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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 중국의 양안관계

대만과 중국의 이어지는 갈등

역사적인 배경… 무엇일까?

< Illustration by Shinyoung Park >

[객원 에디터 3기 / 이석현 기자] 최근, 미중 패권 전쟁이 첨예해지면서 대만과 중국의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 회의(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누가 감히 대만을 (중국에서) 분열시킨다면 우리는 반드시 일전(一戰)을 불사하며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하나의 중국 정책의 일환으로서 우리는 대만 관계법 상 우리의 책무를 계속 이행할 것이며 이는 대만의 충분한 자위 능력 유지를 돕는 것을 포함한다”며 “대만인들의 안보, 사회적, 경제적 체계를 위험에 빠뜨릴 여하한 힘이나 다른 형태의 강압을 저지하는 우리 능력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라며 대만 수호 의지를 보인 것에 대한 자극적인 항의 표시이다. 중국은 이미 ‘중국 대만’(China Taiwan)이라는 이름을 쓰라고 대만에게 요구했고 다른 나라들이 대만과 교류를 하지 못하게 압박을 하기도 했다.

중국은 55개의 민족으로 만들어진 다민족 국가다. 현재 중국은 모든 소수민족들을 중국화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국 대륙에 인접한 홍콩, 마카오, 그리고 대만 모두 ‘하나의 중국’이라는 입장이다. 비슷하면서 다른 나라인 대만과 중국은 왜 싸우는 것일까? 

17세기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건국되었을 당시 대만은 네덜란드가 통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나라의 정치가였던 정성공은 명나라의 맥을 잇고자 대만에서 네덜란드군을 몰아내고 청나라에 반대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작전은 실패로 끝이 나고 청나라는 완전한 중국 지배를 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군벌세력이 곳곳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런 군벌세력을 막기 위해 세어진 공산당과 국민당은 처음에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점점 관계가 악화되며 1946년부터 1949년까지 국공 내전이 일어났다. 이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베이징, 난징, 그리고 상하이까지 손에 넣었다. 그리고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이 중국 인민공화국을 건국하자 국민당은 대만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내전이 끝난 뒤, 중국과 대만은 서로 원조는 자기라고 하면서 다시 한번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UN이 설립된 뒤 UN의 상임이사국으로 대만이 중국 대표로 이름이 올라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UN 회원국들은 대만이 아닌 중국 인민공화국(중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중국 인민공화국이 중국 대륙의 대표가 된 순간이었다. 이 순간 중국은 환호했고, 대만은 당연히 좌절했다. 힘이 세진 중국의 편을 세상이 점점 더 많이 들어주었고 대만은 어쩔 수 없이 힘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만은 최악의 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적(중국)과 함께 할 수 없다며 UN에서 자진탈퇴를 한 것이었다. 이것은 외교의 단절이라는 실로 대만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게 1972년, 일본, 미국, 그리고 한국까지 대만과 단교를 하게 되었다. 올림픽을 참가할 때도 대만은 대만이 아닌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이름을 달고 출전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중국’을 꿈꾸고 있는 중국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주권과 영토의 완결성을 위해 그들의 통일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하고 독립적인 지위 확보에 신경 쓰고 있다. 

이렇게 통일하려고 하는 중국과 벗어나려는 대만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들에는 불안정한 상황들과 위기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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