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과 성적 뒤에 숨은 청소년의 마음
<일러스트 Canva Ai 제공>
[위즈덤 아고라 / 이은율 기자]한국 청소년들은 “좋은 성적은 좋은 대학으로 이어지고, 결국 좋은 삶을 보장한다”는 공식 아래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낸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원으로 이동하고, 방학이 되어도 쉬지 못한 채 선행 학습과 보충 수업에 참여하는 일상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극단적인 학습 환경을 보여주듯, 하루 네 시간만 자면 대학에 붙고 다섯 시간을 자면 떨어진다는 의미의 ‘4당 5락’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는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수면 부족과 과도한 경쟁을 감수하는 것이 성공의 조건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상징한다.
그러나 늦은 밤까지 공부하며 잠과 식사를 줄이는 현실은 결코 ‘공부량의 문제’로만 설명될 수 없다. 충분한 휴식과 정서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지속적인 압박과 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우울감과 무기력, 심리적 소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성취와 경쟁을 최우선에 두는 교육 구조가 아이들의 삶에 어떤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비용을 과연 누가 감당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성적 경쟁과 학습 환경이 청소년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많은 학생들이 학업과 학원으로 빼곡한 일과를 보내면서 정서적 스트레스를 겪는다. 오마이뉴스의 연재에서는 청소년들이 방학에도 학원에서 하루를 보내며 잠과 끼니까지 줄여가며 공부하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 학생들은 학교 수업보다 빠른 진도나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을 다니지만,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단순히 학습량의 증가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이 경험하는 정서적 압박과 불안, 우울은 성적 중심의 비교와 경쟁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경쟁적인 학교 환경에서 학습하는 학생일수록 불안, 학업 소진, 정서적 스트레스를 더 많이 경험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특히 이러한 환경에 민감한 학생일수록 정신적 어려움이 심화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Burns et al., 2024). 반면, 학생이 학교를 안전하고 지지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고 교사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며 또래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을 경우, 우울과 불안 수준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Wang & Degol, 2016).
이러한 결과는 긍정적인 학교 분위기가 청소년 정신 건강에 있어 중요한 보호 요인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취와 비교, 경쟁이 강조되는 학교 분위기에서는 학생들의 정서적 어려움과 행동 문제가 증가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학업 스트레스를 넘어 심리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더불어 최근 디지털 환경의 변화 역시 청소년 정신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마트폰 과의존은 청소년의 우울, 불안, 수면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정서적 안정감이 낮은 청소년일수록 스마트폰 사용에 더욱 의존하고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Elhai et al., 2022). 이 연구들은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가 개인의 학습 태도 문제가 아니라, 학교 문화와 관계 구조, 그리고 디지털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사회 차원의 대응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학교 현장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청소년 마음 건강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와 시립목동청소년센터가 협력해 운영한 학교 방문형 청소년 마음건강 프로그램 ‘유스톡 스쿨(YouthTalk School)’은 놀이와 체험 중심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또래 관계 형성과 학교생활 적응력을 높이는 성과를 보였다. 참여 학생들은 친구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연결감이 강화되었다고 보고되었다. 이는 개별 상담을 넘어, 학생들의 일상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서 지원이 실질적인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유사하게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작된 ‘Roots of Empathy’ 프로그램 역시 학교 기반 정서 교육의 효과를 입증한 사례다. 학생들이 실제 아기와 부모의 관계를 관찰하는 활동을 통해 감정 이해와 공감을 배우는 이 프로그램은 또래 간 공격성을 줄이고 공감 능력과 정서 조절 능력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사례들은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개입할 때 개선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서울시와 교육청은 청소년 마음건강 통합지원 사업을 통해 상담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고, 위기 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상담센터를 확충하고 전문가가 직접 학교를 방문해 초기 상담에서 치료 연계까지 돕는 시스템은, 그동안 학생들이 도움을 받기 어려웠던 현실을 개선하려는 시도다.
한편, 사회정서학습(SEL)과 같은 프로그램 도입도 준비되고 있다. SEL 프로그램은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 사회적, 정서적 기술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 방법이다. 이는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며 관리하고, 타인과 건강하게 소통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으로, 정서적 어려움의 예방과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정서적 지원을 교육의 중심에 두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지금까지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는 ‘부가적인 사안’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학업 경쟁과 학원 중심 문화가 정서적 부담을 키워온 현실을 봤을 때, 청소년의 정신적 안정과 건강은 단순한 교육 외적 문제가 아니다. 적극적인 상담 지원, 정서 학습 프로그램, 또래 관계 회복 활동 등이 학교 교육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쌓은 피로와 불안은 결코 ‘정상적인 성장통’으로 치부할 수 없다. 경쟁 교육으로 인해 정작 개인의 마음 건강이 훼손되는 현실은, 교육 시스템 전체가 성적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명확한 신호다. 학원과 성적 뒤에 숨겨진 청소년의 마음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의 정서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성장과 웰빙을 함께 살피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위즈덤 네이처] 상담심리학은 인간이 겪는 정서적 어려움, 관계의 갈등, 그리고 삶의 방향에 대한 혼란을 이해하고 돕는 학문이자 실천 분야입니다. 최근 ‘멘털 케어’라는 말이 뉴스와 SNS에서 자주 등장하며,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담과 심리치료를 통해 그 깊이를 들여다보고 치유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성장 배경과 경험 속에서 형성된 생각과 감정을 이해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비롯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바꿀 수 있습니다. 위즈덤 아고라 이은율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와 함께, 당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조용한 여행을 시작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