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이서연 오피니언 투고] 인공지능과 로봇, 자율주행자동차 등 최첨단 기술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지만, 대한민국은 이를 실현할 인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성장 동력이 약해지고 있는데, 여기에 지나친 의대 쏠림 현상까지 더해지고, 그나마 남은 인재들마저 해외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 그 결과 바이오산업이나 반도체 같은 핵심 산업의 발전을 이끌 인재들이 줄어들면서 우리나라의 기술 발전 속도도 느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스탠퍼드대학교 인간중심 AI 연구소가 발표한 ‘2025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AI 인재 순유출입은 인구 1만 명당 -0.36명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결과는 개인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국가적으로는 심각한 문제다. 한국의 AI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만큼 반도체나 공학 분야의 연구 인재 확보가 절실하다. 그래서 국가가 직접 나서 전략 산업 인재 유입을 위해 전공 선택에 경제적 지원이나 제도적 개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의대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면, 중국은 오히려 공대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린아이들까지도 공대를, 특히 컴퓨터공학과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우상은 중국의 량원펑이라는 인물인데, 생성형 인공지능 ‘딥시크(DeepSeek)’의 개발자이다. 오픈AI의 챗GPT가 엔비디아의 고성능 반도체를 이용해 데이터를 학습시켰다면, 딥시크는 엔비디아의 최고급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고도 1/10의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을 구현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로 인해 당시 엔비디아의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중국의 설날 행사에서는 수많은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중심을 잡고 다양한 동작을 선보였다. 바로 ‘유니트리(Unitree)’의 작품이었다. 넘어지지 않는 로봇, 사족보행 로봇 등 새로운 로봇들이 계속 생산되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이런 로봇을 만들 수 있지만, 중국은 가격까지 저렴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2024년 로봇 시장 규모는 약 27억 6천만 위안(약 5,244억 원)으로 추정되며, 2029년에는 750억 위안(약 14조 2,5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AI 연구자 출신국 통계에서 중국은 47명을 배출했지만, 한국은 2명뿐이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었지만, 2021년쯤에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명문대 출신 중국 엔지니어의 연봉은 약 50만 위안(약 9,500만 원)이며, 경력이 쌓이면 100만~150만 위안(약 1억 9천만~2억 8,500만 원)까지 오른다. 중국의 1인당 GDP를 생각하면 높은 연봉으로 매우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중국의 발전을 ‘조금씩 따라오는 나라’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중국 창업자들의 자산 기록을 보면 대부분 공대 출신으로, 중국의 이공계에는 많은 인재가 몰리고 있다.
중국의 이런 성과는 국가의 전폭적인 ‘수월성 교육’ 덕분이다. 중국은 초·중·고등학교 단계부터 우수한 학생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데, 이를 ‘수월성 교육’이라 한다. 공대로 인기가 높은 저장대에 입학하면 ‘주커전 반’이라는 상위 1% 엘리트반에 들어가기 위한 선발시험을 치른다. 이 반에서는 대학 수준의 교육이 이뤄진다. 또, 과학고 수준의 특수목적고인 잉저우 고등학교에는 신소재, 인공지능, 물리 혁신, 반응 메커니즘 실험실 등이 있고, 대학 2학년 수준의 수업이 진행된다. 여기에 학년별로 40명만 들어갈 수 있는 ‘창신반’이라는 엘리트 반도 운영한다.
또한 중국은 인재 확보를 위해 ‘천인계획’을 추진해 2008년부터 10년간 해외 석학 7000여 명을 귀국시켰다. 이들에게는 높은 지위와 연구비, 그리고 원하는 만큼의 연구 인력까지 제공했다. 해외 연구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그림자 연구실’ 제도도 도입했다. 인재들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 분야의 엘리트 100명에게 ‘원사’라는 국가적 지위를 부여하는 제도도 있다. 원사들은 평균 25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으며, 많게는 1조 원에 달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하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들이다.
우리나라도 한때 공학도를 최고의 직업군으로 여긴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과학기술을 중시하며 물리학과, 공대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1982년 국산 PC를 생산하고, 1985년에는 퍼스널컴퓨터 경진대회가 열렸으며, 1986년에는 국산 자동차가 미국에 수출되었다. 이공계 인재들이 활발히 진출한 덕분에 1990년대 대한민국은 현대적 과학기술 국가로 성장했다. 세계 최초로 64MB D램을 개발했고, 자율주행자동차도 1995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개발직과 연구직이 큰 타격을 입었다.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선호가 급격히 커졌다. 이때부터 의사가 ‘가장 안정적인 직업’으로 인식되었고, 의대 쏠림 현상이 본격화되었다.
현재 의대 쏠림으로 인해 경쟁이 과열되고, 사교육 시장은 ‘의대 맞춤 코스’로 재편되고 있다. 어린 나이부터 영어유치원과 수학학원을 다니며, 중학생이 되면 내신 대비와 특목고 대비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강남 8학군, 자율형 사립고, 명문고 학생들의 상당수가 의대를 목표로 한다. 일부 학부모는 웩슬러 지능검사를 통해 자녀의 이과 적성을 파악하고, 의대 진학 가능성을 상담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중등 수학을 끝내고, 중학교에서는 고등 수학을 모두 마치는 학생도 있다. 일부는 교과서를 10회독 이상 반복하며 공부한다.
의대를 향한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2025년 기준 의대 합격생 중 재수생이 28.5%, 삼수생이 15.7%, 사수 이상이 14.1%로, 절반 이상이 여러 번 도전한 학생들이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같은 명문대에 합격하고도 다시 의대를 준비하는 비율이 42.3%에 이른다.
2024년 기준 국외 체류 중인 이공계 한국인 유학생은 29,770명이며, 그중 44.9%가 미국에, 13.9%가 일본에, 11.8%가 캐나다에 체류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인재 육성을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 중이다.
첫째, 과학기술 육성을 위해 337개 세부 과제에 9조 2,825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둘째, 디지털 기반 수학교육 확대, 과학기술 체험 프로그램 운영,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육성 등으로 기초교육을 강화하고 장학제도를 확대할 계획이다.
셋째, 청년 연구자들을 위해 연구 장려금 지원, 과학기술전문사관 양성, 개인 기초연구 지원을 확대한다.
넷째, 여성 과학기술인 대체 인력 지원, 첨단산업(반도체·바이오헬스·이차전지 등) 집중 투자, 중견기업 R&D 지원 등도 추진된다.
나는 전공 선택에 국가가 어느 정도 제도적 개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 많은 인재가 의대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양한 의학 분야보다는 피부과나 성형외과처럼 수입이 높은 분야에만 집중되는 현상도 문제다. 국민의 인식 변화, 정부와 기업의 노력, 그리고 개인의 진로 다양성에 대한 교육이 함께 필요하다. 초·중·고 단계에서 다양한 직업 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학교에서도 주요 교과와 연계한 직업 기반 교육을 강화하면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