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11기 / 이채은 기자] 최근 말랑이와 같은 촉감 완구가 스트레스 해소 아이템으로 알려지며 어린이를 넘어 성인들에게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결과 말랑이와 왁뿌볼 등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동묘와 동대문 완구 거리에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 실제로 조선일보에 따르면 지난 5월 동묘의 검색량은 성수보다 많았으며, ‘동대문’ 언급량도 지난해보다 38% 이상 증가했다. 무엇이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 이토록 빠져들게 만들었을까.
이 같은 인기의 배경에는 현재 20대들이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대표적인 장난감인 슬라임이 있다. 이에 대해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젊은 층이 촉감 완구를 소비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놀던 어린 시절의 안정감을 다시 느끼고자 하는 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슬라임 역시 말랑이처럼 부드럽고 말랑한 촉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높아진 취업난 속에서 촉감 완구는 청년들에게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니가타보건복지대 연구팀은 부드러운 촉감이 손의 감각신경을 자극해 뇌 변연계에 영향을 미치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줄여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고려하면 촉감 완구는 심리적 안정을 돕는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경일보에 따르면 ‘14세 이상 사용’이라고 표시하면 어린이제품이 아닌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돼 KC인증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KC인증은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에 따라 만 13세 이하 어린이가 사용하는 완구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말랑이 제조사들은 사용 연령을 14세 이상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안전 인증의 사각지대가 생겨났고, 온라인에서는 촉감 완구를 만진 뒤 다래끼가 생기거나 발진 등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안전 인증의 사각지대로 인한 피해는 성인보다 화학물질 노출에 취약한 어린아이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촉감 완구는 다른 장난감보다 손에 맞닿아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연세올케어소아청소년과의원 조소원 원장은 반복되는 압력과 마찰, 비교적 긴 접촉 시간으로 인해 손의 체온이 제품 온도를 높이면 화학물질의 이동이 더욱 촉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성 문제 외에도 환경적인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왁스를 부수며 순간적으로 나는 소리와 쾌감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왁뿌볼은 일회성 소비 경향이 강해 환경 문제를 낳고 있다. 게다가 코팅된 겉면 소재인 파라핀 왁스와 내부 점토는 재활용이 어려워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타건감으로 인기를 끌었던 키캡과 말랑이 같은 촉감 완구 역시 부피가 작고 혼합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기존 분리배출 체계에서는 재활용이 어렵다. 물론 이러한 제품들이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유행을 따라 쉽게 구매하고 금세 버려지는 소비 방식이 반복될수록 환경 부담은 커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사회는 유행에 민감하다. 이러한 성향은 긍정적인 영향도 만들어낸다.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와 버터떡의 유행이 불경기 속 자영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말랑이와 왁뿌볼의 유행 역시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문구점에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하지만 우리는 긍정적인 효과만큼 그 이면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행은 빠르게 생겨나고 또 빠르게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유행이 남기는 흔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저 ‘다들 사니까 나도 한 번’, ‘저렴하니까 나도 한 번’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하기보다 그 이면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유행을 현명하게 소비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