구글 Gemini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신승우 기자] 자원은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다. 석유, 천연가스, 희토류 같은 자원이 없는 국가는 경제 성장의 제약뿐 아니라 외교적 협상력 약화라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자원 빈국은 에너지 안보와 자원 확보를 위해 자원 보유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 정책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자원의 부재가 반드시 국가의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제약은 창의적인 외교 전략과 경제 발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와 앤드루 워너는 ‘자원 저주(Resource Curse)’ 이론을 통해, 자원 부국이 오히려 산업 다각화와 제도 발전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원의 부족이 오히려 기술 혁신과 인적 자본 투자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원 빈국의 역설적 강점이 존재한다.

자원 빈국의 경제적, 외교적 취약성

자원 빈국의 취약성은 경제적, 외교적 측면에서 나타난다. 이 두 측면은 서로 맞물려 있어, 한 영역의 충격이 다른 영역으로 쉽게 확산된다. 경제적으로, 자원 빈국은 원자재 가격 변동에 극도로 민감한 산업 구조를 가지게 된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 에너지 수입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이는 무역수지의 악화로 이어진다. 무역수지의 악화는 환율 상승의 압박으로 작용하며, 자원 수입을 위해 외화 수요가 증가하면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이는 다시 수입 물가를 상승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환율의 상승은 모든 수입품의 가격을 올리므로, 에너지 가격 상승의 충격은 전 산업으로 확산된다. 또한,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촉발한다. 에너지는 모든 산업의 기초이므로 에너지 가격 상승은 농업부터 제조업까지 전 분야의 생산 비용을 높인다. 이는 소비자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며, 국민의 구매력을 감소시킨다. 

이 현상은 지난 칼럼에서 분석했던 오일쇼크에서 확인 가능하다.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 당시 원유의 가격은 배럴당 2~3 달러에서 약 12달러로 500% 가까이 급등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직면했고, 1975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약 1.5%에 머물렀다. 한국의 경우 1974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를 기록했다. 전년의 물가 상승률은 4% 였으니 에너지 가격이라는 하나의 변수가 국가 경제 전체의 성장을 바꿔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교적 취약성은 더욱 복잡하고 구조적이다. 자원이 외교적 무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 보유국은 공급 중단이나 가격 조정을 통해 자원 빈국에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 있고, 자원 빈국은 이에 대응할 수단이 한정적이다. 중국이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 희토류 수출을 제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희토류는 전자기기와 첨단 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자원인데, 당시 중국은 전 세계 비정제 희토류 생산의 약 95%, 가공 희토류의 97%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일본은 희토류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즉각적인 타격을 받았고, 이후 희토류 공급원 다변화에 힘을 쓰게 되었다. 자원 빈국은 주요 공급국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면 국가 경제가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원 보유국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자원 빈국은 경제적 보복을 우려하여 강력한 대응을 주저할 수 있다.

비동맹운동 분석

냉전시대 비동맹운동은 자원과 힘이 부족한 신생 독립국들이 선택한 독특한 외교 전략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식민지 독립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인도(1947), 인도네시아(1945), 미얀마(1948), 이집트(주권 회복 1952) 등 수십 개국이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이 독립국들은 곧바로 새로운 딜레마에 직면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세계를 양분하며 모든 국가들에게 편 가르기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갓 독립을 쟁취한 국가들에게 냉전의 양극 체제는 또 다른 형태의 종속을 의미했다. 미국 진영에 가담하면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서구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고, 소련 진영에 가담하면 공산주의 국가들의 일원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새로 얻은 독립과 주권이 다시 제약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생 독립국들은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반둥회의)는 이러한 움직임의 출발점이었다. 반둥 회의는 서방 강대국 없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만으로 개최된 최초의 국제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탈식민 국가들의 연합이 최초로 구상되었고 1961년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비동맹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했다. 인도의 네루총리,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 그리고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주도한 이 운동은 약소국들이 집단 협상력을 통해 국제 정치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비동맹운동은 단순한 정치적 중립을 넘어 회원국 간의 경제적 독립과 발전을 추구하는 단체로 발전했다. 특히 자원 빈국들을 이 운동을 통해 자원 보유 회원국들과 연대하고, 선진국으로부터 개발 원조와 기술 이전을 요구하고자 했다.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를 계기로 석유수출기구 (OPEC) 국가들이 석유 공급을 제한하며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원 연대의 힘을 보여주자, 개발도상국들은 자신들도 집단적 행동을 통해 선진국 주도의 불공정한 경제 질서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1974년, 유엔 자원 특별 총회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신국제경제질서(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NIEO)’를 선언했다. 이 선언의 핵심은 자국 내 천연자원에 대한 영구적 주권, 원자재 가격 안정화와 공정한 책정, 선진국의 기술 이전과 개발 원조, 그리고 국제기구에서의 개발도상국 영향력 확대이다. 이는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착취와 불평등을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NIEO는 비동맹회원국들, 개발도상국들이 집단 연대를 무기로 삼아 선진국이 주도하는 경제 질서에 맞서려는 야심 찬 시도였다.

한국의 자원 부족 극복과 외교 전략

앞서 살펴봤듯이, 자원 보유국들은 석유, 천연가스, 희토류 등 천연자원을 무기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원 수출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때로는 공급 중단으로 상대국을 압박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원 보유국들의 전략 앞에서 흔히 “땅 파서 석유 한 방울 안 나오는” 대한민국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대한민국(북한 제외)의 면적은 약 10만 제곱킬로미터로 세계 109위에 불과하고, 그중 70%가 산지여서 산업용지와 경작지가 한정적이다. 그나마 있던 석탄도 대부분 소진됐으며, 철과 희토류 같은 주요 금속 광물도 거의 없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4%에 달하고 2024년 기준 에너지 수입액은 약 1365억 달러 (180조 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한국은 명목 GDP 세계 12위, 1인당 GDP 34,642 달러로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과는 자원이 아닌 전략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한국의 발전은 자원 빈국이 어떻게 국제사회에서 생존 및 번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수출액 6,836억 달러, 세계 반도체 시장 2위, 조선 2위, 자동차 5위 그리고 배터리 시장 점유율 30% 라는 성과는 국내 자원으로 이룬 것이 아닌 전략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1960~70년대는 한국 자원 외교의 출발점이었다. 박정희 정부가 수출 진흥을 위해 자원보유국과 기술협력 정책 수출/수입 합작사업 등을 통해 자원개발 활동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국가 차원의 자원외교가 등장하게 되었다. 당시 정부는 냉전 속에서 미국 중심의 안보 구조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외교의 자율성은 제한적이었다. 안보는 한미동맹에 의존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외교를 펼치기 어려웠고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베트남 파병 (1964~1973)을 선택하기도 했다. 한국은 자원 확보를 위해 중동 산유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 등에 건설 인력을 파견하고 플랜트 수주를 따내며 석유를 확보했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속에서 한국인 근로자 약 90만 명이 파견되었고, 이들의 송금액은 1977년 기준 GDP의 약 3.5%에 달했다. 이를 기반으로 포항제철(1973), 울산 석유화학단지, 현대조선소(1974) 등 산업 기반이 세워졌다. 이 시기에 원유를 정제해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고, 철광석을 철강으로 가공해 선박과 자동차를 수출하는 ‘가공무역‘의 틀이 마련되었다. 1964년 한국은 당초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연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고, 1970년에는 10억 달러, 1977년에는 100억 달러를 기록함으로써 ‘수출의 신화’를 썼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한국의 자원 외교는 다변화된 형태로 진화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냉전이 종식되면서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이 확대되었고, 이는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 과의 수교로 이어졌다. 이제 한국은 안보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와 자원 분야에서는 구 소련/공산권 국가들과도 자유롭게 독자적인 외교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 1인당 GDP가 1,000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첨단 산업 역량은 자원 보유국들에게 매력적인 파트너가 되었다. 한국은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앙아시아,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과 협력을 다변화했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과는 석유와 가스 개발 협력을 추진했으며, 남미의 칠레에서는 구리와 리튬, 브라질에서는 철광석 확보에 나섰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알제리와 앙골라 등과 석유, 가스 협력을 진행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과 2010년대 이명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은 자원 외교 다변화의 상징이었다. 또한, 외교 정책도 다변화되어 외교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 부처와 한국석유공사, 가스공사와 같은 공공기관 그리고 삼성, 현대, 포스코 등 민간 기업이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한국의 자원 외교는 산업 전략과 결합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UAE와의 바라카 원전 수주와 군사, 문화 협력을 포함한 사례이다. 이른바 ‘패키지형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성공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자원이 없더라도 그것을 활용하고 높은 가치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2024년 반도체 수출액은 1,419억 달러로, 당해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액 1,131억 달러를 넘어섰다. 자원을 수입하지만 그것을 훨씬 높은 부가가치로 전환해 수출하는 구조를 우리나라는 만들어냈다. 한국은 자원 대신 기술력과 산업 역량으로 외교력을 확보했고 이 기술력은 UAE의 원전, 폴란드로의 무기 수출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한국전쟁 이후 원조 수혜국에서 몇십 년 만에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한 한국의 경험은 자원이 부족해도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베트남,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 케냐 등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벤치마킹 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원빈국, 위기 속 성공의 기회

자원은 국가 생존의 핵심이자 경제 발전과 외교력의 토대이다. 자원 빈국은 불가피하게 자원 보유국에 의존하면서 경제적 취약성과 외교적 제약에 직면한다. 그러나 자원의 부족이 반드시 국가 쇠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늘날 한국의 사례에서 봤듯이, 자원이 부족해도 기술과 전략으로 이를 극복하고, 에너지 공급망과 외교 네트워크를 다변화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비동맹운동에서 봤듯이, 자원 빈국들은 집단 협력으로 세계 외교 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반도체 갈등, 그리고 중동 정세 불안은 ‘에너지의 무기화’라는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을 보여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보고서에서 “에너지 안보가 외교와 산업 정책의 중심축으로 재부상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급원의 분산, 산업 발전, 그리고 외교적 전략이 필수적이다. 자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미래까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전략과 인재, 기술과 외교가 합쳐진다면 그 어떤 자원 빈국도 세계 무대에서 존중받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다.

[위즈덤 글로벌] 국제 사회에서의 권력은 역변하는 정치, 경제, 외교적 요소로 인해 형성됩니다. 본 칼럼 시리즈는 글로벌 권력 구도부터 자원 외교, 금융 관계, 안보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국제 정세를 조명합니다. 시대별 주요 사건과 현상들을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복잡한 경제, 정치외교적 현상을 쉽게 전달하고,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위즈덤아고라 신승우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 칼럼을 통해 정치, 경제, 외교의 연관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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