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11기 / 허지유 기자] 학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넷플릭스를 켜면 인기 순위 상위권에 위치한 드라마 <참교육>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교실 내 가해자들과 맞서고 무력으로 제압하는 서사는 매일 학교 현장을 마주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그러나 화면 너머 글로벌 시장, 특히 서구권의 시선은 우려에 가깝다. 국내 고등학생들이 체감하는 ‘사이다’ 감성이 서구권의 제도적 기준과 격돌하는 배경에는 어떤 문화적 차이가 있는지 살펴봤다.
단어의 역사적 역전, 우리가 ‘매’를 반기는 이유
드라마 <참교육>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배경에는 ‘참교육’이라는 단어가 가진 역사적 맥락이 존재한다. 한국교육사 자료 및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1980~1990년대 초기 출범 기록에 따르면, 당초 정립된 ‘참교육’은 군사정권식 주입식 교육과 강압적인 체벌에 반대하며 ‘인간 중심 교육’과 ‘학생 인권 존중’을 표방하는 개념이었다. 학교 안에서 신체적 폭력을 완전히 배제하자는 평화적인 움직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2020년대 오늘날 청소년들이 소비하는 참교육의 의미는 ‘물리적인 힘을 통한 응징’과 ‘법을 넘어선 사적 제재’로 그 의미가 정반대로 역전됐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고등학생들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대처 지연이나 소년법의 처벌 수위에 대해 일상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무력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학폭위의 평균 처리 기간이 늘어나며 피해자가 제때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지적돼 왔고, 여론조사에서는 소년법 개정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법 체계가 가해자를 신속하게 제지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청소년들이 미디어 속 강력한 ‘체벌 서사’를 일종의 대안적 판타지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서구권의 ‘체벌 금지 스탠다드’와의 격돌
국내 고등학생들에게는 공교육의 공백을 메우는 통쾌한 정의 구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서구권 청소년과 시청자들에게 이 서사는 보편적인 인권 기준을 위반하는 행위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아동과 학생의 권리를 바라보는 법적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UN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의 권고와 각국의 제도에 따르면, 영미권과 유럽 등 많은 국가에서는 학교와 가정 내 신체적 처벌(Corporal Punishment)을 법으로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서구권 청소년들에게 국가 기관의 감독관이 학생을 직접 폭행하고 체벌로 굴복시키는 장면은 ‘정의의 심판’이 아니라 권력에 의한 아동 인권 침해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특수한 교실 환경을 공유하지 못하는 해외 대중문화 매체들도 작품의 폭력성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예를 들어 Variety는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는 폭력적 해결 방식의 위험성을 지적했고, CBR 역시 학생에 대한 폭력을 단순한 해결책으로 묘사하는 점을 비판했다.
사법 절차의 생략과 글로벌 미디어의 눈높이
서구권 비평가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핵심 쟁점은 ‘정당한 법적 절차의 생략’이다. 극 중 가상의 기관인 교권보호국은 법적 기소나 재판 같은 민주적인 견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는다. 이들은 독점적인 무력을 사용해 학생과 교직원을 단죄한다. 법치주의와 적법절차(Due Process)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러한 초법적 설정이 서사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2023년 9월 원작 웹툰이 일부 회차의 문화적 민감성 및 표현 논란으로 북미 네이버웹툰(Webtoon Entertainment) 플랫폼에서 서비스가 중단된 사례는 드라마의 글로벌 흥행에도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거론된다. 글로벌 미디어 시장이 소수자 인권과 다양성에 민감한 만큼, 정교한 스토리텔링 없이는 전 세계 독자와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보편적 가치관과 K-콘텐츠가 나아갈 길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 같은 세계적인 흥행작들은 한국의 특수한 현실을 다루면서도 그 바탕에는 보편적인 인권 가치를 담아 세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오징어 게임>은 무한 경쟁 사회가 낳은 인간 소외와 빈부격차를 조명했고,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고통과 연대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반면 <참교육>이 마주한 글로벌 리스크는 국내 청소년들이 느끼는 정서적 해방감이 세계적인 보편 규범과 충돌할 때 어떤 한계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드라마의 흥행 이면은 K-콘텐츠가 지속 가능한 글로벌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과 제도적 기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극적인 카타르시스만을 내세운다면, 국내에서의 ‘사이다’가 글로벌 시장에서는 ‘독단적인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국 청소년들의 정서적 공백을 글로벌 시장의 보편적 가치관과 법적 감수성에 조화롭게 연결하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평가받을 수 있다. 한국 청소년들의 정서적 공백을 글로벌 시장의 보편적 가치관 및 법적 감수성과 조화롭게 결합하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