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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한줄기 빛, 아인슈타인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과학자


[객원에디터 1기/박서진 기자] 생일 날짜마저 파이 𝝿 를 (3월 14일) 가리키는 아인슈타인은 “상식이란 18세까지 습득한 편견의 집합이다”와 같은 수많은 명언을 남긴 독일 출생 물리학자이다. 그는 편견을 벗어나 늘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끊임없는 연구를 하여 1921년에 노벨물리학 상을 받았다. 그는 살아있는 당시 무려 300개가 넘는 과학 논문을 작성하였고 그중 가장 인정받는 그의 연구는 바로 “빛과 에너지”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천재 과학자지만, 아인슈타인의 어렸을 적 삶은 생각보다 호기롭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어린시절:

독일의 서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도시 울름(Ulm)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은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하기보다 혼자 생각에 잠기는 걸 즐겨 했고 생각을 그가 생각을 하는 수준도 남달랐다. 5살 무렵, 아인슈타인은 생일선물로 받은 나침반을 바라보며 “왜 나침반 바늘은 항상 같은 방향을 가르킬까?” “보이지 않는 힘이 나침반 바늘을 붙잡는 게 분명해!”라는 천재적인 물음표와 답을 자기 자신에게 던졌다. 하지만, 그의 넘치는 천재성과는 다르게 그는 6살에 한 평범한 가톨릭 학교로 들어갔고, 9살에는 남들과 똑같이 김나지움에 들어갔다. 두 학교 모두 군대식의 주입식 교육이 엄격했던 학교였고, 아쉽게도, 그의 넘치는 호기심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주입식 교육을 엄청 싫어했고, 그만큼 성적 또한 좋지 못했다.

세계를 뒤집은 하나의 질문:
질풍노도의 시기 16세, 아인슈타인은 이 세계에 위대한 혁명을 남길 상상을 한다. 바로 “빛의 속도로 달리면 빛은 어떻게 보일까?” 그 답을 바로 얘기해 줄 수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답은 마침내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서 아인슈타인은 연구를 하여 알아낸다. 아인슈타인은 대학교에서 맥스웰 전자기학을 배우며 빛의 정체를 파악하였고 마침내 빛의 속도는 그 어떠한 운동 상태가 있더라도 일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아인슈타인은 “빛”이라는 존재에 빠지게 됐다.

일반 상대성이론의 시작:
아인슈타인은 1905년 무려 25편이 넘는 논문들을 발행해 수많은 과학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유명해진 아인슈타인은 또 다른 엄청난 상상을 한다. 바로 “자유 낙하하는 사람은 자신의 몸무게를 느낄 수 있을까?” 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질문이 그의 생애 가장 행복한 생각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운동은 두 가지로 구분이 된다, 바로 등속 그리고 가속 운동이다. 아인슈타인은 예전에 등속운동을 이용한 특수 상대성이론에 관한 논문을 제시한 적이 있다. 가속운동에도 상대성이론을 적용하고 싶었던 아인슈타인은 자유낙하를 할 때의 중력과 가속도의 상관관계를 찾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였고, 그 결과가 일반 상대성이론이다. 일반 상대성이론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가속에 의한 관성력과 중력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이다. 역사적인 이론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노벨상: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이론의 기초를 발표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연구를 한끝에, 1921년에 노벨 물리학 상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게 된 계기는 상대성이론이 아닌 광전효과에 대한 법칙을 발견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광전효과보다 상대성이론에 대한 인기가 더 높았기에 그는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회에서 상대성이론에 대한 강연을 했다.

모범이 되는 이유:

아인슈타인이 독일의 모범이 되는 이유는 바로 그의 풍부한 호기심과 상상력이다. 주입식 교육에는 맞지 않는 인재지만, 진정한 혁명이 있기 위해서는 호기심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것을 풀어내기 위한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항상 얘기해왔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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