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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신조, 그가 꿈꾼 일본

< Illustration by Haewon Choi >

[위즈덤 아고라 / 전시현 기자] 7월 8일, 아베 전 총리는 거리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숨을 거두었다. 유세현장에서 심폐 정지 상태로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67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는 총 8년 8개월에 이르는 시간 동안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로 재임하며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를 지지하던 지지하지 않던 그는 전 세계, 특히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우익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후 정치적으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그는 1차 집권 시기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이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일본이 2차 대전에 패전하면서 연합국 점령 아래서 군대 보유 및 전쟁 금지를 규정한 현 ‘일본국 헌법’을 타파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이는 그의 외할아버지이자 A급 전범 용의자인 기시 노부스케(1896~1987)였다. 기시는 전력 보유 금지를 규정한 일본의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아베 전 총리도 그의 뜻을 이어받아 개헌을 “필생의 과업”으로 꼽으며 마지막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두 차례(2006년 9월~2007년 9월 1차, 2012년 12월~2020년 8월 2차)에 걸쳐 8년9개월 동안 최장기 집권한 총리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2006년 아베 전 총리의 1차 집권은 1년에 그쳤다. 그는 교육 기본법 개정 같은 보수적이며 이념적인 정책,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에 대한 공격에 치중했다. 여기에 각료들의 망언과 정치 스캔들이 겹치며 지지도는 점점 떨어졌다. 미국 하원은 이에 맞서 2007년 7월 말 위안부 결의안을 내놓았고, 같은 시기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도 대패했다. 결국,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악화까지 겹쳐 2007년 9월 12일 사임을 발표하며 아베는 가볍게 정권을 내던졌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의 위협에 맞서는 ‘강한 외교’와 ‘아베노믹스’와 같은 실용적 정책 등을 내세워 2012년 12월 그는 두 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보수적 이념 지향성은 그대로였지만,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집권 초부터 금융완화를 뼈대로 하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일본인들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경제정책에 집중하며 2차 정권은 무려 7년 8개월에 이르는 장기 집권으로 이어졌다.

아베 전 총리는 매파적인 국방 및 외교 정책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오랫동안 일본의 전후 평화헌법을 개정을 통한 ‘전쟁 가능 국가’로의 변신을 꿈꿔왔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견해는 종종 중국과 우리나라 등 주변국과의 긴장감 고조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 2013년 수도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주변국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집권 기간 내내 그가 목표로 삼았던 것은 개헌이었다. 2차 정권 출범 뒤 아베는 모든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며 “필생의 과업”을 이뤄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야당의 완강한 반대와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회의적 반응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집권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스캔들이 늘어났고, 국민들의 피로도도 증가했다. 그와 가까운 인물들이 운영하는 사학법인이 특혜를 받았다는 ‘모리토모·가케학원 스캔들’, 국가 예산을 지지자들을 접대하는 데 사용했다는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 등으로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기폭제가 됐다. 그는 그해 8월 궤양성 대장염 재발을 이유로 사의를 밝힌 뒤, 9월 총리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아베의 죽음이 우리에게 정치적이나 윤리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를 총으로 쏴 사망에 이르게 한 야마가미 데쓰야는 특정 조직이나 정치적 이유가 아닌, 개인적 반감으로 인해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치러진 10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찬성 세력이 3분의 2의 의석을 차지하며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숙원으로 삼았던 ‘자위대 명기 개헌’의 발판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기시다 총리가 총재인 자민당은 ▲헌법 9조에 자위대의 헌법 명기 ▲긴급사태 조항 창설 ▲참의원 선거 합구(合區) 해소 ▲교육 환경 충실 등 개헌안 4개 항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핵심 공약은 자위대의 헌법 명기다.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 9조는 태평양 전쟁 등을 일으켰던 일본의 패전 후 전쟁·무력행사의 영구적 포기, 전력(戰力) 불보유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자유대를 헌법에 명시해 궁극적으로는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일본과 역사문제로 갈등이 깊고, 여전히 위안부 및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의 사과나 배상이 마무리되지 않아 아베의 죽음을 대하는 한국인의 평가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아베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평생 꿈꾸던 일본의 ‘보통국가’가 실현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고통과 상처가 담긴 역사를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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