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이코노미] 사우디 비전 2030: 자국 내 스포츠 투자 유치에 대한 경제적 분석
[위즈덤 아고라 / 윤서준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SAUDI ARABIA VISION 2030)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 다각화를 도모하여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의 이미지 변화를 위해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장관의 주도 하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이다. 2016년 4월 25일 사우디는 비전 2030이라 칭하는 경제개혁 플랜을 선언했다. 개혁의 핵심 목표는 극심한 자원의존 경제를 탈피하는 데 있다. 현재 석유 부문은 사우디아라비아의 GDP에서 무려 40% 이상을 차지한다. 이를 위해 국영기업인 아람코를 기업공개하여 지분 매각을 하는 등을 통해 무려 3조 달러에 달하는 공공 투자기금을 조성하였다. 그 후, 이를 바탕으로 내수 투자 증진 및 국내 창업활동 등을 지원하여 비석유 부분 국가 수입을 증진하는 목표로 재생에너지 개발, 관광업,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스포츠 부문에서는 2016년 첫 투자 이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18년에는 WWE와 계약을 맺어 연간 1회 이상 사우디에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뜨거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비인기 대회인 2029 네옴시티 동계 아시안게임을 유치하여 무려 12년 만에 대회가 다시 열릴 예정이다. 2020년 11월, 제다에서 매년 사우디아라비아 그랑프리를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2021년부터 대회가 시작되었다. 그밖에 2030 엑스포 유치 전에 뛰어들었으며, 2030 FIFA 월드컵(100주년)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세간이 사우디에게 관심을 기울인 결정적인 사건은 아마도 자국 내 축구산업 유치일 것이다. 이렇듯 사우디아라비아를 글로벌 축구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지난 1월 알 나스르에 이적하면서 시작됐다. 호날두는 2년 6개월 동안 4억 달러(약 5300억 원) 이상을 받는다.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사우디 리그는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스타들을 대거 데려왔다. 우선 카림 벤제마(프랑스)가 지난 6월 ‘레알 마드리드’에서 ‘알 이티하드’로 이적했다. 그 외에도 사디오 마네(세네갈), 리야드 마레즈(알제리), 조던 헨더슨(영국), 은골로 캉테(프랑스) 등 많은 유명 선수들이 유럽 리그를 떠나 사우디행을 택했다. 이번 여름 ‘사우디 프로 축구리그(SPL)’가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쓴 이적료는 9억 달러를 웃돈다. 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이어 2번째로 많다.
이런 천문학적 투자 뒤에는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있었다. AP,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 체육부는 지난 6월, 공식 트위터를 통해 PIF가 향후 알나스르, 알힐랄, 알이티하드, 알아흘리의 지분 75%를 보유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로써 자금 규모 6천억 달러(약 784조 원)의 PIF가 4팀의 지배권을 쥐고 선수 영입 등과 관련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규정 등으로 선수 영입에 돈을 쓰는 데 한계가 있는 유럽축구연맹(UEFA) 소속 구단과 달리 사우디 팀들은 이런 제한이 없다. PIF의 자금력을 등에 업고, 스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경쟁하는 유럽팀들이 엄두도 내지 못할 금전적 조건을 제시할 행정적 기반이 마련됐다.
그렇다면 사우디는 왜 막대한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축구에 투자하는가? 물론 앞서 말했던 석유 의존도를 줄이자는 비전 2030에서 파생된 정책이지만 경제적으로도 긍정적인 전망이 예상된다. 프로스포츠 산업의 일반적인 경제효과는 입장수입, 광고 수입, 방송 중계권료 수입 등 다양하다.
먼저, 입장 수입은 프로스포츠 구단 수입의 원천이다. 이는 홈팀과 원정팀 분배율에 따라 분배되고, 입장수입은 지방자치단체(연고지), 국세청 등과 일정비율 나눠 갖게 된다. 동원 관중 수는 입장수입과 비례하기 때문에, 구장 내 식음료와 기념품 판매, 주차료 수입 등의 구장수입과 기타 광고수입과 정비례한다. 또한 관중 수는 프로스포츠 협회가 방송국과의 TV 중계권료 협상에서 유리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카드로 작용하기도 한다. 구장 수입은 식·음료 판매, 기념품 판매, 주차료 수입, 임대 수입 등이 있다. 이는 관중의 경기장 방문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입장 수입과 비례한다. 지난 시즌 사우디 프로축구 리그의 경기당 평균관중은 9300명에 불과했다. 사우디 축구계는 2023/24 시즌을 앞두고 스타 선수들이 많이 영입된 만큼 관중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였고 사우디 전체 인구의 70%가 축구에 관심이 많은 35세 이하의 젊은 세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관중 수 증가는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였다. 실제로 사우디 프로 리그(SPL)에서는 알 나스르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7)의 영입 이후 경기장 관중(참석률)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축구 중계권료는 어떤 축구 경기 또는 리그를 텔레비전, 라디오, 온라인 스트리밍, 또는 다른 미디어 플랫폼에서 생중계하는 권한 또는 라이선스에 대한 비용을 나타낸다. 이것은 주로 스포츠 미디어 회사, 텔레비전 네트워크, 라디오 스테이션 또는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와 스포츠 리그 또는 경기를 주관하는 단체 간의 계약에 따라 발생한다. 중계권료는 미디어 권리, 리그 및 팀, 지역 및 국제 중계, 대회 및 이벤트, 그리고 미디어 형식에 따라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며, 이는 스포츠 경기를 더 넓은 관객에게 제공하고 스포츠 산업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사우디 프로축구는 올해 8월 한 달에만 중계권과 스폰서는 포함해 2억 750만 달러(약 2769억 원) 규모의 계약을 따내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부동산 개발업체 ‘로순’은 2022-23 시즌부터 2026-27 시즌까지 사우디아라비아 1부 리그 타이틀 스폰서를 맡는 대가로 1억 2750만 달러(1702억 원)를 준다. 미디어 회사 SSC는 사우디아라비아 1부 리그·FA컵·슈퍼컵 3년 중계권을 8000만 달러(1068억 원)에 샀다. 사우디아라비아프로축구는 OTT 서비스 ‘샤히드’와 위성방송 GOBX를 통해 서아시아·북아프리카에 방송된다. 다른 방송사들과의 중계권 계약을 포함하면 이번 시즌의 중계권료는 2021/22 시즌 중계권료 총수입인 240억 원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가 된다. 또한 이는 바로 전 시즌인 2022/23 시즌의 4배가 되는 수입이라고 한다.
사우디 리그의 핵심 4 구단(알 나스르, 알 힐랄, 알 이티하트, 알 아흘리)은 국영화 과정을 거친 구단들이기 때문에 구단에서 발생한 수익은 모두 국부펀드(PIF)로 향한다. 하지만 프로스포츠를 유치하는 것만으로도 간접적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프로스포츠를 유치했을 때 구단이 팬, 연맹, 미디어 등 많은 부분에서 이득을 보는 동시에 원정 구단과 스포츠 팬들이 지역 상권을 발전시키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 특히 경기가 있는 날에는 원정 팬덤과 선수단 등이 연고지를 방문하기 때문에 숙박/식비 등에 대한 고정적인 수요가 발생해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 앞서 말했던 PIF 소속 구단들은 모두 수도인 리야드와 핵심적인 항구도시인 제다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지역경제의 발전이 더더욱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런 사우디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여론도 존재한다. 일명 “스포츠 워싱”, 즉 사우디 내 인권탄압이나 유린 문제 등을 스포츠를 유치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돌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우디에서는 언론인 살해, 반체지 인사 감금, 여성 인권 탄압 등 수많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우디가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축구뿐만 아니라 포뮬러원 레이싱, 골프, 레슬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를 진행한다는 점은 이 의혹들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의심된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미지와 명성 관리만으론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러한 투자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프랑스 파리의 ‘스케마 비즈니스 스쿨’에서 스포츠 및 지정학적 경제학을 가르치는 사이먼 채드윅 교수는 “여러 국가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소프트 파워 투사를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이용하곤 한다”라고 설명했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현재 휘두르는 정책적 도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는 채드윅 교수는 “국가들은 전 세계 민심을 얻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 미국, 프랑스, 인도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이러한 정책을 시행한다.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도 똑같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인구의 80%가 운동을 하거나, 시청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국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러한 과감한 투자가 과연 제대로 성과를 낼지 판단하긴 이르지만, 적어도 축구 강국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은 생생히 느껴진다.
반면, 자국 선수들의 입지는 이로 인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국부펀드 소속 4팀 포함 1부 리그 18개 팀 내 외국인 선수는 9명 내지 10명이다. 이는 팀 전체 머릿수를 고려했을 때 굉장히 많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정식 스쿼드에 등록되는 선수 한도는 25명으로,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는 외국인 선수도 있을 수 있지만 이를 감안하여도 굉장히 높은 수치인 것은 분명하다. K 리그(국내리그)의 경우, 국적 무관 외국인 5명과 아시아 출신 외국인 1명으로 총 6명의 외국인만 허용된다. 심지어 이번 이적시장에서 사우디가 영입한 선수들은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이 대부분이어서 비교적 약체인 사우디 국적 선수들과는 주전경쟁에 있어 전혀 어려움이 없다. 실제로 사우디 아라비아 축구 대표팀은 최근 6연패의 늪에 빠지면서 국제적으로 추락 중에 있다. 그러므로 비록 사우디의 축구 열정은 많은 경제적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자국 내 축구에서는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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