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조선 시대, 황금보다 귀했던 얼음

조선시대 얼음의 역사

< Illustration by Jiyun Kim 2009 >

[객원 에디터 3기 /유수임 기자] 더운 여름철, 우리는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낸다. 시원한 얼음은 더운 날씨 때문에 지친 우리를 달래 준다. 옛날, 조선 시대에도 얼음이 존재했고, 놀랍게도 특별 제작된 냉동고까지 있었다. 

조선 시대에 얼음은 매우 귀했다. 겨울에 현재의 한강에서 얼음을 캐내서 “빙고”라는 얼음 저장소에 보관해 놓았다가 더운 여름이 되면 얼음이 사용되었다. “빙고” 는 자연환경을 이용한 냉동고였고, 반지하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깥쪽에는 흙을 두껍게 쌓아 열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안쪽은 열전달이 잘 되는 화강암으로 설계했다. 또한 내부 바닥에는 배수로를 파서 얼음이 녹은 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빙고 내부의 얼음은 짚 등으로 감싸서 보관했는데, 짚이 단열 효과를 높이기도 하고 얼음이 녹으면서 짚의 안쪽의 온도가 낮아져 얼음을 오랜 시간 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렇게 보관한 얼음은 1년 내내 사용되었다. 

요즘에는 냉동실에 물을 얼리기만 하면 누구나 얼음을 이용할 수 있지만, 조선 시대에는 지정된 사람만 얼음을 받을 수 있었다. 일반인 누구나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왕족이나 지위가 높은 관리들, 나이가 많은 당상관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죄수들, 환자들 등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얼음을 받으려면 빙패(또는 빙표)가 있어야 했는데, 빙패는 얼음 교환권이었고, 품계에 따라 많고 적게 받았다.

이렇게 받은 얼음들은 여러 용도로 쓰였다. 더운 여름에 얼음째로 먹거나, 화채 등에 섞어 먹기도 했고, 왕에게 바칠 해산물 등 상하기 쉬운 음식을 보관하는 데에도 쓰였다. 또한, 쪽을 사용해 옷감을 푸른색으로 물들이는 전통 염색법은 온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쉬어서 붉은색이 되기 때문에 얼음을 써서 온도를 낮추어 염색했다. 가장 얼음을 많이 소모하는 일은 바로 장례식이었는데, 조선 시대 왕이나 왕비의 장례식은 약 5개월 정도가 걸렸고, 그 기간 동안 시신을 땅에 묻을 수 없기 때문에 여름에는 시신이 부패하게 된다. 따라서 관 아래와 주변에 얼음벽을 만들어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했다. 이 과정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시신이 부패해 버려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효종이 죽었을 때 문제가 발생해 장례를 담당했던 송시열이 사약을 받기도 했다.

얼음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위의 용도들 외에도 다른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얼음을 사용한 왕도 있었는데, 바로 폭군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약으로 쓸 곰을 구했는데, 곰의 몸 전체를 얼음으로 채워서 바치도록 했다. 그 이외에도 얼음 쟁반 위에 음식을 놓거나 청포도를 올려놓고 먹는 등 사치를 부렸다.

요즘에는 너무나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얼음이 조선 시대에는 황금보다 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주변의 흔한 것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Leave a Reply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