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11기 / 왕완칭 기자] 한국인을 정의하는 가장 독특한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정(情)’과 ‘우리’일 것이다. 과거 농경 사회의 두레와 품앗이에서 기원한 이 공동체 철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해 왔다. 혹자는 대면 접촉이 줄어든 디지털 시대에 이러한 끈끈한 유대감이 사라질 것이라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정’은 결코 소멸한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스마트폰과 SNS라는 새로운 매개체를 통해 더욱 빠르고 넓게 변용되고 있다. 본 기사에서는 한국 특유의 공동체 철학이 디지털 원주민인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는지 탐구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우리’ 문화는 서구의 개인주의와는 차별화된 독특한 사회적 역동을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서구권 언어에는 ‘우리(Uri)’라는 단어를 한국인처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생경해하는 부분도 ‘내 엄마(My mom)’가 아닌 ‘우리 엄마(Our mom)’라고 표현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우리’ 의식은 디지털 공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단순히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 연결을 통해 ‘함께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확인하려고 한다. 단체 채팅방에서의 끊임없는 대화나 SNS를 통한 일상 공유는 과거 동네 골목길에서 나누던 정(情)의 현대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차가운 액정 너머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고민을 나누는 행위는 디지털 기술이 오히려 ‘우리’라는 울타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의 ‘정’은 외국인들에게 매우 매력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한 해외 칼럼니스트는 한국의 정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따뜻하고 끈적한(Sticky) 감정”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이 ‘끈적함’은 때로 지나친 간섭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이 된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군가의 어려운 사정을 보고 익명의 사용자들이 ‘돈쭐(돈으로 혼내주는 응원)’을 내주거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순식간에 기부 행렬이 이어지는 현상은 디지털 환경에서 발현된 정(情)의 힘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온라인 게임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형성된 ‘랜선 인연’이 오프라인 못지않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이라는 정서가 물리적 거리를 넘어 디지털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혈관을 통해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물론 디지털 시대의 공동체 문화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라는 강한 결속력이 때로는 ‘우리 편이 아닌 사람’을 배척하는 집단 따돌림이나 사이버 불링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또한 공동체적 지혜에서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사이버 불링을 감시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디지털 보안관’ 활동을 하거나,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챌린지를 주도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는 과거의 정이 수동적인 ‘나눔’이었다면, 현대의 정은 능동적인 ‘연대’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정과 우리는 고착된 유산이 아니라 기술과 결합하여 끊임없이 변모하는 살아있는 철학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정(情)과 우리 문화는 디지털이라는 차가운 기술 속에서도 따뜻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형태는 스마트폰 속 픽셀과 데이터로 변했을지언정,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바라는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위즈덤 아고라의 독자들도 오늘 하루, 디지털 세상 속에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정 한 조각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보이지 않는 연결망을 타고 흐르는 우리의 진심이 세상을 더욱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