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조선시대 국왕의 능행길

궁능유적본부, 조선시대 국왕의 능행길 공개

< Illustration by Jeonghoo Park 2009(박정후) >

[객원 에디터 6기 / 정서영 기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조선시대 능행에 대한 연구 성과를 공개하였다.

해당 연구는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강제훈 교수의 연구진이 진행했으며 조선시대 능행의 목적과 의미 규명, 궁궐에서 왕릉으로 가는 능행 행렬의 구성과 능행 경로 파악, 실제 능행 사례를 파악했다. 

능행(陵幸)이란 조선시대 국왕이 선대 왕이나 왕비의 능에 제사를 지내거나 참배하기 위해 행차하는 일이다. 

먼저, 연구팀은 조선왕릉의 독특한 특성과 왕릉 의례 절차의 시대적 변화를 분석했다. 조선왕릉은 정자각을 중심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의례를 행하는 공간이 죽은 사람을 모시는 공간 못지않게 크고 중요하게 조성되어 있어 왕릉 내에서 의례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조선후기에는 원래 별도의 사당에서 진행하던 기신제(조상이 돌아가신 날, 기일)를 조선왕릉에서 지내기 시작하였고, 왕이 직접 행차하는 의례 절차가 확대되었다. 이로써, 능행이 국왕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행위라는 의미가 강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연구팀은 능행 행차의 구성과 규모가 시기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밝혔다. 조선 초기에서 중기의 능행에는 국왕의 행차 구성 중 가장 작은 규모가 작은 소가노부(왕의 행차 때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의장 구성 중 하나)가 사용되었다. 조선 초기 능행 규모는 시위 병력과 의장, 동반하여 따라가는 문무백관을 포함하여 4,500명 정도로, 상황에 맞게 조정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농민병 중심에서 직업병 중심으로 체제가 변함에 따라 능행에도 상비병 동원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능행의 규모는 일정하지 않지만 대략 2,900~4,000명, 많으면 6,400명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셋째로, 능행 행차에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편성된 악대의 구성과 시대적 변화를 연구했다. 조선 초기에는 어가(임금이 타던 가마) 앞에 악대가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선전관청(임금의 군사보좌관으로 활약하던 선전관이 근무하던 관청) 소속의 악대가 어가 뒤에 배치되었다. 능행 행차 중에는 삼현육각(피리, 대금, 해금, 장고 등)을 맡은 악대와 취타악기(태평소, 나발, 자바라, 북 등)를 연주하는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며 행차에 참여했다. 

본 연구는 향후 능행 행렬 재현 등 궁능 활용 콘텐츠 개발에 활용되어 한국을 더욱 알리는데 기여할 자료로 기대된다. 한편, 해당 연구는 문화재청과 궁능유적본부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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