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과 세포막의 비밀

[학생 기자 11기/ 김정윤 기자] 물과 기름을 한 컵에 넣고 섞는다고 상상해보자. 아무리 세게 흔들어도 기름의 점성도가 물의 점성도보다 더 높기 때문에 결국 기름은 물에 다시 떠오르게 된다. 여태까지 우리는 이를 단순히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지만 이 익숙한 현상은 사실 점성도뿐만 아니라 한 생명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또 다른 화학적 원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더불어, 우리 몸은 약 37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세포 각각마다 바깥과 내용물을 분리시키는 세포막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막이 분자들이 일일이 조립한 것이 아니라 세포막을 구성하는 인지질이 물과 만나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인지질은 무엇이며 분자들은 어떻게 설계도 없이도 세포막 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일까? 화학과 생물의 원리로 알아보자.
세포막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우선 앞서 언급한 인지질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인지질이란 (phospholipid), 세포막을 구성하는 핵심 분자로, 글리세롤 (glycerol)과 인산기 (phosphate group), 그리고 두 개의 지방산으로 구성되어 있는 결합 지질이다. 세포막 구조를 보면 인지질이 복수로 양쪽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 형태를 바로 인지질 이중층 (phospholipid bilayer) 이라고 한다. 또한, 인지질의 화학 구조를 보면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지질의 형태는 마치 머리 하나에 다리 두 개가 달린 작은 문어처럼 생겼다. 작은 문어의 다리 부분이 아래로 마주보게 되어 합쳐지면 인지질 한 겹이 형성되고, 또 다른 한 겹의 다리 부분이 위로 마주보게 합쳐지면 인지질 이중층이 된다. 인지질이 한 겹이 아니라 두 겹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도 이유가 있다. 한 줄로 배열하면 한쪽 다리 부분은 그대로 물에 노출된다. 하지만 만약 두 줄로 배열하면 머리 부분은 바깥쪽 물을 보고 양쪽 다리는 서로 마주 보게 되고, 또 반대쪽 머리 부분도 안쪽 물을 바라본다. 이 때 인지질의 둥근 머리 부분은 물을 좋아하는 친수성 부분이고, 두 개의 긴 다리는 물을 피하려는 특성을 가진 소수성 지방산이다. 물을 좋아하는 친수성 머리 부분과 물을 싫어하는 소수성 지방산 부분의 성질을 바로 양친매성 (Amphipathic)이라고 한다. 친수성 머리는 물을 향하고, 소수성 다리는 물을 피하려고 안쪽을 향한다. 친수성과 소수성이 공존하는 성질 때문에 인지질은 스스로 최대한 물에 닿지 않고 안정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원모양으로 안쪽으로 모여 일명 ‘미셀’ 이라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인지질은 이중층이 되어야 모든 친수성 부분은 물과 접촉하고 모든 소수성 부분은 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세포막을 가장 안정화시킬 수 있는 최적의 구조다. 여기서 인지질이 스스로 안정한 구조를 만드는 현상을 바로 자기조립이라고 한다. 세포 내 별다른 지시 없이도 세포막 고유의 성질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지질은 왜 친수성과 소수성을 동시에 가질까?
인지질이 친수성과 소수성을 동시에 가지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전자가 한쪽으로 치우쳐 부분적인 성질인 극성과 비극성 때문이다. 화학에서 극성 분자는 분자 내에서 전자가 한쪽으로 치우쳐 부분적인 양전하와 음전하를 띠는 분자를 일컫는다. 가장 기본적인 물질인 물은 대표적인 극성 분자인데, 그 이유인즉슨 물을 구성하는 산소 (O)가 수소 (H)보다 전자를 더 강하게 끌어당겨 산소 쪽은 약한 음전하, 그리고 수소 쪽은 약한 양전하를 띠기 때문이다. 이 때 전기음성도 차이가 많이 날수록 극성 분자가 된다. 또한, 물 분자끼리는 응집성에 의해 서로 연결되는데, 이 과정에서 수소결합이 형성한다. 수소결합은 물 분자의 한 수소 양전하와 또 다른 물 분자의 산소에서의 음전하, 즉 서로 다른 전하를 띠는 정전기적 인력(electrostatic attraction)을 통해 이루어진다. 반면, 지방산 꼬리는 긴 탄화수소 사슬 (수소와 탄소로만 이루어진 화학적 구조) 로 되어있기 때문에 비극성이다. 탄화수소 사슬이 비극성인 이유는 바로 탄소(C)와 수소(H) 사이의 전기음성도 차이가 매우 작아 전체적으로 분자가 대칭을 이루면서 미세한 차이마저 서로 상쇄되기 때문이다. 탄소의 전기음성도는 약 2.5, 수소의 전기음성도는 약 2.1로, 이 둘 차이가 0.4 밖에 되지 않아 전자가 배치가 균등한 무극성 공유결합을 형성한다. 보통 분자가 극성이 되려면 두 원자의 전기음성도 차이가 0.5 이상에서 1.7 이하여야 한다. 이 때문에 물과 물은 잘 어울리지만, 지방산은 물과 상호작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를 밀어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인지질의 인이 있는 머리 부분이 극성인 반면 지방산 다리 부분은 비극성인 이유도 이와마찬가지다.
물과 기름을 다시 상상해보자. 흔히 사람들은 기름이 물을 싫어해서, 또는 기름의 점성도가 물의 점성도보다 더 높기 때문에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현상은 기름이 물을 싫어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이 자신의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현상에 더 가깝다. 물 분자는 원래 수소결합을 통해 자유롭게 서로 움직인다. 그런데 비극성 지방산이 들어오면 물은 지방산과 결합할 수 없어서 그 주변을 둘러싸며 배열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물 분자들의 움직임이 제한되기 때문에 전체 시스템 (인지질)의 엔트로피가 감소하게 된다. 엔트로피는 분자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자연적으로는 분자들이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안정한 상태를 선호한다. 때문에 지방산들이 서로 모이면 물과 접촉하는 부분이 줄어들고 더 많은 물 분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방산이 모이는 이유 역시 지방산까리 끌어당겨서라기보다 물이 더 안정화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바로 수소성 효과라고 한다.
세포막은 인지질과 여러 종류의 단백질, 콜레스테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백질은 통로를 통해 물질을 이동시키는데 필요하고, 콜레스테롤은 인지질의 유동성을 조절하는데 사용된다. 인지질 지방산 부분의 탄화수소 사슬이 탄소로 빼곡할 경우 인지질의 점성이 높은 반면 탄화수소 사슬에서 탄소가 별로 없는 경우 점성이 낮다. 때문에 콜레스테롤은 인지질 상태에 맞춰 유동성을 조절한다. 세포막의 역할은 단순히 세포와 세포를 분리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지질 이중층 사이에 있는 단백질 통로를 통해 세포의 생명유지를 위한 물질을 전달받는 것도 있다. 하지만 세포는 모든 물질을 다 통과시키는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불필요한 물질은 걸러내는 선택적 투과성을 가진다. 선택적 투과성은 말 그대로 외부에서 세포 안으로 들어오려는 물질이 통과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인데, 여기서 핵심은 바로 인지질의 화학 구조에 있다. 인지질이 비극성과 극성이 공존하는 성질인 양친매성에 따라 극성여부가 중요하다. 선택적 투과성의 핵심은 모든 물질이 세포막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포가 필요한 물질은 받아드리고 위험하거나 불필요한 물질은 차단시킨다. 지방산은 비극성이고 인은 극성을 띠고 비극성 부분을 통과하려면 물질의 극성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소 (O2)와 이산화탄소 (CO2)는 작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비극성이기 때문에 세포막의 비극성을 통과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물 (H2O)는 극성이지만 분자가 작은 편이기 때문에 인지질의 비극성 부분을 직접 통과할 수 있지만, 보통 아쿠아포린이라고 불리는 세포막 내 단백질 통로를 통해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또한, 전자를 잃은 원자인 이온이 세포막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조금 특이한데, 보통 나트륨 이온(NA+)나 칼륨 이온 (K+)은 양전하를 띠면서 동시에 극성이기 때문에 세포막의 비극성 (지방산 부분)를 통과하기 어렵다. 때문에 이온을 세포 안으로 이동시킬 땐 이온 채널이나 펌프라고 불리는 단백질 통로로 이동시키는데, 이 때 채널은 특정 이온만 잘 통과시키도록 구조화됐기 때문에 나트륨 이온 채널은 나트륨 이온만, 칼륨 이온은 칼륨 이온만 쉽게 통과할 수 있다.
이러한 화학적 특징을 응용하여 최근에는 인지질의 화학적 구조가 현대 의료 기술로도 발전되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 지질 나노입자는 앞서 언급한 인지질의 양친매성과 세포막의 구조를 모방하여 유전자 정보를 운반하는 mRNA를 안전하게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기술이다. 이 입자는 아주 미세한 지방 방울로 되어 있어 물질이 세포막에 가까워지면 나노입자가 세포막과 융합되어 세포 내부로 들어가게 한다. mRNA를 지질 나노입자(LNP) 안에 넣으면 나노입자가 이를 흡수하여 mRNA를 세포 안으로 전달한다. 궁극적으로 세포는 전달받은 mRNA를 활용하여 단백질을 만들게 되고, 이 단백질은 서열에 따라 각기다른 가능을 가지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코로나19 mRNA 백신이 있다. mRNA는 스스로 세포막을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세포막과 비슷한 나노입자를 통해 mRNA를 세포 안으로 통과시켰고 이를 통해 세포막의 성질을 응용하여 유전 물질을 운반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더불어 또 다른 기술로는 리포좀 기술이 있다. 리포좀 기술은 이중층으로 만든 구 모양의 작은 인공 세포막으로 이중층을 통해 항암제, 항생제, 유전자 치료나, 화장품에도 활용된다. 원래 항암제를 그냥 주입하면 정상세포도 함께 손상되는데, 리포좀 안에 주입하면 정상세포의 손상은 최소화시키고 특히 암세포까지 보다 더 효율적이게 전달할 수 있다. 또한, 현재는 인지질 이중층을 응용하여 인공세포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지난 2024년 동아사이언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대 화학, 생화학과 교수팀이 한대 세포막보다 더 단순한 물질로 인지질 이중충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아직 연구 단계에 있지만, 인공세포 관련 연구는 앞으로 새로운 약물이나 치료법을 개발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세포막은 단순히 세포를 보호하고 둘러싸는 경계가 아니라 화학적, 그리고 생물학적 성질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구조이다. 특히 인지질의 극성과 수소성 상호작용은 세포 내 어떠한 물질을 통과시키는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인지질의 구조를 모방한 나노입자로 개발된 코로나 백신이나 리포좀 기술을 이용한 약물 등 현대 의학계에서도 많이 응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