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땠어?” 물음에 10대들이 “음…” 하고 대답하는 이유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11기 / 허지유 기자] 밤 10시, 야간 자율학습이나 학원 일과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고등학생들에게 부모의 “오늘 학교 어땠어?” 혹은 “시험공부는 잘돼가니?”라는 질문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때 대다수 청소년은 정교한 문장 대신 “음…”, “하…”, “끙…” 같은 짧은 무성음, 즉 ‘그런트(Grunt, 끙끙거리는 신음)’로 대답을 대신하곤 한다. 이러한 태도는 가정과 학교 등 사회적 관계 안에서 흔히 ‘무성의함’, ‘예의 없음’, 혹은 ‘사춘기 특유의 반항’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 및 청소년 심리학 연구들은 이 짧은 소리가 반항이 아니라, 인지적 한계에 다다른 10대의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보내는 생물학적 신호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어른의 육체적 ‘끙’과 10대의 인지적 ‘음’: 그런트의 본질적 차이

일상에서 내는 신음 소리(Grunt)는 언뜻 비슷하게 들리지만, 성인과 청소년은 발생 원인과 메커니즘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성인의 그런트는 주로 육체적 압력을 조절하기 위한 생리적이고 도구적인 신호다. 성인은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의자에서 일어날 때 무의식적으로 성대 사이의 공간인 성문(Glottis)을 순간적으로 닫는다. 이를 통해 복부 내 압력(복압)을 높여 척추를 안정적으로 지탱하고 근골격계 부상을 예방하는 ‘생리적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또한 성인이 대화 중 내는 가벼운 그런트(예: “음”, “아”)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비언어적 신호(Backchanneling)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고등학생들이 방과 후 내는 그런트는 육체 근육 보호가 아닌 ‘정신적 피로 방어’와 ‘경계 설정’의 성격을 띤다. 영국의 육아·심리 전문 저술가 태니스 케리(Tanith Carey)의 저서와 관련 연구에 따르면, 온종일 학업과 치열한 교우 관계 속에서 뇌 에너지를 소진한 청소년에게 귀가 후 완전한 문장을 조합해 답변하는 일은 상당한 인지적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청소년의 “음…”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상대의 말을 들었음을 알리는 인지적 타협안이자, 감정이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는 정서적 안전밸브처럼 기능할 수 있다.

‘전두엽 리모델링’과 청소년 뇌의 구조적 특징

이러한 소통의 격차는 사춘기 청소년의 뇌 발달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10대의 뇌는 이성적 판단과 기획, 정교한 언어 표현을 담당하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리모델링 과정을 겪고 있다.

이 시기에는 불필요한 신경망을 정리하는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와 정보 전달 속도를 높이는 ‘수초화(Myelination)’가 동시에 진행된다. 공사 중인 도로처럼 이 시기의 전두엽은 일부 상황에서 정보 처리와 자기조절 능력이 성인보다 미숙하게 나타날 수 있다. 반면 감정과 본능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 상황에서 청소년의 뇌는 이성적인 언어를 고르기 전에 감정적 과열을 먼저 겪기 쉽다. 억지로 문장을 만들다 보면 감정이 섞인 거친 말이 튀어나와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므로, 미성숙한 전두엽은 과부하와 갈등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로 ‘그런트’라는 무성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오해와 훈육 프레임의 한계

기성세대는 이러한 청소년의 비언어적 반응을 ‘가족 간 대화 거부’나 ‘태도 불량’이라는 문제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부모는 자녀가 다정하게 하루 일과를 공유하던 아동기 시절의 의사소통 방식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 갑자기 시작된 자녀의 그런트 반응에 당혹감이나 관계에 대한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이로 인해 “왜 성의 없게 대답하느냐”, “말을 똑바로 해라”와 같은 감정적인 잔소리와 훈육 프레임이 작동하게 되고, 이는 오히려 청소년을 더 깊은 침묵이나 방어적인 그런트 뒤로 숨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청소년 심리 전문가들은 단답형 대답에 부모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다그칠수록 청소년이 대화 자체를 회피하려는 성향을 더 강하게 보인다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10대의 그런트를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피로도와 발달 단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청소년의 심리적 영토를 존중하는 소통의 자세

영미권의 소아청소년 심리학 및 가족 관계 연구자들은 10대의 그런트를 ‘무례함’이 아닌 ‘경계 설정’의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청소년이 주체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Separation-Individuation)에서 자신만의 사유 공간과 심리적 영토를 지키기 위해 비언어적인 보호벽을 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의 보편적인 인권 감수성을 포용해야 하듯, 우리 사회의 소통 방식 역시 청소년의 생물학적 발달 단계에 대한 이해를 포용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의 짧은 대답을 무조건적인 거부로 규정하기보다, 지친 하루의 끝에 문장을 고르고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무음의 시간’을 허용할 때 진정한 양방향 소통이 시작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귀가 직후 곧바로 질문을 쏟아내기보다 20~30분 정도 스스로 정서적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완충 시간을 제공하거나, “오늘 고생 많았어”처럼 즉각적인 답변의 부담을 줄여주는 열린 인사를 먼저 건네는 실천적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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