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 속 베트남, ‘딜레마’에 빠진 양날의 검

[객원 에디터 11기 / 김지나 기자]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재점화되면서 베트남 경제가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6년 1분기 기준 미국의 대중국 교역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500억 달러 가까이 줄어든 반면, 대만·베트남·멕시코와의 교역은 오히려 늘어났다. 반도체·서버 수요 급증에 힘입은 대만과 함께, 관세를 피해 생산기지를 옮기는 기업들 덕분에 베트남 역시 미국과의 교역이 눈에 띄게 증가한 나라로 꼽힌다. 실제로 많은 미국 기업이 생산 거점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겼고, 일부 중국 기업들도 관세를 우회하기 위해 같은 길을 택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로위 연구소(Lowy Institute)에 따르면 베트남은 20%에 달하는 미국 관세와 거세지는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 속에서도 2025년 수출액 4740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보다 약 700억 달러나 늘었다. 제조업 국내총생산(GDP)은 10% 성장했고, 새로 생겨난 산업 일자리는 26만 5,000개에 달했으며,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소득도 6% 올랐다. 저생산성 농업에 묶여 있던 노동력이 산업 부문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뚜렷하다. 이는 2018년 시작된 1차 미중 무역전쟁 당시 베트남이 산업화 진전, 정규직 고용 확대, 외국인 직접 투자(FDI) 유입 확대 등의 혜택을 봤던 패턴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다만 이런 성과의 이면에는 만만치 않은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신용보험사 크레덴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애초 베트남에 46%라는 이례적으로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려 했던 배경으로, 베트남이 미국의 3대 무역적자국이라는 점을 들었다고 지적한다. 미국 시장이 베트남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를 넘어 아시아에서는 캄보디아 다음으로 높다는 점에서, 관세 리스크가 베트남 경제에 미치는 실질적 위협은 결코 작지 않다. 실제로 2025년 한 해 동안 미국의 대베트남 무역적자는 547억 달러나 불어나 1782억 달러에 달했고, 2026년 5월에는 월간 기준으로 멕시코를 제치고 미국의 최대 무역적자국 중 하나로 올라서기도 했다. 이는 베트남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경제구조를 갖고 있어, 미·중 패권 경쟁의 향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크레덴도는 이런 구조가 장기적으로는 무역 상대국의 다변화를 요구하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트남무역진흥센터(WTO Center)가 정리한 자료를 보면, 2025년 한 해 동안 미·중 관세는 최고 145%까지 치솟았을 만큼 갈등이 격화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 관세 부담의 상당 부분을 정작 미국 기업과 소비자가 짊어졌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무부 집계에 따르면 관세 비용의 14%만 외국 수출업체가 부담했을 뿐, 64%는 미국 기업이, 22%는 미국 소비자가 떠안았다. 이처럼 미중 양국 모두 상당한 경제적 대가를 치르는 가운데, 베트남과 같은 제3국은 두 나라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반사이익을 얻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계 시장조사기관 비앤컴퍼니는 이러한 흐름이 외국인 투자 통계에서도 확인된다고 분석한다. 2023년 기준 베트남에 대한 신규 등록 외국인 직접 투자에서 미국은 6억 4,700만 달러(전체의 2%, 10위)에 그쳤고 중국은 약 50억 달러(12%, 4위)를 기록했는데, 관세를 피해 생산기지를 옮기려는 기업들이 늘면서 두 나라 모두의 투자 규모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의 경제 허브이자 미·중  양국 모두와 전략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지리적·외교적 이점이, 관세 부담이 큰 산업들의 대체 생산기지로서 베트남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사이익’을 곧바로 베트남의 완전한 승리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중국산 제품이 베트남을 거쳐 원산지를 세탁한 뒤 미국으로 우회 수출되는 이른바 ‘환적’ 문제가 미국 정치권의 단골 의심거리로 떠올랐고, 이는 베트남을 향한 미국의 통상 압박을 오히려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로위 연구소 역시 베트남의 대미 수출 증가가 단순히 중국산 부품의 경유지 역할에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실질적인 산업 고도화로 이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데이터상으로는 베트남 자체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여전히 대미 수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단순한 우회 수출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반박도 존재한다.

결국 베트남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성장의 상당 부분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축에 의존하고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 관세 리스크, 환적 논란, 공급망 재편에 따른 변동성은 앞으로도 베트남 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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