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이코노미]디지털 자원의 시대 – 토크나이제이션은 금융을 어떻게 바꾸는가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윤채원 기자] 10억 원짜리 아파트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아파트에 투자하고 싶어도 10억 원이 없으면 방법이 없다. 1억 원이 있어도, 5억 원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이라는 자산은 쉽게 쪼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부동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미술품, 선박, 음악 저작권도 마찬가지다. 자산을 나눌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가 오랫동안 금융 시장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 왔다. 토크나이제이션은 바로 이 한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기술이다.

토크나이제이션이란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증서, 즉 ‘토큰’으로 잘게 나누어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이다. 부동산, 미술품, 음악 저작권 등 기존에 거래가 어렵던 다양한 자산을 토큰화하고 증권형 토큰으로 발행해 유동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 목적이다. 예를 들어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100만 개의 토큰으로 쪼개면 토큰 하나의 가격은 1,000원이 된다. 이 토큰을 사면 해당 아파트의 100만 분의 1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된다. 주식이 기업의 가치를 지분으로 나눠 거래하듯, 토크나이제이션은 이 원리를 다양한 실물 자산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 소유권 기록을 관리하는 것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특정 기관 하나가 장부를 보관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 세계 수천 개의 컴퓨터가 동일한 기록을 동시에 나눠 저장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누군가 임의로 기록을 수정하거나 위조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 증권은 정산과 결제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거래 시간이 짧고, 중개인이나 공증인 같은 제3자 비용도 줄어든다.

이러한 구조는 전통 금융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건드린다. 첫째는 진입 장벽이다. 지금까지 고가 자산에 대한 투자는 처음부터 거액을 동원할 수 있는 계층에만 열려 있었다. 자산 가격이 오를수록 자본을 가진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토크나이제이션은 투자 접근성을 높이고, 소액 투자자도 고가 자산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둘째는 유동성 문제다. 부동산을 팔려면 매수자를 찾는 것부터 등기 이전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토크나이제이션은 비유동성 자산의 유동성을 높여, 원래 묶여 있던 자산을 보다 쉽게 거래 가능한 형태로 전환한다. 셋째는 투명성이다. 기존에는 소유권 기록이 등기소나 은행 같은 중앙기관에 집중되어 있었다.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은 이 기록을 분산 저장함으로써 외부 개입 없이도 누구나 소유 관계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런 흐름은 이미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2024년 3월 공개 블록체인 상에서 토큰화 펀드 BUIDL을 출시했으며, 블랙록 CEO 래리 핑크는 수차례에 걸쳐 모든 금융 자산이 결국 토큰화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2022년 50억 달러 수준이었던 실물 자산 토큰화 시장은 2025년 6월 기준 24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2030년대에는 수십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2024년 10월 정부는 증권형 디지털 자산에 대한 규제 개정안을 발표했으며, 2025년에는 토큰증권의 법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금융 생태계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토큰화 증권은 점차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투자자 보호와 제도적·기술적 제약으로 인해 민간 주도 사례가 단기간 내 보편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토큰의 거래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코드인 스마트컨트랙트에 오류가 생기거나 해킹이 발생하면 자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 경우 책임 소재도 명확하지 않다. 구조적인 한계도 있다. 토큰 시장은 거래 참여자가 많아야 유동성이 생기는데, 참여자가 모이려면 이미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어야 한다. 유동성 부족이나 제도적 안전장치 미비로 인해 블록체인 기반의 이상적인 탈중개화 모델이 단기간 내 구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토크나이제이션을 단순히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 변화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더 핵심적인 의미는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째로 갖는 것을 의미했다. 앞으로는 디지털 증서의 형태로 자산의 일부를 소유하고, 그 권리를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거래하는 방식이 점차 일상화될 수 있다. 지금의 청소년 세대가 경제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점에는 금융의 기본 풍경이 지금과 상당히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위즈덤 이코노미]최근 국제 무역의 재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기업과 기업,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연결은 긴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경제는 각 주체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 고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제 경제는 연결을 통해 발전하지만, 그 연결을 통해 위험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국제경제학은 이러한 상호의존적 관계를 분석하며, 각 나라의 무역·금융·산업 정책 등을 통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위즈덤 아고라 윤채원 기자의 ‘위즈덤 이코노미’은 복잡하게 얽힌 국제 경제의 연결 관계를 통해 독자와 함께 변화하는 세계를 보다 넓은 시각으로 이해하고 배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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