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반지하 완전 폐쇄 발표, 다시 취약계층에 돌아가는 피해
월세는 계속 오르는데 반지하 주택 모두 없앤다
8월 침수 피해 이후 서울시의 반지하 완전 폐쇄 정책
월 20만원 바우처로는 턱 없는 지원금
[객원 에디터 4기 / 김민주 기자] 폭등하는 서울 집값에 저소득층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반지하 주택. 하지만 지난 8월, 폭우로 인해 서울에서만 하루에 8명이 숨지는 비극이 일어나고 이 중 일가족 3인은 반지하 주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하면서 반지하 주택을 폐쇄하자는 대책이 떠올랐다. 서울시 내 반지하 가구는 2020년 말 기준, 20만 849가구로 집계되는데 서울시가 앞으로 20년에 걸쳐 이를 모두 없애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시는 먼저 각 자치구에 지하층을 주거용으로 건축 허가하지 않도록 하는 허가 기준을 전달했고, 정부와 협의해 구역을 불문하고 지하층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다.
건축법에 ‘반지하 주택 건축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기존 반지하 주택 20만 호에 대해서는 10~20년 유예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없애는 ‘일몰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거주 중인 세입자가 나간 이후 창고, 주차장 등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는 건축주에게 리모델링을 지원하거나, 정비사업 추진 시 용적률 혜택을 부여할 계획이다. 세입자가 나간 뒤 공실이 된 지하, 반지하 시설은 서울 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매입해 주민 공동창고나 커뮤니티 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러한 서울시의 반지하 퇴출 발표 직후, 저소득층 사회초년생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다. 턱 없이 비싼 집값과 부족한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지하를 선택한 것이 현실인데, 반지하라는 선택지를 막으면 주거비용이 크게 부담된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주거 시민단체들은 8월 22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폭우 참사 희생자 추모 주거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주거취약계층이 겪는 재난 위험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반지하 완전 폐쇄’ 주장을 비판하며 대신 장기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주거복지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은 “반지하를 무조건 없앤다는 단순한 발표로 주거취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현재 지하층의 보증금이나 월세를 가지고는 지상으로 주거상향이 불가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시의 반지하 폐쇄 추진은 처음이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010년 침수 피해 때도 ‘반지하 금지’를 발표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번에는 앞으로 20년 동안 공공임대주택을 23만 가구 짓겠다는 대책을 함께 내놨지만 아직 구체적인 예산 계획도 잡지 못한 상태다.
대책으로 함께 도입한 ‘반지하 특정바우처’의 경우, 12월부터 지급한다고 밝혔지만 반지하 거주자들의 불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서울 시내 반지하 주택에 살다가 서울 안 지상층 주택으로 이사하는 가구를 지원하는 이 바우처는 최대 2년간 매달 20만 원씩 월세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지급되는데, 현실성이 없는 금액이라는 의견이 있다. 서울의 지하층 거주 가구(34만 1000원)와 지상층(47만 9000원)의 평균 월세 차액(13만 8000원) 등을 고려해 산정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보증금도 차이가 커서 거주자들은 월 20만 원으로 지상층 이사는 불가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즉흥적인 대책으로 피해는 다시 취약계층인 반지하 거주자들에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취약계층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하는 애매한 대책과 지원에 반지하 퇴출 대책 철회 여론은 계속되고 있으며, 서울시는 10년 넘게 정확한 통계 없이 정책을 추진하면서 ‘신규 지하 주택 허가 금지’ 등 반복된 대책만 내놓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은 “서울시는 지난 2010년 집중호우 피해 이후 반지하 주택 건축을 제한하는 입법만 추진했지 건축 제한 등 실질적 행정은 소홀히 했다”면서 “지금이라도 상습 피해를 겪고 있는 기존 20만 호 지하주택을 어떻게 재난 위험에서 보호할지를 정책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라고 말했다. 더 많은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효율적인 대책이 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