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뿐이던 하노이가 ‘성수동’이 될 때까지

[객원 에디터 11기 / 김지나 기자] 2019년, 아버지의 해외 파견으로 도착한 베트남 하노이의 첫인상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의 나에게 하노이는 한국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써 노력해야 하는 곳이었다. 당시 한국 상점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미딩 일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통적인 한국식 고깃집이나 투박한 간판의 식자재 마트가 전부였다. 한국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큰마음을 먹고 식당가를 찾아가야 했고, 그마저도 세련된 감성보다는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는 향수의 공간에 가까웠다. 그 시절 하노이 거리에서 지금처럼 길거리마다 마주치는 세련된 한국형 카페나 화려한 네온사인의 포토부스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가 기억하는 하노이는 베트남 특유의 활기와 한국 주재원 사회의 정서가 공존하던, 조금은 단조로운 풍경의 도시였다.

하노이의 상권이 이토록 역동적으로 뒤바뀌게 된 배경에는 2019년 전후로 발생한 거대한 경제적 이동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가 전 세계적인 생산 거점을 베트남으로 본격적으로 이전하면서 수많은 협력업체와 관련 인력이 동반 이주했다. 이는 단순히 노동력의 이동을 넘어 가족 단위의 이주라는 새로운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냈다. 나의 가정처럼 수천 가구의 한국인 가족이 하노이에 정착하면서 시장의 요구는 급격히 세분되었다. 단순히 밥을 먹는 식당을 넘어 아이들이 공부할 학원, 주부들이 소통할 카페, 그리고 청소년들이 문화를 누릴 공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 시기에 유입된 한국 인구는 하노이 내 K-상권이 자생력을 갖추고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배후 수요가 되었다.

7년이 흐른 2026년 현재, 내가 걷고 있는 하노이의 거리는 더는 낯선 타국이 아니다. 이제는 한국의 최신 경향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K-라이프스타일의 최전선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업종의 다양화와 프리미엄 화다. 과거 고깃집 일색이었던 거리에는 이제 한국의 홍대나 성수동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감성 카페들이 들어섰다. 또한, 한국형 만화방에서 웹툰을 읽고, 포토이즘이나 인생네컷 같은 셀프 스튜디오에서 친구들과 추억을 남기는 것은 이제 하노이 젊은이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때때분식 같은 정겨운 이름의 한국식 분식집과 최신 K-패션을 선보이는 옷가게들은 현지인과 한국인 모두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은 단순히 한국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놀이 문화와 감성을 그대로 이식했다는 점에 있다. 베트남의 Z세대는 한국 상점을 단순한 소비처가 아닌, 가장 트렌디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상권의 지형도 또한 크게 변했다. 전통적인 강자인 미딩 (다양한 한국 업종 상점이 위치한 곳)과 쭝화 (미딩을 이어서 하노이 한국 사람들이 여과 활동을 즐기러 찾는 제2의 장소) 가 여전히 한국인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스타레이크, 스카이레이크, 가드니아, 에메랄드 등 신축 아파트 단지들은 프리미엄 K-상권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다. 특히 하동 지역은 현지인 중심의 가성비 K-음식 성지로 변모하며 한국 문화가 베트남 대중 속으로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를 보여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의 지속적인 투자와 인프라 개발이 이러한 상권 확장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 모든 수치와 분석보다 더 명확한 증거는 바로 나 자신의 일상이다. 2019년 하노이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한국의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움을 달래야 했던 평범한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2026년의 나는 이곳 하노이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가 가장 아름답게 어우러진 풍경을 매일같이 목격하며 성장하고 있다. 이제 곧 기말고사가 끝난다.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가장 완벽한 보상은, 친구들과 함께 한국의 숨결이 가득한 미딩 거리를 걷는 것이다. 갓 튀겨낸 치킨을 먹고, 포토부스 안에서 추억용 사진을 찍으며, 세련된 한국식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일상. 7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 풍경은, 이제 2026년 하노이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당연하고도 소중한 행복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하노이 내 한국 상권은 단순한 ‘한인 타운’의 개념을 넘어 베트남 전체 소비 경향을 주도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2026년 현재 확인되는 한국 문화의 확산 속도와 현지화 전략을 고려할 때, K-라이프스타일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베트남 중산층의 표준화된 라이프스타일로 굳어지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과 결합한 리테일 테크와 프리미엄 서비스의 결합은 앞으로 베트남 상권의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모델이 될 것이다. 하노이의 거리는 이제 양국 문화가 교차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협력의 생생한 현장이자, 아시아 도시 문화의 미래를 보여주는 가늠자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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