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11기 / 김지나 기자] 베트남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을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전방위적인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2024년 말 공산당 정치국이 발표한 ‘결의 57호(Nghị quyết 57-NQ/TW)’를 기점으로, 베트남은 과학기술·혁신·디지털 전환을 국가 성장 전략의 중심에 놓는, 이른바 ‘2차 도이머이(쇄신)’를 추진하고 있다.
2024년 12월 22일 또 럼(Tô Lâm) 공산당 서기장이 서명해 공표한 결의 57호는 2030년까지 동남아시아 AI 연구개발(R&D) 상위 3개국에 들고, 세계 선도 기술기업 최소 3곳으로부터 직접 투자를 유치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베트남 언론들은 이 결의를 두고 단순한 기술 도입 차원을 넘어 지식과 데이터, 기술 주권을 바탕으로 국가 경제와 행정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전략적 전환으로 평가하고 있다. 시행 1년 6개월을 맞은 최근 평가에서도, 이 결의를 계기로 디지털 전환과 AI, 디지털 경제 관련 정책들이 빠르게 제도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응우옌 만 훙 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난해 하노이에서 열린 포럼에서 “지식과 창의성, 기술이 가장 중요한 생산 자원이 되는 시대에 진입했다”고 밝히며, 핵심 기술의 자립(‘Make in Vietnam’), 기업·과학자·국가가 함께하는 국가 혁신 생태계 구축, 전 국민이 참여하는 포괄적 디지털 전환, 고급 인재 양성, 관련 법제도 정비를 5대 축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는 특히 디지털 언어를 베트남어·영어에 이은 ‘제3의 언어’로 규정해 전 국민의 디지털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2026년, AI·디지털 법제의 본격 시행
결의 57호 이후 국회를 통과한 일련의 법률은 2026년부터 실질적인 효력을 갖는다. 2025년 6월 제정된 디지털 기술 산업법은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으며, AI 시스템을 건강, 권리, 안전, 국가 핵심 정보시스템 및 인프라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위험 등급으로 분류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사회적 신용점수 시스템과 같은 특정 AI 활용은 명시적으로 금지되며, AI가 만든 콘텐츠는 기계가 판별할 수 있도록 식별 표시를 의무화했다. 이용자 보호 차원에서는 AI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알리는 조항도 신설됐다. 뒤이어 2026년 3월 1일부터는 베트남 최초의 단독 AI 법이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은 AI 위험을 저·중·고 3단계로 분류하고, 딥페이크나 사회 조작과 같은 ‘수용 불가능한 위험’ 애플리케이션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R&D(Research and Development, 연구 개발) 비용의 150% 세액공제, 전문가·과학자에 대한 5년간 개인소득세 면제 등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함께, 최대 2년간(연장 가능) 신기술을 시범 운영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도 함께 도입돼 기업의 AI 투자 부담을 낮췄다. 다만 미국 국제무역청(ITA)은 위험 등급 분류 기준의 명확성이 아직 부족하고, 고위험 시스템에 대한 규제가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도록 하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데이터 관련 법제도 동시에 정비됐다. 2024년 11월 제정돼 2025년 7월부터 시행된 데이터 법은 데이터를 민법상 재산권으로 인정해 데이터 소유자가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2025년 6월 제정돼 2026년 1월부터 시행된 개인정보 보호법은 AI, 은행, 의료, 보험 등 업종별 규정을 담았으며 베트남 국민의 개인정보가 국외에서 처리되는 경우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여기에 2018년 사이버 보안법을 대체하는 개정 사이버보안법이 2025년 말 국회를 통과해 2026년 초 시행에 들어가면서 금융기관·디지털 플랫폼·통신사 등으로 데이터 현지 저장 의무의 적용 대상이 크게 넓어졌다.
이 밖에도 자국산 기술 제품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바우처(voucher) 지원 제도가 새로 마련돼, ‘메이드 인 베트남’ 제품이 초기 시장 진입 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직접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시행되고 있다.
공공 부문 디지털 전환, 구체적 성과
정책의 효과는 공공 행정 영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가 인구 데이터베이스는 13억 건 이상의 조회와 5억 3,700만 건의 데이터 동기화를 처리하며 부처·지방 간 연계 체계를 구축했고, 전자신분증 애플리케이션 VNeID는 공공서비스·의료·교육·금융 분야에서 활용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전체 행정서비스의 약 46%가 온라인으로 제공됐으며, 정부는 2025년까지 이 비율을 8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결과 유엔 전자정부 발전 지수(EGDI)에서 베트남은 193개국 중 15계단 상승한 71위를 기록했다.
베트남 통계총국에 따르면 디지털 경제는 2024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18%를 차지했으며, 이는 2023년 대비 20% 증가한 수치다. 정부는 2025년 GDP 대비 비중을 20.5%로, 총매출은 2024년 약 400억 달러에서 30% 늘어난 520억 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2030년까지는 GDP의 25~3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Bain & Company 분석 기준으로는 베트남 디지털 경제가 2023년 연평균 19%의 성장률로 아세안 회원국 중 가장 빠르게 성장했으며, 2030년까지 900억~2,0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