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구글 Gemini 제공 >
운남성에서 건너온 ‘힙한 전통’, 글로벌 Z·알파세대를 결속시킨 차 문화의 습격
[객원 에디터 11기 / 허지유 기자] 회색 빌딩이 빽빽한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최근 이곳에 낯설고도 싱그러운 초록색 가림막이 등장해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거대한 식물 아치와 대형 컵 조형물로 꾸며진 이 공간의 정체는 중국에서 건너온 프리미엄 티 브랜드 패왕차희(霸王茶姬, CHAGEE)의 한국 1호점이다. “이번 봄, 진짜 차가 옵니다”라는 호딩(가림막) 문구와 함께 ‘도심 속 숲’을 표방하는 이 공간은 커피 소비가 압도적인 한국 시장에 새로운 차 문화의 상륙을 예고한다.
패왕차희의 시작은 차의 본고장이자 보이차의 발원지인 중국 운남성 쿤밍이다.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해외 진출을 앞두고 CHAGEE라는 치밀한 영문 네이밍 전략을 세웠다. 중국어 원문 ‘빠왕차지’의 어려운 발음을 버리고, 차(CHA)에 경극의 여인을 뜻하는 희(GEE)의 발음을 결합해 글로벌 접근성을 높였다.
실제로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는 2025년 4월 분석 기사를 통해 “패왕차희가 동양의 미학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하여 서구 Z세대의 진정성(Authenticity)을 관통했다”고 보도했다. 포브스는 특히 미·중 무역 갈등이라는 대외적 변수 속에서도 이 브랜드가 가진 문화적 매력이 전 세계 시장 확장의 핵심 동력이 됐다고 짚었다.
“맛이 풍부해서 아껴 마셔요”… 학생들이 말하는 ‘미학적 소비’
중국 경제 매체 제일재경(Yicai Global)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 앤 설리번(Frost & Sullivan)의 데이터에 따르면, 패왕차희는 특정 세대의 전유물을 넘어 젊은 세대의 문화적 연대를 보여주는 상징물로 진화하고 있다. Z세대가 ‘커피보다 힙한 차’라는 인식을 개척했다면, 알파세대는 이를 가장 세련된 라이프스타일로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중국 고등학생들은 패왕차희의 인기 비결로 ‘차 본연의 풍미’를 꼽았다. 이들은 “맛이 정말 풍부해서 한 모금씩 아껴 마시게 된다”고 답했다. 특히 입술로 살짝 축이며 음미하는 ‘민(抿, mǐn)’이라는 동작은 차의 향과 여운을 즐기는 여유로운 차 문화의 특징을 드러낸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는 기존의 고당도 버블티 모델에서 탈피해 원엽 추출 방식을 강조한 패왕차희의 프리미엄 전략이 글로벌 알파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새로운 취향의 형태(Form)와 향후 반응
현대백화점 유통 관계자들에 따르면, 패왕차희의 국내 진출은 치밀한 단계별 전략을 거쳤다. 지난 2024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첫 팝업스토어가 기록적인 ‘오픈런’을 기록하며 시장성을 확인했다면, 2025년 ‘더현대 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된 대규모 캠페인은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로 공식 발탁된 아이돌 장원영을 전면에 내세워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 공유된 수만 건의 자발적 후기는 이미 국내 젊은 층의 높은 수용도를 보여준다.
트렌드의 심장부인 강남역에서 천 년의 차가 어떤 취향의 형태(Form)로 자리 잡을지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중국에서 화제가 된 ‘음미(抿)의 문화’가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도심 속 숲을 표방한 이 공간에 대한 향후 반응이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