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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글로벌]식민지 시대 이후, 아프리카와 한국은 왜 다른 결과를 맞이했을까?

< FREEPIK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전시현 기자]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신과 비슷하고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이들과 힘을 합치고 똘똘 뭉친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에서 외딴섬에 놓인 아이들이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끼리 모인 것처럼 인간은 생존 본능, 문화, 그리고 인종 등의 이유로 부족을 이루고 함께 모여 살아간다. 19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이어진 제국주의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았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 정확히 말해서 한국은 식민지 시대 이후 매우 다른 결과를 맞이했다. 이렇게 국가의 흥망성쇠는 단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인종과 문화적인 특성, 그리고 국제관계와 정치적인 갈등과 제도 등의 연결고리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아프리카의 부족사회와 대한민국 사회의 인류학적, 사회학적, 그리고 정치적인 차이를 통해 분석할 수 있다. 

부족주의(Tribalism)는 일반적으로 조상, 언어, 문화, 종교, 전통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을 추구한다. 부족들은 소규모이고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며, 정치적 통합이 낮고, 중앙집권화된 정치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조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씨족(clan)이 여러 개 모여서 부족을 형성한다. 아프리카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주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작은 집단이나 정착촌에서 부족 단위로 살았다. 씨족 내에서는 경험이 많은 연장자가 존경을 받았고, 부족 내에서의 부족장의 권한은 왕만큼의 힘을 가졌다. 집단주의, 부족주의 사회를 꾸린 아프리카에서는 국가들이 독립한 이후에도 이러한 사회적인 전통이 지속되었다. 이것이 아프리카가 변하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식민지지배국가들에 의해 획정된 민족국가 안에서 새로운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여야만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지만, 부족주의가 불러온 부족 간의 권력 투쟁, 종족 갈등, 자원의 저주, 이웃 국가의 개입, 선진국의 개입 등 수많은 이유로 경제발전이 더디고, 아직 통합되지 못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이 식민지 지배 이후 아직도 가난하게 살고 있는 현상은 단순히 부족 간의 갈등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식민주의가 아프리카를 휘두르기 전, 아프리카에는 공식적인 경계가 없이 부족들이 자유롭게 사는 땅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강대국들은 아프리카의 다양한 부족, 인종, 그리고 종교를 고려하지 않고 베를린 회담과 콩고 회의에서 아프리카 땅을 마음대로 나누며 땅따먹기를 하는 식으로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무려 1만여 개의 부족들이 갑작스럽게 40여 개의 국가의 국경선에 갇히게 되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유럽의 제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편한 대로 아무렇게나 국경을 나누다 보니까 이미 아프리카 곳곳에 나뉘어 살고 있는 부족들끼리 섞이면서 분쟁이 일어났다. 수단의 경우, 남과 북으로 나눠진 이후 다시 합쳐졌을 때 인종, 종교, 그리고 부족 간 차이로 인해 엄청난 갈등을 겪었다. 또한 Chinua Achebe가 Things Fall Apart의 배경으로 잡은 나이지리아도 이보족, 요루바족, 풀라니족 등 400-500개의 부족들이 한 국가로 합쳐지면서 내전을 겪었다. 자신만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오던 이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강요하면서 사회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유럽은 아프리카 내의 민족끼리 대립하도록 부추기면서 식민지 정부에 대한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노력을 했다. 르완다와 부룬디에 사는 민족 집단 투치족(Tutsi)과 후투족 (Hutu)은 식민지 정책으로 분단되었는데, 서로 대립하다가 결국에는 내전이 일어나 대량학살을 초래했다. 식민지 지배국가들은 아프리카에서 부족, 언어, 종교적 차이를 이용하여 경쟁자를 만들어냈고, 이것을 통해 정치적 통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즉, 특정한 그룹에 특혜를 몰아주고 여타 그룹은 소외시켜, 분열을 조장해 설령 저항하더라도 각개격파가 용이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부족이라는 단위와 정체성이 해체되고 나서야 민족이라는 단위와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민족보다는 부족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아프리카를 마음대로 나누려고 하다보니 식민지 시대 이후 아프리카에 아직 많은 내전, 폭력, 그리고 전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저항을 약화시키고 유럽의 지배와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분할통치를 하며 부족 간의 갈등을 조장했고, 아프리카 이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갈등을 영존시켰다. 이렇게 식민지 시대에 많은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의 자원을 착취하고 수출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공격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함으로써 제국을 확장했다. 고무, 목재, 다이아몬드, 금과 같은 원자재는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고, 유럽 국가들은 또한 아프리카의 편리한 위치에 있는 무역로를 탐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은 자원 부족과 먼 거리 등의 이유로 유럽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았고, 대신 2차 세계 대전 당시 힘을 키우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하지만 유럽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았더라도 냉전 시대에 남과 북으로 나뉜 후 미국이 세운 정부 아래에서 힘을 키웠던 한국은 간접적인 지배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Edward Said의 Orientalism과 Achebe의 Things Fall Apart은 이런 간접적인 식민지 지배도 유럽의 전략 중 하나라고 본다. 유럽 국가들은 성장기에 관세로 세수를 늘리고 자국 산업을 보호했는데, 아프리카는 선진국의 압박으로 웬만한 품목은 전부 자유무역협정이 걸렸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였다. 또,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외화를 프랑스 은행에 맡겨야만 사용할 수 있는 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프랑스에게 이익을 착취당하고 있다. 실제로 니제르 군부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며 강력히 비난했는데, 마크롱 대통령은 “니제르에 대한 신식민지 작전을 지속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단순한 무력 지배를 떠나서 경제, 정치, 무역, 그리고 국제관계 등을 이용해서 헤게모니를 건설하는 전략은 아프리카와 한국 모두에게 사용되었다.

또한 식민지 시대 이후 한국과 아프리카의 반대되는 결과에는 정치적인 요인이 매우 크다. 아프리카에서는 쿠데타로 인해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에티오피아의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등의 독재자가 계속해서 탄생했고, 이는 민주주의의 형성을 막았다. 권력층은 정부 재산을 개인을 위해 낭비해 버렸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하던 짐바브웨는 심지어 무가베 정권 집권 이후에 매우 가난한 국가가 되어버렸다. 이런 독재주의 정치는 아프리카의 공동 부양 문화, 즉 가족 일원 중 한 명이 성공을 하면 대가족뿐만 아니라 지역 사람들까지 부양하는 문화의 영향일 수 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씨족, 즉 부족을 부양하기 위해 뇌물과 부정부패를 이용해 정책을 만들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정치는 많은 면에서 실패하였다. 

반면, 한국에는 외세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하고 단일민족 국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적인 현상이 존재했다. 한양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단일민족 개념이 국민의 결속을 다지고, 국가의 부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 따라 강화되었다고 평가한다. 방송에서는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여러 인종의 삶을 조명하며, 우리 사회에 뿌리 박힌 ‘단일민족’ 신화의 배타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때 한민족이 힘을 합쳐 새마을운동 등의 방식으로 우리 사회와 공동체의 성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단일민족의 끈끈함과 장점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등 프로파간다로 이용된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을 빈곤국가에서 성취하는 국민성을 가진 강력한 나라로 만든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이 아프리카와 한국은 식민지 시대 이후에도 매우 다른 결과를 맞이했다. 아프리카는 부족주의, 민족 간 갈등, 외부 간섭 등의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면서도 내부 독재와 부정부패로 인해 발전의 기회를 상실했고, 유럽의 분할통치와 같은 전략으로 국가 간 갈등이 계속되어 왔다. 한편 한국은 유럽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았지만, 냉전 시대에 미국의 영향 아래에서 간접적인 지배를 경험했다. 남과 북으로 나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민족의식을 강화하고 국민들의 결속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하면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렇게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차이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아프리카와 한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아프리카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면 정치적 안정성을 강화해야 하고, 경제와 교육을 발전시켜야 하며, 부족 간 협력을 이루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아프리카의 역사를 이렇게 다양한 사회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위즈덤 글로벌] 국제 사회의 제3 국가들과 떠오르는 나라들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분석을 하고 발전 가능성과 문제점을 조명하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전시현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에서 새로운 강대국을 꿈꾸는 국가들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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