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우타 사태가 드러낸 ‘연대 없는 유럽’의 민낯

[위즈덤 아고라 / 신승우 기자] 지난 7월 30일, 북아프리카에 있는 스페인의 영토 세우타의 국경이 무너졌다. 이틀 만에 7만 2,000여 명이 철책을 넘거나 헤엄쳐 들어왔다. 인구 8만여 명의 소도시에, 그와 맞먹는 인파가 하룻밤 사이에 쏟아졌다. 상점은 일제히 문을 닫았고, 스페인군이 긴급 투입됐다. 필사의 탈출 과정에서 수영을 못하는 이들까지 바다로 뛰어들었고, 서로를 붙잡은 채 물에 빠지거나 압사하는 사고가 속출하며 최소 67명, 많게는 72명이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 내무장관은 8월 4일 “유입된 7만 2,000명 중 7만 명이 이미 본국으로 돌아갔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짧은 사건이 남긴 파장은 세우타라는 작은 점 하나에 머물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하루 만에 스페인과의 솅겐 협정을 중단했고, 22개 EU 회원국이 스페인을 겨냥한 공동서한에 서명했다. 2021년에도 8,000명 규모의 집단 월경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7만 명이 넘는 규모는 전례가 없었다.

세우타의 지리적 특성

세우타는 지리적으로 기이한 곳이다. 아프리카 대륙 북단, 모로코와 국경을 맞댄 이곳은 엄연히 유럽연합 회원국 스페인의 영토이자 솅겐 지역의 일부다.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론적으로는 유럽 대륙 전체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다. 2021년에도 8,000명 규모의 집단 월경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7만 명이 넘는 대규모의 월경은 전례가 없었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유럽 언론에서는 한 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국경 붕괴 열흘 전인 지난달 20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4년 만에 알제리를 방문해 관계 복원에 나섰다는 것이다. 서사하라 영유권을 두고 알제리와 앙숙 관계인 모로코로서는 달갑지 않은 행보였다. 이탈리아 국제정치 연구소(ISPI)의 이주 분야 연구원 마테오 빌라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보통 한 달에 수백 명 규모인 이 루트에 하룻밤 새 6만 명이 몰리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모로코 당국이 이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국경 감시를 의도적으로 풀었다는 것인데,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아직 없다. 

더욱 확실한 것은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사정이다. 모로코의 청년실업률은 30%에 육박한다. 세우타에서 돌아간 21세 청년은 교사가 되고 싶지만, 고향에서는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고, 스페인에는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갈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국경 감시가 느슨해졌다는 소식이 SNS를 타고 퍼지자, 이 절박함이 한꺼번에 국경으로 쏟아진 것이다. 

사건 이전부터 곪아있던 상처

이 사태를 특이한 돌발 사건으로만 보면 안 된다. 10년 넘게 곪아온 상처가 이번에 터진 것이다. 2015년으로 돌아가면 훨씬 큰 규모의 위기가 있었다.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며 유럽 난민 신청자는 2013년 43만 명에서 2015년 130만 명 이상으로 폭증했고, 지중해 밀입국 사망자도 600여 명에서 3,500여 명으로 급증했다. 당시의 더블린 조약(난민이 최초 도착한 국가가 심사 책임을 진다)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관문국가들에게 부담을 집중시켰다. 그 이후 유럽이 택한 해법도 근본적 개혁이 아니라 임기응변이었다. 2015년 독일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한시적으로 통제하며 솅겐 체제의 첫 균열을 드러냈고, 2016년에는 튀르키예가 난민을 대신 수용하는 대가로 EU 가입 논의와 경제 지원을 약속받았다. 

세우타 사태 이후의 일도 비슷하다. 이탈리아는 사건 다음 날 곧바로 스페인과의 솅겐 협정을 중단했고, 22개 회원국이 스페인을 겨냥한 공동서한에 서명했다. 정작 세우타로 들어온 이주민들이 다른 유럽 국가로 넘어간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나온 반응인 셈이다. 이후 8월 4일 스페인이 유입 인원 대부분을 송환했다고 발표하자, EU는 하루아침에 비난에서 연대 표명으로 돌아섰다. 

왜 보수-극우 정당이 지지받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국경이 뚫리는 장면을 목격한 유권자에게 “더 강하게 막겠다”라는 약속만큼 직관적으로 와닿는 말은 없다. 스페인 복스는 이번 사태를 “침략”이라 규정했고, 프랑스 르펜은 솅겐 자유 이동을 EU 시민에게만 허용하겠다 밝혔으며, 트럼프 미 대통령까지 이를 “재앙”이라 부르며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눈으로 확인되는 위기 앞에서 “막겠다”라는 한마디가 표를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문제는 이 강경론의 근거가 실제와 다르다는 점이다. 극우 진영이 요인으로 지목한 스페인의 이주민 합법화 법령은 사실 70만 명 서명과 여야 압도적 찬성(310표)으로 통과된 현실적 통합 정책이지 국경 개방이 아니다. 여론조사 역시 유권자 다수가 전면 개방도 봉쇄도 아닌 ‘선별적 관리’를 원한다는 결과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럼에도 강경론이 매번 힘을 얻는 이유는, 세우타 같은 극적인 장면 하나가 이 복잡한 여론의 실제 모습보다 훨씬 빠르게 유권자의 감정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우타 현지의 무슬림·모로코계 주민들은 극우 정치인들의 방문에 맞불 시위로 맞섰고, 한 참가 대학생은 이들이 인도주의적 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세우타의 사태는 우선 진정됐다. 스페인은 모로코와의 해상 국경이 500m 길이의 부유식 장벽을 설치하며 재발 방지에 나섰고, 유럽은 프론텍스 지원 확대와 모로코와의 협력 재검토를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남긴 질문은 국경 관리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2015년의 위기도, 2021년의 세우타노, 그리고 이번 세우타 사태도 결국 같은 구조에서 반복됐다. 관문국가에 부담이 쏠리는 체제, 위기가 닥치면 연대 대신 각자도생으로 돌아서는 EU,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매번 목소리를 키우는 극우 정치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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