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흥행 이후, 달라진 역사 인식

1500만 관객을 돌파한 ‘왕과 사는 남자’

영화관을 나선 이후 영월로 이어진 발걸음

< Illustration by Eunho Lee 2009(이은호) >

[객원 에디터 11기 / 이채은 기자] 2년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탄생했다. 역대 34번째 천만 영화인 ‘왕과 사는 남자’는 박스오피스 매출 1위를 기록하며 1500만 명을 넘어 16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고, 역대 관객 수 3위에 오르는 등 놀라운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의 흥행 이후 ‘단종앓이’라는 말까지 생기며, 이홍위 역을 맡은 ‘박지훈’의 과거 영상들까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영화의 흥행 이후 출간된 각본집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그 인기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 작품은 국내를 넘어 미국, 캐나다 등 해외 시장으로도 진출하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는 계유정난 이후 어린 왕 단종의 마지막, 영월 마을에서의 일을 담은 내용이다. 17세, 한국 나이로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은 왕 이홍위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영화관을 떠났다. 단종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아는 이야기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을까.

영화관은 코로나19 이후 침체기를 겪어왔다. 영화사는 OTT를 원인으로 지목했고, 관객들은 상승한 티켓 가격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이번 영화의 흥행과 OTT 시대 이후 꾸준히 등장한 천만 영화들을 보면, 영화관의 침체를 단순히 외부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물론 OTT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고, 일정 금액만 내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추천과 입소문은 관람 욕구를 자극했고,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에는 가족 관람객들이 몰렸다. 결국 사람들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비싼 티켓값도 기꺼이 지불한다는 사실이 여러 흥행작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에는 일부 비판도 존재한다. 경쟁작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설 연휴와 맞물리며 관객 수가 증가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영화의 각색과 연출 등이 천만 영화에 걸맞은 작품성이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왕과 사는 남자’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후에도 꾸준한 관객 수 증가와 함께 사회적 관심과 변화를 이끌어내며, 이러한 비판을 상쇄할 만큼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주요 촬영지였던 ‘영월’의 매출은 약 36% 증가했고, 설 연휴 기간 동안 청령포를 찾은 관광객은 전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하며 큰 관심을 입증했다. 청령포를 비롯해 관풍헌, 자규루, 장릉 등 단종과 관련된 유적지에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영월의 대표 역사 문화 축제인 제59회 단종문화제(4월 24일~26일 예정)는 ‘왕과 사는 남자’ 출연진들의 홍보 영상과 지원에 힘입어 축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이처럼 영화의 흥행으로 영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면서, 영월군의 지역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낙화암 훼손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또한 영화는 독서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개봉일인 2월 4일부터 3월 2일까지 ‘조선왕조실록’을 키워드로 한 도서 판매량이 이전보다 약 2.9배 증가했으며, 전년 동기 대비로도 2.1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의 흥행이 역사에 대한 관심과 독서 수요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영월 마을 사람들은 단종을 ‘단종대왕’으로 부르며 기억해왔다고 한다. 역사가 지우려 했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이어져 왔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 희생된 어린 왕을 향한 영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그 기억들은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목숨 걸고 지켰던 어린 왕을 향한 충절은 영화 속 엄흥도의 바람처럼, 늦었지만 분명한 결실로 돌아왔다. ‘왕과 사는 남자’는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사람들에게 잊혀가던 역사를 다시 환기시켰고,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그 여운은 깊고 오래 이어지고 있다. 어린 나이에 삼촌에게 권력을 빼앗긴 나약한 왕으로만 여겨졌던 단종의 이미지는 이제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롭게 쓰이고 있다.

Leave a Reply

Back To Top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