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네이처]유전자 편집 기술의 전환점 – 식량과 환경 보호를 한 번에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김정윤 기자]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식량 안보, 기후 위기, 그리고 환경오염 등이 동시에 심화되고 있다. 지난 3월 세계기상기구(WMO)의 ‘2024년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 최종본’ 발표에 따르면, 2024년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 시기(1850년부터 1900년) 대비 무려 1.55도 상승을 기록했다. 이는 175년 만에 가장 높은 지구 평균 온도이다. 가뭄과 홍수의 발생 빈도와 강도 역시 심상치 않게 잦아졌다. 지난 6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한 위성 자료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 이후 발생한 가뭄과 홍수의 강도 및 빈도가 과거 평균 대비 약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심각한 가뭄 건수는 210건, 홍수 건수는 140건에 달하며, 이에 대해 NASA는 “기후변화로 인한 수문 균형 붕괴가 이러한 재해 증가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가 전 세계의 식량난과 환경 파괴 문제들을 일으키는 가운데, 인류는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전 언급한 생명공학 기술이 주로 재생치료에 중심을 두었다면, 2012년 크리스퍼(CRISPR) 기술의 등장 이후에는 치료를 넘어 환경 문제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본 칼럼에서는 크리스퍼(CRISPR) 기술이 어떻게 식량,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하며 지속 가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유전자 가위, 생명의 코드를 다루는 기술

2012년에 처음 개발된 유전자 가위 기술은 돌연변이가 발생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특정 유전자의 염기 서열을 절단하고 교정할 수 있는 도구이다. 실제 가위 모양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특수 효소를 이용해 특정 DNA를 정교하게 절단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유전자 가위 기술로 흔히 알고 있는 크리스퍼(CRISPR) 기술은 사실 근래에 개발된 3세대 유전자 편집 기술이며, 이전에는 1세대 징크핑거(ZFN), 2세대 탈렌(TALEN) 기술 등이 개발되었다. 현재 상용화의 기점을 마련한 3세대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의 가장 큰 장점은 이전 세대 기술보다 훨씬 정교하고 효율적인 절단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가이드 RNA’라는 분자와 함께 작동한다. 이때 RNA는 유전자 가위 근처에서 정확히 어느 DNA 부위를 절단해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함께 사용되는 Cas9 단백질이 효소 역할을 하며, RNA가 지시한 DNA 부위를 절단한다. ‘Cas’라는 단백질 자체는 ‘CRISPR-associated protein’, 즉 ‘CRISPR 관련 단백질’의 줄임말이다. 그러나 여러 생물의 CRISPR 형태를 연구한 결과, 서로 미세한 차이가 있는 Cas 단백질들을 발견했고,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Cas1, Cas2 등 번호를 붙여 이름을 정하게 되었다.

처음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는 세균의 면역 시스템의 일부분이었지만, 인류의 발상으로 유전자 교정 도구로 개발되었다. 세균은 바이러스가 주입한 DNA 일부를 잘라 자신의 유전체 사이에 넣어두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세균이 특정 바이러스의 DNA 침입을 기억해 다시 공격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방어 체계이다. 세균의 특정 유전체에 바이러스의 DNA를 삽입해 두는 부위를 크리스퍼(CRISPR) 부위라고 한다. 이러한 세균의 자연적인 현상을 인체에 응용한 기술이 바로 오늘날 생명과학에서 가장 혁신적인 발전으로 주목받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인 것이다.

식량 위기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유전자 편집 기술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기술은 최근 극심한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농산물들은 인간이 원하는 작물의 형태로 진화 및 변화시키는 ‘육종’ 과정을 거쳐 재배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육종은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데 10년 이상이 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나 소비자 기호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전남대 차세대농작물신육종 기술개발사업단 정영희 교수는 “특정 품종을 개발하는 데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기존 일반 육종으로는 환경 변화와 소비자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크리스퍼-캐스9은 GMO(유전자변형생물체)와 달리 외래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도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수 있는 ‘NBT(신육종기술)’에 속한다.

이렇게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하여 상용화된 대표적인 작물은 2021년 일본에서 출시된 가바 토마토로, 혈압 상승을 억제하는 가바 성분 함량이 일반 토마토보다 4~5배 높다. 또한 2021년 중국 원난대학교 후펑이 교수팀은 크리스퍼 기술을 사용해 한 번 심은 벼를 여러 번 수확할 수 있는 다년생 벼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생산량 증가는 물론 소득 증대 효과도 거뒀다.

우리나라 역시 미래 식량난에 대비해 유전자 가위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다. 2024년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신산업 제안 시리즈’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옥수수, 밀, 대두 등 주요 곡물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0~2022년 평균 국가별 곡물자급률(%)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19.5%를 기록했는데, 이는 121.3%를 기록한 미국에 비해 무려 6배 이상 낮은 수치이다. 따라서 식량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도 크리스퍼-캐스9과 같은 기술을 확보하여 지속 가능한 식량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기후 회복과 생태계 보호로의 확장

크리스퍼-캐스9 기술은 식량난 해결뿐만 아니라 기후 회복과 생태계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유전자 가위가 식물의 엽록체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엽록체에서 일어나는 광합성을 조절하여 탄소 배출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또한 지난 3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크리스퍼-캐스9 기술을 사용하여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을 극대화한 광합성 미생물을 개발한 바 있다. 광합성 미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있어 탄소 감축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환경 보호를 위한 미래 생물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생태계 보호 측면에서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멸종위기종 복원이나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침입종 제어에도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자연의 균형을 인류가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지난 2018년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의 연구진은 유전자 조작을 활용해 말라리아를 전염시키는 ‘아노펠레스 감비아이’ 모기 종의 개체수를 조절했다. 모기의 정자는 X와 Y 염색체를 가지지만, 난자는 X 염색체만 가진다. 연구진은 정자에 특정 DNA를 제거하는 유전자를 삽입해 X 염색체가 형성되지 않도록 했다. 그 결과, 조작된 모기를 야생 모기 사육장에 방출하자 6세대 만에 무려 95% 이상이 수컷으로 번식했다. 또한 암컷 모기가 날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인간을 무는 암컷 모기의 움직임을 제한해 모기 매개 질병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뉴질랜드 정부는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주머니쥐, 쥐와 같은 침입종을 박멸하는 ‘프레데터 프리 2050’ 계획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침입종을 100% 박멸하겠다는 목표로, 이 프로젝트는 크리스퍼(CRISPR-Cas9) 기술을 사용해 불임으로 만들거나 한 가지 성만 발생하게 하는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식이다.

기술의 빛과 그림자

결론적으로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은 단순한 생명과학 도구를 넘어, 인류가 지구 온난화, 가뭄, 그리고 식량난 등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존의 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크리스퍼(CRISPR)는 앞으로 미래 식량 확보와 기후 회복, 그리고 생태계 보호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본래 목표 유전자 외의 부위에서 유전자 가위가 작동하여 원치 않는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는 현상을 ‘오프타깃 효과’라고 한다. 이런 변형으로 돌연변이 유발, 유전체 불안정성, 암 유발 가능성 등 안전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 가이드 RNA 설계 최적화, 고정밀 Cas 변형체 사용, 전유전체 스크리닝 방법 적용 등을 통해 기술적 개선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크리스퍼(CRISPR)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나, 이에 비해 국제적 규제 체계와 윤리 기준은 아직 미비하다. 각 국가의 정책과 사회적 시각에 따라 다른 규제 체계가 존재하지만, 국제적 조율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일본·영국 등은 배아 유전자 편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거나 제한하면서 체세포 유전자 편집 연구에는 관대한 반면, 중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대부분의 유전자 편집 연구를 진행해 ‘2018년 허젠쿠이 유전자 편집 아기 사건’과 같은 윤리적 논란을 여러 차례 일으켰다.

사건 이후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 18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마련해 인간 유전자 편집 기술 적용에 대한 권고안과 9가지 권장사항을 발표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이 무분별하게 사용될 경우 비윤리적 임상 실험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수준에 그쳤다.

앞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생태계 유지와 식량난 해소를 위해 계속해서 활용될 기술이다. 따라서 각국은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전과 윤리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통일된 기준 체계와, 윤리적 문제가 논의될 수 있는 국제 윤리위원회 같은 감시 기구 구축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위즈덤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로도 잘 알려진 생명공학기술은, 다양한 생물체의 구조와 유전 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생체기능이나 시스템을 개발하는 첨단 학문입니다. 생명공학은 자연적인 유전자의 작동 원리와 성장, 생물학적 기능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또한, 생명공학기술은 난치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위즈덤 아고라 김정윤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와 함께,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최신 동향을 살펴보고,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 그리고 생명공학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누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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