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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근로시간 조정은 가능한가?

윤 대통령 “주 60시간 이상 근로 무리”

‘주 69시간’ 근무 논란 3개월간 방치

< PIXABAY 제공 >

[객원 에디터 5기/이태린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이 최근 논란이 된 근로시간 제도 개편과 관련해 국민의 여론을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최대 화두가 되고 있는 69시간 근로시간 문제가 되자 지난 3월 16일, 고용노동부(고용부)는 주당 ‘최대 69’ 시간 노동을 터주는 ‘근로 시간 개편방안’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주 52시간 산정 기준을 월(月)이나 연(年) 단위 등으로 유연화하는 것은 유지하지만 주에 최대 근로 가능 시간을 60시간 미만으로 조정하는 방향으로 수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당초 개편방안에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확대해 노동시간을 최대 52시간에서 주 6일 기준으로 최대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편안은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때 몰아서 쉰다’라는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개편안은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주 120시간 바짝 일해야 한다”라는 발언에서 기인하여 법 개정안으로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7월,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으로 1주일 노동시간 한도가 68시간(기본 40시간+연장 12시간+휴일 16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자 기업들은 유연근로제 실효성을 높여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2021년 1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어 3개월 이내로 운영되던 탄력근로제는 6개월 미만까지, 선택 근로제는 연구·개발 업종에만 1개월 이내에서 3개월 이내까지 허용 기간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유연근로제가 경직되어 있음을 주장하며 ‘연장근로 관리 단위 변경’을 요구했고, 이는 정부 근로 시간 개편방안의 주요 뼈대가 됐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발표에 많은 직장인들이 분노를 표했다. 전문가 논의를 바탕으로 만든 개편방안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법으로 보장된 휴가조차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정부에서 제안하는 몰아 쉬기는 구현되기 어렵다. 제도가 구현되기 어려운 열악한 ‘현실 일터’는 법 개정안 마련 과정에 반영되지 못하고, 입법예고 이후에야 거센 여론으로 분출됐다. 온라인에선 “육아휴직도 눈치 보고 못 쓰는데 장기 휴가가 말이 되나?” “주 69시간 일하고 쉬겠다고 하면 회사 그만두라고 할 것이 뻔하다”라는 등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개편안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누구나 퇴근 시간에 눈치 안 보고 퇴근하고, 연차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비판으로 노동자의 휴식권, 선택권, 그리고 건강권을 위한 조치들은 대체로 장시간 노동, 건강권 침해 우려의 논란이 일어난 이후 개편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보완됐다는 지점이다. 지난해 6월 정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을 놓고 주 최대 92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논란이 일자 뒤늦게 11시간 연속 휴식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자의 노동시간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들은 개편방안에서도 실효성이 없거나 연구과제에 그쳐 구색 갖추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정부는 개편방안이 실행되면 분기·연 단위로 사용할 수 있는 연장근로시간을 줄여 ‘연간 실근로시간’을 단축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도입된 주 최대 52시간 노동제는 주 단위 노동시간 관리로 실제 노동시간을 줄여왔다. 주 52시간제 시행 전인 2017년 244만 7천 명에 이른 주 52시간 초과 근무 노동자는 2021년 100만 1천 명까지 절반 이하로 감소했고 그에 따라 연간 노동시간도 2,018시간에서 1,915시간으로 줄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근로 시간 단축이라는 지향점이 대세로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갑자기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방향을 되돌린 과거 회귀적인 정책에 반발이 큰 것은 당연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반응에 따라 ‘근로 시간 제도 개편방안’이 지난 6일 입법예고 일주일여 만에 재검토 수순에 놓였던 것이다. 과로와 장시간 노동을 부를 수 있는 일터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개편방안을 설계해 보통 직장인들의 분노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윤 대통령의 보완 지시를 계기로,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문가 중심의 노동 개혁 추진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 대통령의 지시는 69시간이나 64시간은 적절치 않고 많으니, 추가 제한을 두어 최대 주 근무 시간 상한을 60시간 아래로 내려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표를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주 52시간제는 실패한 정책이다.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지시는 당시 발언과는 의미가 반대되어 일부에선 ‘정책에 대한 신념이 이렇게 약한 줄 몰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권남표 노무사는 “이미 탄력근로제와 선택 근로제로 과로하는 상황에서 정부안이 무엇이 되든 결국 근로 시간 단축이 아니라 연장으로 가고 있다”라고 짚었다. 박성우 노무사도 “현행 근로기준법 체제에서도 유연근로제로 과로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인데도 정부가 이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서 우려스럽다”라고 했다. 또한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노동 제도는 결국 현실에서 구현돼야 하는데 전문가 논의만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노동 현장에서 벌어질 부작용이나 우려 지점을 파악할 수 없는 만큼 설계 과정에서 노동자와 대화해야 했다”며 “개편방안을 내놓은 정부의 좌충우돌은 사회적 대화의 공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앞서 말한 의견이 전체 근로자를 대표할 수 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예로 들면, 중소기업 근무 중장년층 등에서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라면 주 52시간을 넘겨 일해도 좋은데, 정부가 왜 이를 막느냐”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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