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청소년들은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 Google Gemini AI>

[객원 에디터 11기 / 허지유 기자]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마주하고 있다>는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무가치함’의 단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드라마 속 어른들은 사회적 성취와 타인의 시선, 소외에 대한 불안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이들의 고통은 대부분 능력주의의 굴레와 결과물에 기반한다. 그러나 지금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하는 청소년들은 이보다 더 복잡한 과제와 마주한다. 우리는 AI를 이겨야 할 적이 아닌, 일상에서 끊임없이 동행해야 하는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조명한 기성세대의 불안이 주로 사회적 낙오에 기인한다면, 청소년들의 고뇌는 기술과의 상시적 공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존적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1. ‘공존’의 그늘: 펜의 세대에서 터치의 세대로

전통적으로 ‘가치’는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잣대 아래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AI 시대, 청소년들은 새로운 가치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이제 가치는 단순히 ‘쓸모’에 있지 않다. 질문을 정의하는 능력과 데이터화할 수 없는 고유한 서사가 진짜 가치다. 방대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답을 즉각 도출하는 AI 환경에서, 기존 데이터가 담지 못하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질문력과 수치화가 불가능한 인간 고유의 경험적 자산이 기계와 차별화되는 핵심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AI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기술 위에서 나만의 고유함을 찾아가는 ‘공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세대 차이는 감각에서 기인한다. 기성세대가 ‘펜’으로 기록하며 인내했다면, 우리 ‘터치 세대’는 손끝의 반응을 통해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성장했다. 어른들이 ‘사회적 낙오’를 두려워한다면, 디지털 세대는 ‘나라는 존재의 증명’ 그 자체가 데이터화되거나 해체되는 것에 막막함을 느낀다. 데이터로 정리되지 않는 개인의 취향이 소외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 고유성을 부정하는 그늘에 빠지기도 한다.

2. ‘완성’의 강박: AI가 규정한 정답과 사유의 ‘자동 완성’

현재 청소년들이 마주한 가장 큰 공포는 AI가 만들어낸 ‘정답’의 표준이다. 최근 SNS에서는 프롬프트 한마디만 입력하면 그럴싸한 영상이 생성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처럼 AI는 비디오부터 글까지 순식간에 최적화된 결과물을 내놓는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학교 현장에서 우리는 AI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AI를 쓰지 않으면 제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곤 한다. 실제로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AI 툴을 활용해 정제된 초안이나 보고서가 일종의 보이지 않는 평가 기준으로 작용하면서, 기술을 거치지 않은 학생 개인의 거친 사유가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물로 오인받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AI가 내놓은 답이 ‘완벽한 표준’이 되다 보니, 우리가 직접 쓴 거친 문장이나 고민은 마치 ‘미완성’처럼 느껴진다. 스마트폰의 메세지 입력창이 다음 단어를 미리 예측해 제시하듯, AI의 결과물을 기준으로 삼아 내 글을 자꾸 고치게 되는 현상은 사유의 주권을 기계에 넘겨주는 ‘사유의 자동 완성’ 현상과 같다. AI라는 거울이 만들어낸 기준에 비추어 스스로를 끊임없이 모자란 존재로 낙인찍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무가치함은 단순히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제시한 ‘완성형’에 나를 끼워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다.

3. 능동적 주체로: AI와의 공존 속에서 ‘나’를 증명하는 법

AI가 제시한 완벽한 결과물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나’를 찾아가야 할까?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닌 ‘나의 의도(Intent)’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양(17)은 기술과 자아의 충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잘 쓴 AI 글을 보면 처음엔 압도돼요. 하지만 그 글에는 ‘나’라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결국 우리의 가치는 AI의 완벽함이 아니라, 그 완벽함에 덧입히는 우리의 불완전한 고민에 있는 것 같아요.”

A양은 AI가 제공하는 결과물(What)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그 안에서 자신이 본래 전달하고자 했던 감정이나 사소한 개인적 경험을 주입하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AI가 도출한 매끄러운 텍스트 속에서 내가 왜(Why) 이 사유를 시작했는지에 대한 주체적 의도를 채워나가는 과정이다. 단순히 AI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 AI가 규정한 정답에 나만의 맥락을 결합하여 고유한 서사를 구성하는 형태다. 데이터에 담기지 않는 ‘불완전함 속의 창의성’과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능력’은 기술로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제 화면을 끄고 자신만의 고유한 질문을 던져보라. 그 질문의 무게가 곧 우리의 가치이다.

4. 기술을 넘어선 질문: 구조를 향한 성찰

물론, 이러한 논의가 ‘AI라는 기술에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인간의 도구적 이성과 효율성 지상주의를 비판해 온 프랑크푸르트 학파(Frankfurt School)의 시각이나, 현대 기술사회학자들은 지금 청소년들이 겪는 무가치함의 근원을 기술의 발전이 아닌, ‘인간의 노동을 오직 효율성으로만 측정해온 낡은 사회 구조’에서 찾는다.

만약 우리가 기술의 편리함만을 취하고 그에 따른 인간 소외 현상을 ‘개인의 마음가짐’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기만일 수 있다. 진정한 싸움은 AI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우리가 느끼는 무가치함은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술이 규정한 완벽함이라는 잣대에 우리를 끼워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스템의 모순을 개인의 내면적 과제로 전가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직시하고 가치 평가 시스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고민할 때, 비로소 AI 시대에 걸맞은 대안적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Leave a Reply

Back To Top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