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네이처] 단백질은 액체가 된다 세포 속 “액 – 액” 상분리의 화학

일러스트 :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이미지 생성

[위즈덤 아고라 / 우성훈 기자] 세포 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균일한 공간이 아니다. 물처럼 보이는 세포질 속에서도 단백질과 RNA는 특정한 위치에 모여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구조들이 막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생명과학에서 주목받는 개념인 액-액 상분리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이는 하나의 균일한 용액이 두 개의 액체 상태로 나뉘는 현상으로 단백질들이 스스로 모여 액체 방울처럼 행동하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마치 물에 기름을 떨어뜨렸을 때 자연스럽게 분리되면서 동그란 방울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 현상의 핵심은 열역학이다. 상분리는 단순히 분자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더 안정한 상태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단백질 사이의 약한 상호작용이 많아질수록 시스템 전체의 자유 에너지가 낮아지며 자연스럽게 분리된 상이 형성된다. 특히 농도 온도 pH 같은 조건이 바뀌면 상분리 여부도 달라진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러한 상분리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세포가 환경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상분리를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단백질의 저복잡도 영역이다. 이는 특정 구조를 가지지 않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부분으로 다양한 분자와 동시에 약하게 결합할 수 있다. 이러한 다중 상호작용은 상분리를 유도하는 핵심 요소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이러한 무질서 단백질 영역이 상분리 능력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때 작용하는 힘은 매우 약하지만 수가 많다. 대표적으로 수소결합과 π-π 상호작용이 있다. 방향족 아미노산 사이에서 일어나는 π-π stacking은 분자들이 느슨하게 쌓이도록 만들고 수소결합은 일시적인 연결을 만들어준다. 이는 마치 벨크로 찍찍이처럼 하나하나의 힘은 약하지만 많이 모이면 충분히 붙어 있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약한 결합들이 동시에 작용하면 단백질들은 마치 액체처럼 흐르면서도 하나의 집합체를 유지하게 된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러한 상호작용이 조절되면서 상분리의 강도와 형태가 달라진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상분리는 세포 기능에 필수적이지만 조절이 무너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신경퇴행 질환과의 관련성이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다. 타우 단백질이나 알파 시누클레인 같은 단백질은 원래 액체 상태로 존재하다가 점차 고체 응집체로 변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질환과 연결된다. 연구에 따르면 상분리된 상태에서 단백질 농도가 높아지면 비정상적인 응집이 촉진될 수 있다.

그렇다면 세포는 왜 굳이 막이 없는 구조를 만들까. 그 이유는 속도와 유연성에 있다. 막으로 둘러싸인 구조는 형성되고 해체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상분리로 만들어진 구조는 필요할 때 빠르게 생성되고 사라질 수 있다. 또한 특정 분자만 선택적으로 모아 반응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 상황에서 형성되는 스트레스 과립은 필요한 단백질과 RNA를 빠르게 모아 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중국 항저우에 위치한 Westlake University 화학과 연구팀이 2025년 말 발표하고 2026년에 정식 출판된 연구에서는 단백질 전체가 아니라 더 단순한 구조인 ‘펩타이드’를 이용해 상분리를 분석했다. 이 연구는 학술지 Chemical Science에 게재되었으며 단백질 대신 짧은 아미노산 서열을 이용해 상분리를 더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펩타이드 서열을 조절하면 상분리의 형태와 안정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확인했고 이를 통해 상분리가 특정 서열 패턴과 약한 다중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기존의 단백질 연구가 너무 복잡해서 원리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펩타이드는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어떤 상호작용이 상분리를 유도하는지 더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연구진은 특히 저복잡도 영역과 같은 특성이 상분리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면 인공적으로 상분리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펩타이드 기반 상분리가 인공 세포 시스템이나 약물 전달 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되었다.

[위즈덤 네이처]생화학은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과 생명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에너지로 전환되거나, DNA 속 정보가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과정, 효소가 반응 속도를 바꾸는 원리까지 모두 생화학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생명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단백질의 접힘, ATP의 역할, 효소 촉매 작용, 유전자 발현, 혈당 조절, 세포막 신호전달 같은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사례와 연결해 생화학의 개념을 위즈덤 아고라 우성훈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에서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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