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거티브 선거로 잃어버리는 것들

< Illustration by Taeho Yu >

[위즈덤 아고라 / 김서현 2007] 대한민국 20대 대선이 다음 주로 다가왔지만 후보들 간의 네거티브 선거전은 계속되고 있다. 대선후보 TV토론에서도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서로를 비판하기에 바빴고 유권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선거는 내가 당선되어야 할 이유, 상대방이 당선되면 안 되는 이유를 호소해지지를 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주장은 정당한 선거 방법이다. 하지만 가짜 뉴스, 사실 왜곡, 사생활 음해 등과 같이 선을 넘는 발언들은 문제가 된다. 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팬데믹 이후 산재한 문제들이 많은 지금, 어느 선거보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시점이다. 과연 네거티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선거전은 옳지 않고, 실제로 선거전에서도 별로 효력이 없다고 믿지만 현재 미국 정치 광고의 70% 이상은 네거티브 광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관심을 보이는 ‘부정 편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선거전에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88년 미국 대선과 1996년 러시아 옐친 재선이었다.

1988년 미국 41대 대선에서 현직 부통령이자 대선 후보인 조지 부시는 민주당 후보 듀카키스에게 17% 차이로 지지율이 뒤쳐지고 있었다. 조지 부시는 국민들에게 바보, 얼간이라고 불렸고, 반면 듀카키스는 미국 동북부 지역인 뉴잉글랜드 지방의 경제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켜 매사추세츠의 기적을 이룬 장본인으로 미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부시에게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 37살 정치 컨설턴트 리 애트워터가 있었다. 리 애트워터는 사람들과 그들의 정치 인생을 망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당시 부시는 이란- 콘트라 스캔들 때문에 더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이란- 콘트라 스캔들은 정부가 테러리스트에게 무기를 판매하고 불법적 관계를 위해서 마약을 거래하는 등 위법을 저지른 사건이었다. 리 애트워터는 이 또한 그가 너무 애국자였기 때문이라고 포장하며 유권자의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 성조기를 이용했다.

아이다호 주의 스티브 심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기자들로부터 키티 듀카키스가 1960년대 반전시위에서 미국 국기를 태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스티브 심즈는 출처도 밝힐 수 없고, 사진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아주 믿을만한 사람한테서 사진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키티 듀카키스는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사진이 있을 리가 없다고 해명 했지만 방어적인 해명은 오히려 의혹을 더 키웠다. 이렇듯 애트워터가 사용한 강력한 전략 중 하나는 익명의 제삼자가 그를 위해서 혐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제보자는 결국, 관련 사진이 없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때는 이미 피해를 본 상태였다. 부시의 지지율은 점점 상승했고, 리 애트워터는 듀카키스가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법안을 반대했다며 그의 애국심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듀카키스는 주지사로서 공화당이 발의한 법안이 미국 헌법에 위배되는 것인지 대법원에 물었고, 대법원은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법안은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불만을 품은 교사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했는데, 이를 처벌하자는 공화당의 법안은 자유민주주의 미국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합리적인 듀카키스의 설명은 유권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리 애트워터는 듀카키스가 주지사로 있던 매사추세츠에서 실시했던 죄수주말휴가제도를 대선에 끌어들였다. 선거 1년 전에 살인자 윌리 호튼은 일급 살인자였지만 휴가 중에 백인 커플을 납치하고 여자를 성폭행했다. 이 사건은 끔찍했지만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있었는데, 애트워터는 이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어 ‘회전문’ 광고를 만들었다. 회전문 광고를 통해 흑인에 대한 공포를 끌어올렸고, 죄수주말제도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하지만 죄수주말제도로 강력범죄율은 13% 이상 떨어졌고, 마약범 체포율은 5배나 올랐다. 하지만 이런 수치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더군다나 죄수주말 휴가제도를 처음 시행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 레이건이었다. 듀카키스가 1988년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네거티브 공략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듀카키스는 자신의 성공적인 성과를 강조하며 포지티브 선거로 맞섰고, 유권자들은 듀카키스가 제기된 의혹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부시는 54%로 승리했다.

1996년 러시아에서도 집권당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1995년 총선에서 참패한 옐친은 정치적인 위기에 몰려있었다. 옐친의 집권당은 의회의 ⅓도 확보하지 못했고 야당은 개헌은 물론 탄핵까지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당이 분열되면서 옐친은 대통령 자리를 겨우 지키고 있었다. 당선은커녕 결선 투표 진출자 2명을 가리는 1차 투표도 통과하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옐친의 딸 타티아나는 미국인 선거 컨설턴트 3명을 평면 TV 전문가로 위장시켜 러시아에 잠입시켰다. 이들도 네거티브 선거를 선택했다. 첫 번째 전략은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었다. 딱히 내세울 정책도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이미지를 벗는 것에 집중했다. 연설 대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더니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효과가 있었고 지지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전략은 ‘강제 유도 여론조사’였다. 강제 유도 여론조사는 여론조사를 가장해 유권자들에게 특정 후보의 부정적인 정보를 퍼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옐친의 선거캠프에서는 유권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는 도중 공산당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을 하였고, 방송과 신문에서 스탈린 시대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다큐나 공산당 시절의 공포를 생각나게 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자행한 범죄들, 스탈린 시대뿐 아니라 스탈린 시대 전의 레닌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나게 하는 영상들이었다. 그 결과 54%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고, 기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옐친의 지지율은 한 달 만에 10%로 곤두박질했다.

과도한 네거티브 선거는 선거 당사자는 물론, 유권자와 국가에 상처를 남긴다. 현재 대선 후보들이 네거티브 선거전을 그만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서로를 비판하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네거티브로 후보자들의 정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통령 선거가 진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라도 후보들이 네거티브 선거전을 그만두고 제대로 된 공약을 내세워서 정정당당하게 활동해주면 좋겠다. 네거티브 선거 공약은 자극적이기 때문에 대선 기간 앞으로 해결할 문제들과 정책에 대한 논의와 합의를 무력화시킨다. 더군다나 과거가 아닌 앞으로 대한민국의 5년을 책임질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에서는 선거과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에 유권자들은 적극적인 선거참여, 가짜 뉴스와 네거티브 공략을 선별할 수 있는 리터러시 능력, 여론보다 객관적인 증거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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