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논란 속 우리가 진정 돌아봐야 하는 것들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객원 에디터 11기 / 이채은 기자] 중증외상센터, 월간남친 등에 출연하며 주목을 받은 배우 하영이 증조부의 친일 행적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시작은 첫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이런 엿같은 사랑’ 의 홍보를 위해 출연한 ‘옥탑방의 문제아들’ 에서의 인터뷰였다. 하영은 해당 방송에서 자신의 집안이 4대째 이어져 온 의사 가문이며, 증조부는 한양 최초 양의원 개원은 물론 고종 황제까지 진료했다며 자신의 집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방송이 방영된 이후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논란이 커지면서 해당 회차의 다시보기 및 클립 영상들은 비공개 처리가 되었다. 

이번 논란은 하영이 과거 집안의 상당한 부를 언급했던 사실들이 알려지며 더욱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도 소속사는 ‘사실무근’ 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하루 뒤,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조하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융화를 내세운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진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증조부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며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미숙한 대처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논란의 여파는 작품 활동과 광고 영상들까지 이어졌다. 촬영 막바지에 들어간 하영과 이제훈 주연의 드라마 ‘승산 있습니다’ 촬영은 중단되었으며,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점까지 맞물리면서 방영 여부까지 희미해지고 있다. 예정되어있던 하영의 인터뷰 역시 취소되었고, 출연했던 광고들도 잇따라 비공개 처리가 됐다.

이번 사태가 커지자 일각에서는 ‘연좌제’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부도 아닌 증조부의 과거 행적 때문에 그녀가 그동안 이룬 모든 것들을 잃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논란이 단순히 증조부의 친일 행적으로 인해 후손인 하영이 비난 받는 것만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하영은 그동안 자신의 집안을 ‘4대째 이어진 엘리트 의사 가문’, ‘부유한 가문’ 이라는 이미지로 여러 차례 대중에게 소개해 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온 집안이 어떻게 부와 명예를 얻었는 지, 집안의 역사에 대해 최소한의 사실 확인은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이번 논란에서 대중이 비판하는 것은 선조로부터 이어진 혜택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혜택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충분히 돌아보지 않은 채, 방송을 통해 자신의 집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던 태도에 더 가깝다. 역사적 잘못으로 얻어진 부와 명예가 아무런 성찰 없이 미화되어 자랑거리로 여겨지는 사회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개인의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만 끝낼 수는 없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친일 행위와 그로 인해 형성된 부와 사회적 지위가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어져 왔는지, 그 과정에서 친일 행위에 대해 충분한 역사적, 사회적 책임을 물었는지, 그리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과 재산을 희생했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보상과 예우가 이루어졌는지까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나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위해 싸웠고, 그들의 후손은 가난과 싸운다” 와 같은 말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역사적 불균형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단순히 기억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역사가 현재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지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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