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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 설탕 산업의 빛과 그림자

Illustration by Yoeeun Lee (NLCS Dubai Grade 9)

by Hana Lee (The International School of Choueifat Grade 8)

설탕의 단 맛은 중독성이 강하고,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기 때문에 현대인은 1인당 연간 24kg을 소비한다. 초등학생의 평균 체중은 25kg인데, 놀랍게도 학생들의 무게와 동일한 양의 설탕을 섭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설탕을 먹으면 뇌에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도파민은 우리가 행복이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그래서 설탕을 먹을 때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행복을 느낀다. 지금은 자동화된 생산공정으로 설탕을 만들지만 16세기에는 모든 과정에 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유럽은 큰 부를 얻었지만 두 대륙은 비극이 시작되었다.

설탕은 16세기 유럽에서 매우 인기 있는 음식이자 재료였다. 하지만 유럽은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거의 무역에 의존했다. 대부분이 아프리카 서부 카나리아 제도에서 생산됐고, 공급이 적어 설탕은 권력을 상징할 만큼 귀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카리브해 연안이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좋다는 것을 알았고, 2번째 항해에 사탕수수를 가지고 가서 심었다. 설탕은 만드는 공정도 까다롭고 힘들다. 달콤한 설탕을 얻기 위해서는 사탕수수를 자른 후, 즙을 내고 끓여 끈적끈적 해진 당밀이 만든다. 그리고 이 당밀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결정화를 시키면 설탕이 완성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거칠고 키가 큰 사탕수수를 베고 나면 즙이 증발하지 않도록 24 시간 안에 이 과정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노예들은 잠도 자지 못하며 노동을 했다.

바베이도스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이 많았다. 농장에는 많은 흑인 노예들이 맛있는 설탕 알갱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 노동의 대가는 모두 유럽인들의 몫이었다. 노예들은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들로 아메리카에 팔려 왔는데, 그 당시 그들은 물건 취급을 받았다. 24시간 안에 설탕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잠을 잘 시간도 없이 일을 했고, 자칫 즙을 짜는 압착기에 팔이 끼면 기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칼로 손목을 잘라버렸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많은 이윤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탕은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사이의 삼각형 무역을 가능하게 했는데, 삼각형 무역의 승자는 유럽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총 3자루나 포도주 3통이면 아프리카의 노예사냥꾼들에게 노예를 사서 아메리카로 데려와 평생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시켰고, 얻어진 설탕은 유럽을 부자로 만들었다.

설탕이 없었다면 영국은 가난한 나라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국은 설탕을 통해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탕 농부, 노예 판매자, 설탕 판매자 및 설탕 제조 업체 등 새로운 일자리와 돈이 몰리기 시작했다. 설탕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고, 어떤 제당 업자는 왕보다 더 큰 부를 가질 정도였다. 귀한 사람이 방문하면, 존경의 의미로 설탕 조각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대항해 시대는 세계를 하나로 이었지만 노예무역이라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낳았다. 노예들은 3~4개월의 항해 동안, 좁은 공간에서 용변도 누워서 보며 비인간적인 생활을 했다. 특히 1781년에 있었던 종호 사건은 노예를 물건 취급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선장은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자 133명의 노예를 물에 던지기로 결정했다. 배가 돌아온 후, 노예는 화물처럼 보험처리가 되었고, 선원과 선장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노예로 살았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사람들은 오랜 식민 지배를 받아 여전히 가난한 국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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