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TECH]“세계 생태 수도” 브라질 쿠리치바의 도시 계획 이야기

쿠리치바는 어떻게 대중교통, 녹지, 재활용 실험으로 도시를 고쳤나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강세준 기자]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언제나 거대한 인프라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교통 체증이 심해지면 대중교통을 새로 짓고, 쓰레기가 쌓이면 수거 차량을 늘리고, 홍수가 반복되면 배수 시설을 확장하는 방식은 가장 익숙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브라질 남부 파라나주의 주도 쿠리치바는 다른 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준 도시다. 쿠리치바가 도시계획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이유는 단순히 버스 교통이 잘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도시는 교통, 토지 이용, 보행 공간, 녹지, 폐기물 관리, 저소득층 지원을 따로따로 보지 않고 하나의 도시 시스템으로 묶었다.

브라질 남부 파라나주의 주도 쿠리치바는 오랫동안 ‘세계 생태 수도’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다. 브라질의 대도시를 떠올릴 때 흔히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 상파울루의 거대한 스카이라인, 브라질리아의 계획도시 축을 먼저 떠올리지만, 도시계획 교과서와 환경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도시는 쿠리치바였다. 1인당 녹지 면적이 50㎡를 넘는 도시, 버스 전용차선을 도시의 뼈대로 만든 도시, 쓰레기를 모아오면 식료품과 버스표로 바꿔준 도시라는 이미지가 쿠리치바를 다른 브라질 도시들과 구분했다.

쿠리치바의 평판은 처음부터 완성된 친환경 도시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이 도시는 해발 약 9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브라질의 많은 열대 해안 도시들보다 기후가 비교적 온화한 편이지만, 기후만으로 생태도시가 되지는 않았다.

쿠리치바는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급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많은 아메리카의 도시들, 특히나 브라질 수도인 브라질리아가 그랬듯 쿠리치바도 미국의 자동차 중심 도시계획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 당시 쿠리치바는 1943년 프랑스의 도시계획가 알프레드 아가시(Alfred Agache)가 수립한 아가시 계획이라는 계획 토대 아래에 도시개발을 진행했는데, 이는 현재 미국이 그렇듯 도로를 넓히고 고속도로망을 뚫어 자동차가 시원하게 달리게 한다는 미국식 로버트 모지스(Robert Moses)형 도시계획과 궤를 같이 한다. 이 계획은 넓은 도로, 방사형 간선망, 자동차 이동을 중심에 놓은 전형적인 근대 도시계획을 토대로 도시계획을 수립했고, 당시 세계 여러 도시가 그랬듯 쿠리치바 역시 도심을 더 많은 차량이 통과하는 공간으로 만들려 했다.

이의 정점으로 1960년대 후반 쿠리치바 시정부는 중심가 대도로인 11월 15일 거리(Rua XV de Novembro)를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 수준으로 대폭 확장하는 계획을 확정하고 공사를 집행하려 했는데, 이는 현재도 미국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도심 한복판을 고속도로와 입체교차로가 찢고 지나가는 광경과 비슷한 공사였다.

그러나 방향이 바뀐 시점은 1970년대 초였다. 당시 새로 당선되었던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과 젊은 도시계획가들은 도심을 관통하는 자동차 중심 계획을 뒤집었다. 이들은 사람들이 손쓸 수 없는 주말(금요일 밤~월요일 아침)을 틈타 급속도로 11월 15일 거리의 현장을 뜯어내고 도로를 보행자 공간으로 전환했다. 상인들은 처음에 반발했는데, 이들은 차가 사라지면 손님도 줄어든다고 봤기 때문이다. 월요일 출근길 갑자기 차도가 사라진 것을 본 운전사들이 시위를 진행하려고 하자 시장은 오히려 거리에 어린아이들을 모아놓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게 하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시위를 막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인들의 처음 우려와는 달리 차량 대신 보행자가 늘고, 사람들이 거리에 머무르기 시작하면서 상권은 오히려 살아났고, 반대하던 상인들의 반응도 바뀌기 시작했다.

쿠리치바식 도시계획은 여기서 출발했다. 도심을 차량 흐름의 통로로 둘 것인지, 사람이 걷고 머무는 장소로 바꿀 것인지의 선택이었다.

이후 쿠리치바는 도시가 사방으로 퍼지는 확산형 구조 대신 주요 교통축을 따라 길게 성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이후 마련된 도시계획은 도심에서 뻗어나가는 주요 축을 정하고, 그 축을 따라 고밀도 개발과 대중교통을 배치했는데, 버스 전용차로는 이 계획의 중심에 놓였다. 외곽의 승객은 지선 버스를 타고 환승 터미널로 이동한 뒤, 전용차로를 달리는 급행버스로 갈아탔다. 주거, 상업, 도로, 정류장이 같은 축 위에 배치되면서 버스망은 도시 위에 나중에 덧붙인 교통수단이 아니라 도시 성장의 방향선이 됐다.

쿠리치바의 BRT는 1974년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중앙 버스 전용차로, 튜브형 정류장, 승차 전 요금 지불, 빠른 승하차, 지선과 간선의 환승 체계를 특징으로 하는데, 일반적인 버스가 차량 정체 속에서 멈춰 서고 매 정류장마다 승객들이 카드를 다 댈 때까지 기다릴 때, 쿠리치바의 급행버스는 전용차로를 따라 움직였다. 승객은 정류장 안에서 미리 요금을 내고 기다렸고, 버스가 도착하면 지하철 승강장처럼 빠르게 타고 내렸다. 이 구조는 특히나 지하철을 깔 정도의 재정이 부족한 개발도상국 도시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보고타, 과테말라시티, 자카르타, 광저우, 세종특별시 등 여러 도시가 쿠리치바식 BRT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 쿠리치바의 삼중 도로 시스템, 출처: ResearchGate, 번역: 강세준 기자 >

쿠리치바의 교통축은 이른바 ‘삼중 도로 시스템’으로 짜였다. 가운데에는 BRT 전용차선이 놓였고, 그 양옆에는 도심 활동을 받치는 메인 도로가 배치됐다. 메인 도로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와 상업 및 비즈니스 기능이 들어갔으며, 건물 저층부에는 상업시설이 들어서 보행자와 대중교통 이용자가 바로 생활권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더 바깥쪽에는 60km/h 수준의 일반통행 도로와 저밀도 주거 지역이 배치됐다. 교통축에 가까울수록 밀도와 용도가 높아지고, 바깥으로 갈수록 주거 밀도가 낮아지는 구조였다. 버스 전용차로, 메인 도로, 일반통행 도로가 층을 이루면서 대중교통과 자동차 흐름을 분리했고, 고밀도 개발은 BRT 축 주변으로 집중됐다.

쿠리치바의 BRT가 주목받은 이유는 버스 자체의 속도만이 아니었다. 버스 전용차로 주변으로 도시의 상업권이 형성되었고 환승 터미널 주변에는 생활권이 형성되었는데, 많은 도시에서 버스 노선은 이미 만들어진 도시의 빈틈을 따라 움직인다. 쿠리치바에서는 반대로 교통축이 먼저 도시의 골격을 만들고, 그 주변에 주거와 상업 기능이 붙었다. 그래서 쿠리치바의 도시계획은 BRT 노선, 정류장 위치, 도로 폭, 건물 밀도, 보행 동선이 같은 계획 안에서 움직인, 교통정책과 토지 이용계획의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쿠리치바가 생태도시로 불린 배경에는 단순히 대중교통 도시 계획뿐만이 아닌 녹지 정책 또한 크게 자리 잡고 있다. 1970년대 이전 쿠리치바의 1인당 녹지 면적은 매우 낮았지만, 이후 대형 공원과 보호구역이 빠르게 늘었는데, 자이메 레르네르 연구소는 쿠리치바의 1인당 녹지 면적이 과거 0.5㎡ 수준에서 55㎡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한다. 쿠리치바 시의 기후계획 자료도 1972년부터 1992년 사이 녹지가 1인당 0.5㎡에서 50㎡로 늘었고, 이후 58㎡ 수준에 도달했다고 기록한다. 사실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부분은 쿠리치바는 단순히 녹지 비율을 통계적 수치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승화시킨 데에 있다. 쿠리치바의 바리귀 공원, 상로렌수 공원, 탕구아 공원 등은 풍경을 좋게 만드는 장소이면서 물을 받아내는 공간, 열을 낮추는 공간, 시민이 걸어갈 수 있는 생활 공간이었는데, 이 같은 녹지는 쿠리치바의 도시 이미지를 만드는 주요 공간이 됐다.

쿠리치바가 “세계 생태 도시”로 불리는 데 일조한 또 다른 유명한 제도는 쓰레기 교환 프로그램이다. ‘Câmbio Verde’, 즉 ‘그린 익스체인지’로 알려진 이 프로그램은 주민들이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지정된 장소로 가져오면 식료품, 버스표, 학용품 등으로 교환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좁은 골목이나 비공식 주거지처럼 수거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지역에서 효과가 컸는데, 시가 모든 지역에 더 많은 수거 차량을 보내기보다, 주민이 쓰레기를 직접 모아오게 하고 그 대가를 생활물품으로 지급하였다. 거기다가 이 제도는 돈이 없는 가난한 주민들에게 무작정 대가 없는 지원금을 퍼주는 대신 재활용 쓰레기 모으기라는 일자리와 참여 기회를 제공함에 따라 저소득층 주민들을 사회 구조 안으로 편입시켜 빈곤층을 도시 환경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저소득층 주민들은 식료품을 얻고, 버스표를 받아 이동 비용을 줄였으며, 행정 입장에서는 수거가 어려운 지역의 폐기물 부담을 줄이는 윈윈 구조를 만든 셈이다. 이 선순환 속에서 도시의 위생 상태와 치안 상태는 개선되었으며, 친환경 도시라는 이미지를 만든 것은 공원과 버스뿐 아니라 이런 생활 단위의 제도였다.

이렇게 BRT, 공원, 쓰레기 교환 프로그램 등만 보면 쿠리치바는 유토피아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런 모델도 시간이 지나며 한계에 부딪혔다. BRT는 원래 개발도상국 도시에서도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대량 수송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쿠리치바는 브라질에서 인구 순위로 10위권 안에 들만큼 광역권 인구가 계속 커지며 출퇴근 시간 혼잡이 극도로 심해졌다. 특히 간선축에 수요가 집중되며 일부 노선은 사실상 포화 상태에 가까워졌고, 승객 수 감소와 요금 인상 문제도 뒤따랐다. 자동차 증가도 역설적인 장면이었다. 쿠리치바는 대중교통 중심 도시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브라질 주요 도시 가운데 자가용 보유율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아무리 BRT가 빠르다 한들 도로에 의존하는 것은 마찬가지라 출퇴근 피크 시간대에 주요 정류장 사이를 오가는 게 아닌 한 결국 개인 자가용을 타는 게 훨씬 더 빠르다. 거기다가 브라질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치안 문제와 소득 격차도 쿠리치바가 피할 수 없었던 문제점이다.

그럼에도 쿠리치바가 항상 도시계획의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도시는 미국, 유럽, 중국 같은 지역들처럼 돈이 충분해서 거대한 인프라를 마음껏 지은 사례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제한된 예산과 급속한 성장 속에서 버스, 보행자 거리, 공원, 재활용 제도 등의 수단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만든 기적과도 같은 사례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개발도상국 도시들은 쓰레기 문제, 녹지 부족 문제, 난개발 문제, 교통체증 문제에서 이 상황을 모범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간 쿠리치바를 모방하며, 지금도 계속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거기다가 쿠리치바의 진짜 특징은 BRT 하나만이 아니라 도시계획 자체에 있는데, 이 도시는 교통 하나만 떼어내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버스 전용차로 주변으로 고밀도 개발을 유도하여 중심가의 보행 공간과 상업 기능을 연결했고, 재활용 제도를 저소득층 지원과 연결하여 교통·환경·복지·토지 등 여러 도시 문제를 하나의 운영체계 안에 유기적으로 연결시켰다.

결국 쿠리치바의 별칭이 ‘세계 생태 수도’로 남은 이유는 도시 곳곳에 나무가 많아서만이 아니다. 이 도시는 버스가 달리는 길, 사람이 걷는 거리, 휴식처가 되는 공원, 쓰레기가 식료품으로 바뀌는 제도를 같은 도시 운영 안에 넣었다. 도시계획은 거대한 건축물이나 새로운 노선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어떻게 이동하고, 어디에 머무르며, 쓰레기와 물과 녹지가 어떤 흐름으로 움직이는지까지 정하는 일이다. 쿠리치바의 강점은 바로 그 흐름을 한 도시 안에서 맞추려 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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