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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 ‘동해’ 이름을 찾기 위한 새로운 여정

Illustration by Yunji Kim (NAS Dubai Y11)

by Youjin Sohn (NLCS DUBAI Grade 8)

해양 영토는 나라의 군사 전력, 국가 안보, 무역, 자원 등 여러 요소와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 더군다나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바다에서 먹거리는 물론 다양한 해양 산업을 하고 있으며, 세계로 뻗어가는 교통로이다. 해양 영토, 특히 동해는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관련돼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지키고, 표기를 바로잡아야 한다. 역사는 한 나라의 정체성이며, 문화이므로 잊어서도 안 되고,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앞에 국민들이 나섰다.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인들은 우리나라를 바로 알리고, 아이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동해 표기를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버지니아 주의 교과서에는 ‘동해’라는 표기가 등장했다. 선생님들도 동해 표기에 찬성하는 목소리였다. 동해 표기로 바뀐 이유를 학생들에게 설명하면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주에서는 비록 하원의원에서 동해 표기 법안이 무산됐지만, 이후 교육청 행정명령으로 역사적 이유를 설명하며 일본해와 동해 모두 가르치라는 지침이 나와 출판사들이 자발적으로 동해를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에 있는 한인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이고, 그만큼 동해 표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오래전부터 동해는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 지도에서도 ‘동해’ 또는 ‘조선해’라고 불렀지만, 일본은 식민지 야욕을 키우며 국제기구를 이용해 ‘일본해’로 바꾸는데 집중하였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넓혀졌고, 러일전쟁에서는 승리를 위해 독도를 러시아 군함을 감시하는 초소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독도는 동해 한가운데에 있었으므로, 1897년에 처음으로 일본해군수로지에 ‘일본해’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일본은 ‘일본해’라는 이름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국제기구를 이용하였다. 1928년 국제수로기구(IHO)가 바다와 해양의 명칭에 관하여 회의를 했는데, 그때 일본은 이미 한국을 식민주의로 점령하여 한국의 땅과 바다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 권한으로 일본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국제수로기구에 ‘일본해’라는 명칭을 단독으로 등록하였다.  한국은 주권이 빼앗긴 상태여서 일본이 제출한 것에 반대할 수 없었다. 이후 1953년 국제수로기구가 해도집을 보완했는데, 한국은 국제수로에 가입하지 않았고,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상황이어서 역시나 동해라는 명칭을 제출할 수  없었다. 해도집의 영향력은 막강했기 때문에 이렇게 일방적인 주장으로 정해진 명칭은 지금까지 많은 지도와 교과서 등에서 쓰이고 있다. 

한반도 동쪽에 위치한 바다를 ‘일본해’라고 부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명칭이고, 심지어 우리가 쉽게 부르는 애국가에서도 동해라는 표기를 찾을 수 있다. 첫 소절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하며 역사적인 근거에서도 동해는 자주 등장한다. 무려  1600년 전인 414년에 장수왕이 아버지를 위해 만든 광개토대왕비에 ‘동해고’하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동해 해변가에 있는 마을을 뜻한다. 김부식이 집필한 삼국사기의 1145년 경 쓰인 고구려 본기에 ‘동해의 물가에 땅이 있는데…’ 라며 동해라는 지명이 다시 등장한다. 신라본기에도 681년 문무왕의 장례가 동해에서 치러졌다고 나와있다. 조선 숙종 때의 문헌에도 울릉도의 위치를 설명하며 동해라는 표기를 사용했다. 또한, 통일신라부터 조선까지 여러 가지 금석문에 동해가 새겨져 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지도에도 한국해, 또는 조선해라고 표기돼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19세기까지 일본의 지도에서도 동해나 조선해라고 명시돼있다는 사실이다. 1810년에 제작된 일본의 세계지도인 신정만국전도에는 조선해라고 적혀있다. 심지어 18~19세기까지 일본은 동해 바다의 이름을 아예 몰랐거나 조선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국주의의 야욕이 커지면서 시치미를 떼고 일본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관련된 역사적 근거가 많고, 우리의 역사와 큰 연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동해 표기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

국제문서에서 처음으로 동해 표기가 등장한 것은 1965년 한일 어업 협정 때였다. 하지만 이후에 동해 표기 병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동해 표기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시작됐다. 유엔가입 전에는 국제적인 문서들에 동해가 일본해라고 표기되어 있었던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일본은 유엔이 ‘일본해’ 단독표기만 인정한다고 주장하지만 유엔의 지명표준화 결의문에는 ‘하나 이상의 국가 아래 두 개 이상의 지명이 사용되는 경우에는 하나의 이름으로 합의하도록 노력하거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서로 다른 지명을 모두 수용하도록 하는 것을 국제 지도 제작의 일반 원칙으로 삼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유엔에 건의를 했지만, 유엔은 ‘일본해’라는 용어의 사용을 “승인”한 적이 없다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나서는 방법이 먹히지 않자, 2000년대 초부터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나서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제공되는 지도들에 모두 일본해 표기 있는 것을 보고 전 세계 학자들, 언론사, 출판사, 1000여 개의 교과서 회사, 지도 제작회사 등에 수없이 메일을 보냈다. 그 결과,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일본해를 동해로 바꾼 첫 성과를 이루었다. 이후 캐나다의 지도제작회사도 주장이 대립하는 명칭은 2개의 이름을 같이 쓰기로 했다. 따라서 동해 병기 사례는 매년 증가했고, 1990년 2%에서 2017년 28%, 그리고 2020년에는 40%까지 올랐다. 

최근 동해 표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해졌다. 2020년 IHO 총회에서 새로운 S-23 해도집에서 지명을 사용하지 않고 숫자 표기로 전환하기로 최종 확정한 것이다. 또한, 세상의 변화에 맞춰 전자해도의 발전과 사용도 논의했다. 우리나라가 전자해도 개발에 큰 힘을 쓰고 있으니, 만약 우리나라가 개발한 전자해도가 채택되어 널리 쓰이게 된다면 동해를 보다 많이 알릴 수 있게 된다. 전자해도는 지면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동해 지명을 지도에 표현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고, 동해에 대한 설명을 보다 확대할 수 있다. 따라서 민간과 정부의 노력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질 전자해도에 우리나라의 기술을 적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꾸준히 해외에 동해를 알리고, 요즘은 개인의 SNS가 널리 활성화된 만큼 개인적으로 알리려는 노력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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