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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갓생’을 사는 이유

<FREEPIK 제공 >

[객원 에디터 6기 / 함예은 기자] ‘God(갓)’과 ‘인생’을 합친 신조어 ‘갓생 살기’가 MZ세대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욜로나 플렉스 같은 단어를 제치고 갓생이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규정하는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 

욜로(YOLO)는 ‘You Only Live Once’라는 표현의 줄임말로 ‘인생은 한 번뿐이니 충분히 즐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플렉스(FLEX)는 힙합 문화에서 온 단어로 부를 과시하는 것이나 비싼 재화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욜로가 현재와 지금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나 가치관이라면, 플렉스는 그런 가치관으로 지금 실현하는 ‘화끈한 소비’를 의미하는 것이다. 욜로나 플렉스가 소비지향적 라이프스타일을 지칭하는 반면, 갓생은 부지런히 생산적 삶을 지향하고 일상에서 소소한 성취감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개인마다 목표나 활동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학교를 제외한 시간에 독서, 공부, 취미 등 자기 계발 루틴을 만들어 지속해서 SNS에 올리는 방식이다. 

이런 ‘갓생 살기’는 소소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지난해 MZ세대 9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77.2%가 ‘매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루틴이 있다’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70.3%는 ‘사소한 성취도 내 삶에 큰 의미가 된다’라고 했다.

‘갓생 살기’ 챌린지는 무한 경쟁과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불안을 일시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자구책일 수 있다. ‘갓생’은 자신을 통제하려는 심리가 내포되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불확실한 미래가 주는 위기감으로 인해, 불안정한 마음 상태에 ‘확신’을 채우려는 심리가 작동한다고 해석한다. 대세를 따라야 한다는 동조 심리가 강해지면 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타인의 ‘갓생’ 루틴을 그대로 삶에 적용하는 예도 존재한다. 하루를 꽉 채워 쓴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갓생을 사는 이들 역시 높은 만족도를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오늘 하루 갓생 사느라 힘들었다’며 고충을 토로하곤 한다. 그럼에도 요즘 젊은 층이 갓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뭘까. 

무리한 루틴이 지속될 때 인증에 대한 강박적 사고와 심리적 압박감을 일으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갓생’을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의 일종으로 해석했다. 즉,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갓생’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자신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성과를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모두가 자신을 증명하느라 애를 쓰고, 도달할 수 없는 목표와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심리적인 위축이 될 수 있다. 또한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과거와 달리 개인 이력뿐 아니라 건강, 취향까지도 24시간을 쪼개서 철두철미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고 있다”며 “계속된 비교로 인해 남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행복도도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사회구조적 상황과 생존을 위한 경쟁에 익숙한 청년층이 ‘타인과 비교’를 통해 자신을 평가하는 행위는 청년의 심리·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국 19~39세 청년층 5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의 상대적 박탈감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의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자살 생각, 자살 시도, 자살사망률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2 자살백서’에도 ‘상대적인 박탈감’이 청년층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끄는 주된 경로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갓생을 사는 이들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각자의 갓생을 채우는 활동 또한 갈수록 다양해질 전망이다. 생산성 있는 하루를 사는 것도 좋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성과와 성공의 여부에 치우치지 않고 하루를 열심히 사는 모든 삶이 인정받는 ‘시선’이다. 우리 사회는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과 심리적 부담으로 ‘나’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목표를 유지하는 꾸준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해 기존의 목표를 중단하는 ‘멈춤’도 삶에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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