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글로벌]자원과 권력 – 땅속의 부가 권력이 될 때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신승우 기자] 국제 정치에서 힘을 논할 때 보통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세계 경제를 뒤흔든 실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땅속 깊은 곳에 있는 검은 액체 ‘석유’와 보이지 않는 기체  ‘천연가스’였다. 석유와 천연가스로 대표되는 에너지 자원은 단순한 경제적 상품을 넘어 외교적 무기로 변화했다. 어떻게 깊은 땅속에 숨어있는 자원이 총칼보다 강한 무기가 될 수 있었을까? 지난 50년간 세계를 뒤흔든 세 차례의 ‘자원 전쟁’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

제 1차 오일쇼크: 석유가 무기가 되던 날

1973년 10월 6일, 욤키푸르 전쟁이 발발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중동 지역을 넘어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전쟁터가 아니라 유전에서 터져 나왔다. 콜롬비아 대학교 에너지 정책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1973년 오일 쇼크는 단일 사건이 아닌 세 가지의 위기가 중첩된 복합적인 위기였다. 지정학적 위기, 에너지 공급 위기 그리고 미국 내 정치적 위기가 오일쇼크라는 전 세계적 위험을 만들어냈다.

지정학적 위기

1967년에 있었던 3차 중동전쟁 이후 중동의 힘의 균형은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었다.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 새로운 전쟁이라고 판단했다. 1973년 8월,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국왕을 설득해 석유를 무기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이 가능했던 이유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스윙 프로듀서’로서, 자체적인 생산량 조절 하나로 세계 석유 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일한 산유국이기 때문이었다. 

에너지 공급 위기

세계 석유 소비는 1960년대부터 1973년까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유럽과 일본의 ‘경제 기적’이 석유 수요를 폭증시켰다. 가장 큰 변화는 1971년에 일어났다. 미국의 석유 및 에너지 관련 규제를 담당하는 텍사스 철도 위원회가 석유 생산 제한을 해제하면서, 석유 생산을 전면 가동해 미국의 여유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1973년의 세계 석유 시장은 여유 생산능력이 약 1%에 불과한 극도로 긴장된 상태였다. 어떠한 공급 차질이라도 시장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 내 정치적 위기

더욱 불행한 것은 1973년 당시, 미국은 1971년 닉슨 대통령의 ‘닉슨 쇼크’로 인한 경제적 충격과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인한 정치적 위기라는 두 가지 내부 문제를 겪고 있었다. 닉슨 쇼크는 1971년 미국이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달러의 금 교환을 중단한 조치로, 브레튼우즈 체제 (미국 달러를 기축 통화로 한 금본위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며 세계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했다. 한편, 1972년에는 닉슨 대통령 재선 캠프 관계자들이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사무실에 불법 침입해 도청을 시도하다 발각되어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닉슨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 매몰돼 국가적 위기 대응에 집중하지 못했고,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실질적인 대응을 주도한 상황이었다. 

석유 수출국 기구 (OAPEC)의 영향력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랍 석유 수출국 기구(OAPEC)가 석유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OAPEC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리비아, 알제리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산유국들이 모여 만든 기구로, 욤키푸르 전쟁 발발 직후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국가들에 대한 경제 제재 차원에서 석유 수출 금지를 선언했다. 당시 수출을 제한했을 때 실제 시장에서 제한된 석유는 세계 공급량의 9%였다. 작은 수치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당시에는 여유 생산능력이 1%에 불과했기 때문에 9%가 빠졌을 때, 대체 공급원이 사실상 없었고, 이는 시장에 심각한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 현상이 발생했다. 석유의 배럴당 가격은 1.80 달러에서 11.65 달러로 6배 치솟았다. 오늘날 화폐 가치로 환산한다면 14달러에서 80달러로 폭등한 셈이다. 

제1차 오일쇼크는 공급 중단뿐만 아니라 모호한 정보와 예측 불가능성도 심각한 문제였다. 당시 많은 국가들이 각국의 정확한 재고 수준, 생산 여유분, 수입 의존도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시장은 불안과 공황 심리에 휩싸였고, 이는 석유의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심이 공급 부족 그 자체보다 시장에 더 큰 혼란을 초래했다. 

맞물린 세 가지 위험으로 탄생한 제1차 오일쇼크의 결과로 아랍 산유국들은 석유 무기화를 통해 원유 가격을 인상하며 오일 달러와 국제적 영향력을 크게 확대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직면했고, 작은 중동 국가들이 세계 초강대국을 굴복시킨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제2차 오일쇼크: 정치적 불안이 낳은 의도치 않은 무기화

1979년, 이번에는 정치적 변화가 자원 위기를 불러왔다. 바로 이란 혁명이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주의에 입각한 신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이란은 당시 혁명으로 인한 파업으로 하루 600만 배럴에 달했던 석유 생산량을 200만 배럴까지 축소했다. 이듬해에는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가는 배럴당 13달러에서 40달러까지 치솟았다. 당시 세계 전체의 공급은 약 4-5%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위기는 1973년처럼 의도적인 무기가 아닌,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우발적인 공급 중단이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더 심각한 문제는 구매자들의 불안이었다고 분석한다. “이슬람근본주의가 중동 전체로 번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확대되면서 두려움에 떤 무분별 사재기가 실제 부족을 두 배 이상 증가시켰다.

비OPEC 산유국들의 등장

2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상승하자, 영국, 노르웨이, 알래스카(미국), 멕시코 등 비 OPEC 산유국들이 하루 560만 배럴의 추가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동시에 석유의 높은 가격으로 세계 석유 수요는 10% 감소했다. 공급은 늘고 수요가 줄자 OPEC은 생산량을 3,100만 배럴에서 1,800만 배럴로 대폭 감산해야 했다. 이는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유가 하락과 시장 안정에 이바지했다.

러시아의 가스 외교: 현대판 자원 무기화

우리는 러시아 전쟁에서 자원 전쟁의 대가를 몸소 느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을 무기로 삼아 유럽을 압박했다. 침공 직전 EU(유럽연합)는 천연가스 수입의 45%, 원유의 27%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루블로 결제하지 않으면 가스를 끊겠다”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가스프롬은 유럽으로의 공급을 절반 이상 줄였다. 이는 1973년은 구호를 연상시키는 제1차 오일쇼크를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유럽의 반격

그러나 이번에는 1973년과 달랐다. 러시아의 가스 외교는 단기적으로는 유럽 내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키면서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러시아는 자국 천연가스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EU라는 시장을 영구히 상실하게 됐다. EU는 ‘REPowerEU’ 계획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러시아 에너지의 의존도를 완전히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 2028년 1월 1일부로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영구 퇴출하기로 했다. 실제 변화는 놀라울 정도로 신속했다. EU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2021년 45%에서 2023년 19%로 급감했으며 원유의 수입은 27%에서 3%로 떨어졌다. 대신 미국의 액화천연가스 수입이 45.3%를 차지하게 됐다. 

이러한 에너지 전환 정책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 감소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자립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려는 유럽의 반격이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은 유럽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러시아의 의도와 반대되는 역할을 했으며, 오히려 유럽은 더욱 견고하게 에너지 시스템 구축에 힘쓰게 되었다.

건재한 자원의 힘 

AI시대의 도래로 우리의 삶에서 에너지는 필수가 되었고, 각국들은 에너지 확보를 위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에너지는 앞으로 인류 역사 내내 국력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자원의 힘은 여전히 건재하며 앞으로 국제 정치와 외교 부문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임이 분명하다. 자원부국의 경우 자원빈국에 비해 ‘갑’의 위치에 서서 외교적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질문들이 떠오른다. “자원 빈국들은 자원 전쟁 속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자원 자립이 어려운 국가는 어떤 외교적 수단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자원 빈국의 외교 전략’을 다룰 예정이다. 자원의 부재가 국가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자원 빈국들이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대표적인 사건들을 탐구할 것이다. 본 칼럼에서 다룬 자원 무기화의 역사와 교훈이 다음 칼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 지식이 될 것이다.

[위즈덤 글로벌] 국제 사회에서의 권력은 역변하는 정치, 경제, 외교적 요소로 인해 형성됩니다. 본 칼럼 시리즈는 글로벌 권력 구도부터 자원 외교, 금융 관계, 안보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국제 정세를 조명합니다. 시대별 주요 사건과 현상들을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복잡한 경제, 정치외교적 현상을 쉽게 전달하고,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위즈덤아고라 신승우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 칼럼을 통해 정치, 경제, 외교의 연관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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