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Claud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윤채원 기자] 2026년 1분기, 전 세계 반도체 업계는 유례없는 숫자들과 마주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스마트폰·노트북·AI 서버 안에는 두 종류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메모리(D램)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낸드 플래시다. 삼성전자는 이 둘을 모두 만들고, SK하이닉스는 메모리에 집중한다. 이 두 회사가 전 세계 메모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D램 가격은 단 한 분기 만에 55~60% 급등했고, 낸드 플래시 역시 33~38% 뛰었다. 공급사가 고객에게 실제로 할당할 수 있는 물량은 수요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것이 과거와는 어떻게 다른 슈퍼사이클인지, 혹은 슈퍼사이클도 아닌 지속 상승인지 다양한 전문가들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거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족쇄는 수요 변동성
2000년대 이후 메모리 반도체 장기 호황은 크게 세 번 찾아왔다. PC 보급과 인터넷 개막(2000년대 초중반), 스마트폰 혁명(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 교체 수요와 가상자산 채굴 붐(2017~2018년)이다. 세 번 모두 일반 소비자용 제품의 유행이나 교체 주기에 맞물려 시작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수요가 늘면 제조사들은 공장을 짓는다. 그런데 반도체 공장은 짓기로 결정한 뒤 실제 가동까지 2년 이상이 걸린다. 호황이 절정일 때 착공한 공장이 완공될 무렵엔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였다. 공급이 넘치면 재고가 쌓이고, 서로 먼저 팔려고 가격을 깎다 보면 결국 전체 가격이 폭락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수요가 다시 폭증했지만, 금리 인상과 일상 회복이 맞물리자 호황은 6개월 만에 끝났다. 소비자의 변심 한 번에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였다.
현재 반도체 시장의 요인 – AI 발전, 공급 구조, 수요의 다양성
하지만 지금 반도체 시장의 호황을 이끄는 건 소비자가 아니다. 메타·구글·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장기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AI 패러다임 속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통해 AI 인프라에 돈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엔 반도체를 미리 만들어놓고 팔았지만, 지금은 주문이 들어와야 만든다. 재고를 쌓을 이유가 없고, 공장을 무리하게 늘릴 이유도 없다. 마이크론은 올해 생산할 HBM 전량을 이미 장기 계약으로 다 팔았다. SK하이닉스 재고는 2주치에 불과하다. 2026년 물량은 사실상 매진됐고, 2027년 물량도 올 1분기 안에 소진될 가능성이 나온다.
수요가 HBM 반도체 하나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는 AI가 대화 맥락을 기억하려면 별도의 저장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엔비디아는 이를 위한 전용 저장 플랫폼을 따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골드만삭스는 이 플랫폼이 도입되면 AI 칩 하나가 쓸 수 있는 메모리가 지금의 16배로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수요는 저장장치로도 번지고 있다. 씨티는 올해 서버용 D램 가격이 144%, 저장장치 가격이 87% 오를 것으로 봤다. 로봇도 변수다. 최첨단 휴머노이드 로봇 한 대에는 고성능 메모리 64~128GB, 저장장치 1~2TB가 들어간다. 로봇 시장이 수백만 대 규모로 커지면 수요는 또 한 번 뛴다.
슈퍼사이클인가 지속적인 성장인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6년을 1990년대 IT 호황에 버금가는 장기 상승장으로 봤다. D램 매출이 지난해보다 51%, 낸드는 45%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JP모건은 이 상승장이 최소 2027년까지 간다고 했다. 단순한 반짝 호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호황은 소비자 수요에 기댔고, 그래서 소비자가 지갑을 닫는 순간 끝났지만, 이번 반도체 시장의 호황은 AI 패러다임이 흔들리지 않는 한 수요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낙관론만이 전부가 아니다 – 새로운 패턴, 그리고 새로운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
그렇다고 이번 호황이 리스크로부터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첫째는 엔비디아 칩 문제다. 엔비디아가 새 세대 칩을 낼 때마다 거기 들어가는 HBM 용량도 함께 늘었다. 그게 자연스러운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 신제품에선 HBM 탑재량이 이전과 같다. 저절로 수요가 느는 효과가 사라지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이 때문에 2026년 HBM 공급이 수요보다 5% 이상 많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둘째, 삼성전자다. 삼성이 엔비디아에 납품하려고 가격을 크게 낮추면 지금의 판도가 흔들린다. 파는 쪽이 아니라 사는 쪽이 가격을 쥐게 된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HBM 가격이 지난해보다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 중국이다.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 CXMT는 고성능 메모리 개발을 마쳤고 올해 하반기 출하를 준비 중이다. 화웨이도 자체 고성능 메모리를 AI 칩에 넣겠다고 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시장에 풀리면 공급 과잉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넷째, 가격의 한계다. 빅테크는 반도체 값이 올라도 살 수밖에 없지만 일반 소비자는 다르다. 델·레노버·HP는 이미 올해 PC 가격을 15~20% 올리겠다고 했다. 가격이 너무 오르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거나 싼 중국산으로 갈아탄다.
한국 두 회사가 만드는 반도체가 없으면 지금 전 세계 AI 서버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 공급망 하나가 흔들리면 빅테크의 투자 계획도, 각국의 AI 전략도 함께 흔들린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생산 결정이 실리콘밸리의 데이터센터 착공 일정을 바꾸고, 엔비디아의 칩 설계가 한국 공장의 생산 라인을 바꾼다. 한 나라의 산업 정책이 다른 나라의 기업 전략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반도체는 지금 그 연결의 한가운데 있다. 어느 한 곳이 흔들리면 연결된 모든 곳이 함께 흔들린다. 이번 호황이 단순한 업황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위즈덤 이코노미] 최근 국제 무역의 재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기업과 기업,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연결은 긴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경제는 각 주체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 고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제 경제는 연결을 통해 발전하지만, 그 연결을 통해 위험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국제경제학은 이러한 상호의존적 관계를 분석하며, 각 나라의 무역·금융·산업 정책 등을 통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위즈덤 아고라 윤채원 기자의 ‘위즈덤 이코노미’은 복잡하게 얽힌 국제 경제의 연결 관계를 통해 독자와 함께 변화하는 세계를 보다 넓은 시각으로 이해하고 배우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