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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 향년 99세로 별세

필립공, 99세로 별세… 시민들의 애도 물결

영국 언론,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의 러브 스토리 조명

<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의 젋은 시절 Times 제공 >

[ 위즈덤 아고라 / 임서연 기자 ] 지난 9일(현지시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99세로 별세했다. 

영국 왕실 버킹엄궁은 “깊은 슬픔으로 여왕 폐하의 부군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공의 별세를 발표한다”며 “이날 아침 윈저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라고 전했다. 

필립공의 별세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버킹엄궁 앞에 찾아가 애도를 표했고, 버킹엄궁은 조기를 게양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애도 성명을 통해 “무엇보다 여왕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을 보낸 부군으로 필립공을 기억할 것”이라며 “부군으로서 여왕의 곁을 지키면서 70년 넘게 힘과 버팀줄이 됐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영국 언론은 여왕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필립공이 세상을 떠나자 영국 언론은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일제히 조명했다.

< ‘ The Royal Family 인스타그램 캡처 >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릴리벳’으로 불리던 공주 시절, 영국 왕립 해군대학 사관후보생이자 몰락한 그리스 왕족에게 첫눈에 반했는데, 그 왕족이 바로 필립공이다. 

필립공은 1921년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그리스 앤드류 왕자의 외아들로 태어나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신분이었지만, 부친이 군부 쿠데타에 권력을 빼앗기며 온 가족이 강제 추방됐다. 어머니 앨리스 공녀는 망명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프랑스 남부로 도망간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여러 나라를 떠돌며 성인이 된 필립공은 1939년 영국 다트머스에 있는 왕립 해군학교에 입학했다가 릴리벳 공주를 처음 만나게 된다. 해군학교에서 최고 생도로 뽑힌 그는 학교를 방문한 릴리벳 공주를 안내했다. 해군이 체질에 맞았던 그는 21세 나이에 영국 해군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갑판사관이자 구축함 월리스 제2 지휘관이 되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지중해와 태평양에서 각각 시칠리섬 상륙 작전, 영국군 구조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참전 중 릴리벳 공주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군 복무를 마친 후 필립공은 릴리벳 공주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의 아버지인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1952년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 즉위하면서 여왕의 부군이자 필립 윈저-마운트 베튼, 에든버러 공작이 됐다.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결혼을 시작한 후 필립공 삶은 포기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리스 왕자의 신분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귀하 했으며 자신의 대부를 따라 성(姓)도 마운트배튼으로 정했다. 해군으로서의 삶도 일찍 포기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했을 때 필립공은 여왕의 대관식에서 무릎을 꿇고 신하로서 충성을 맹세하며 해군이 아닌 ‘여왕의 남자’로 살게 되었다. 

필립공은 즉위 초기 엘리자베스 2세와 많은 일로 다퉜는데, 자식들의 성에서 ‘마운트배튼’이 사라지는 일부터 수많은 행사와 의무 속에서 자기 자신이 아닌 여왕의 남자로 행동해야 하는 일 등이 불만으로 쌓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70년 넘게 여왕의 곁을 지키며 의무를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왕실의 현대화를 위해 애썼으며 무수한 행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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