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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글로벌] 최근 한일 관계에서 외교 상호주의는 존재하는가

<Illustration by Yujeong Lee (이유정) >

[위즈덤 아고라 / 전시현 기자] 외교 상호주의는 국가 간 동일한 행동을 취하거나 등가 가치를 가진 것을 교환하는 외교 원칙이다.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과 외교를 하면서 상호주의와 동등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 두 국가가 외교를 할 때, 국력, 경제력, 그리고 병력 등과 같은 요인들로 인해 외교 상호주의의 균형이 깨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국내에서도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안의 발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과정에서 양국 간에 외교 상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고, 미중 패권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외교 상호주의의 의미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20세기 초까지 제국주의의 영향 아래, 세계 총면적의 90~95%는 식민 지배를 받거나 제국에 포함되어 있었다. 강대국들은 후진국들을 식민지화하는 행위를 ‘세계 발전’의 의미에서 자선적이고 박애적인 활동으로 여겼다. 식민 지배를 하며 제국을 넓히고 엄청난 발전을 한 대영제국은 직물의 50%를 인도에 수출하면서 식민지 관계를 통해 인도의 섬유 시장을 파괴하고 전 세계적으로 섬유 산업에 대한 독점권을 얻었다. 또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세력과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제국주의적 야망으로 1910년,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했다. 한국을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 일본은 군사력과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를 강압했고 문화 동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없애려는 노력을 했다. 일본 통치 하에서 한국 경제는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며 우리의 자원과 노동력은 일본의 산업 성장을 촉진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일본은 철저한 군국주의 하에 한국인을 자국민으로 대하지 않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지배하고 착취하려고 했다.

인간의 역사에는 이렇게 억압, 폭력, 그리고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들은 점점 주권을 되찾고, 외교 상호주의를 외치며 같은 입장에서 대화를 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전쟁이나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 모두 노력해야 하고, 하늘 아래 인권이 동등하듯이, 국가 대 국가 간의 외교시 서로의 문화와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5년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에는 힘의 균형이 존재하는 듯하다. 식민지 시절, 협박과 회유 및 거짓으로 강제동원으로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은 일본기업을 상대로 사과와 배상을 위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소송을 했다. 일본에서는 1심부터 3심까지 모두 기각됐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2005년 일본제철을 상대로 우리나라 법원에 청구권 소송을 진행했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2018년, 김명수 대법원장은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위자료 청구권”이라며 “주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당시 불법적인고 반인권적인 행위를 한 일본기업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에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하는 내용이었기에 고통의 시간과는 바꿀 수 없지만 피해자들의 염원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행복도 잠시, 일본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으며 아베 전 총리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강제동원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2018년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듬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화이트리스트에 올랐던 한국을 제외할 거라며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반도체 규제 수출규제는 강제동원 판결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아베 전 총리는 사후 출간된 회고록에서 당시 수출규제가 보복조치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에 소송 대리인단은 한국에 있는 일본제철 소유자산에 대한 압류를 신청했고, 대법원의 판결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6일, 윤석열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앞서 제삼자 변제 안을 골자로 한 해법안을 내놓았다. 우리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지원 및 피해 구제의 일환으로 2018년 대법원 3건의 확정판결 원고분들께 판결금 및 지연 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며 “재원과 관련해서는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향후 재단의 목적 사업과 관련한 가용 재원을 더욱 확충해 나갈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일본 기업의 참여 없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대신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절차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피해자의 채권을 소멸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이에 ‘사과’라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일본의 자민당 참의원은 이를 “일본의 완승”이라 칭하며 일본이 한국에게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방일 후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물컵에 물을 더 채우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물컵을 쳐다보지도 않은 듯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6일 한국 정부 발표 직후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문제를 짧게 언급했다. 한일 정상회담이나 일본 정부의 발표에도 반성과 사죄는 절대 언급되지 않았다. 이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강제징용에 대해 “어떤 것이든 강제 노동 조약상 강제노동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는 발언을 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이 3개의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해제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WTO 제소를 철회했다는 발표를 했지만, 일본의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수출관리 조치가 해제된 것이 아니다. 한국의 세계무역기구 제소 취하를 확인하고 (…) 일정한 개선이 인정돼 운용을 재검토한다”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7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일본 문부과학성은 초등학교 3~6학년 사회교과서 10여 종의 강제동원 기술과 관련해 강제성 부분을 삭제하는 검정을 했다고 알려졌다. 2019년 검정 당시 들어 있던 ‘전쟁이 장기화돼 노동력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조선인과 중국인을 강제로 끌고 와 광산 등에서 노동에 종사시켰다’는 문장대신 이번에는 ‘참여시켜’라는 표현으로 사실상 강제동원이 아니었다는 내용으로 수정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독도에 대해서도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이 모든 초등학교 교과서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내용으로 교육받고 자란 일본인들이 향후, 우리나라 관계에서 어떤 입장일지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또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수산물 수입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은 우리나라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외교 상호주의 원칙은 깨지고 있고, 일본은 우리나라를 동등한 외교 상대로 보고 외교의 우위에서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북한의 이어지는 도발과 러시아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우리나라는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한미일 관계를 강화하고 북한을 압박해서 도발을 멈추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면 일본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외교 상호주의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외교 상호주의가 꼭 필요하다. 국가 간의 갈등이 고조되면 경제, 정치, 문화 등의 분야에서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교 상호주의는 국가 간 갈등을 예방하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도 동등한 관계로 여기고 대화를 이어가야 갈등을 막을 수 있다. 외교관계도 인간관계와 매우 비슷하다. 따라서 두 국가가 상호적인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외교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볼 수 있다.

[위즈덤 글로벌] 국제관계에서 벌어지는 중요 이슈 및 글로벌 리더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칼럼을 연재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전시현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로 세상의 소식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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