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약초 바른 침팬지, 본능인가 의학인가?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10기 / 윤채원 기자]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외상을 치료하고 질병을 관리하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현대의 병원, 약물, 외과적 시술로 대표되는 의학 체계는 고도로 조직화된 인간 문명의 산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우간다 부동고 숲(Budongo Forest)에서 야생 침팬지가 동료 개체의 상처에 특정 식물 물질을 바르는 장면이 관찰되며, 이 오래된 전제에 다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관찰은 단순한 행동 기록을 넘어, 의학의 진화적 기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즉, 치료 행위는 인간 고유의 문화적 발명인가, 아니면 진화적으로 보존된 생물학적 행동인가?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이를 완화하려는 공감적 경향은, 단지 사회 제도에 의해 학습된 것이 아니라 생존과 집단 유지에 유리했던 적응적 특성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질문은 생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 든다. 공감, 돌봄, 사회적 연대와 같은 요소들이 어떤 사회에서 어떻게 제도화되고 기술화되는지를 탐색하는 일은 의학을 사회 제도의 일부로 바라보는 사회과학적 접근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따라서 의학의 기원을 재조명하는 일은 곧 인간 행동의 뿌리와 생명체 간 상호작용의 본질을 탐구하는 일이자,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의료가 어떻게 제도화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은 궁극적으로 의료 윤리, 공공보건 정책, 인간-비인간 생명체 간 권리 논의에까지 확장되며,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선 포스트휴머니즘적 시각을 요구한다.

실제로 자가치유(self-medication) 행동은 인간 이외의 생물에서도 폭넓게 관찰된다. 이는 동물이 외부 병원체나 내적 질환에 대처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생물학적 자원을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학계에서는 이를 ‘동물 약물학(Zoopharmacognosy)’이라 정의한다. 영장류, 조류, 곤충 등 다양한 동물 종에서 특정 식물, 흙, 곤충을 의도적으로 섭취하거나 상처에 적용해 건강 상태를 조절하려는 행동이 보고되고 있다.

우간다의 부동고 숲에서 진행된 침팬지 행동 연구는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사례다. 연구진은 15개월간의 야외 관찰을 통해 총 76건의 치료 행동을 기록했고, 이 중 약 22건은 타 개체를 대상으로 한 치료 행위였다. 침팬지는 식물 잎이나 줄기에서 특정 물질을 추출하기 위해 씹은 뒤, 그 점액질을 다른 개체의 외상 부위에 반복적으로 도포하는 행위를 수행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부 치료 대상이 비혈연 관계의 개체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회적 유대, 공감적 반응, 혹은 집단 내 생존율 향상과 관련된 전략적 행동일 가능성을 시사하며, 단순한 본능적 반응을 넘어 인지 기반의 선택적 돌봄 행동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연구팀이 채취한 식물 샘플을 실험실에서 분석한 결과, 전체 시료의 약 88%는 항균 특성을, 약 33%는 항염 작용을 보였다(Budongo Forest Chimpanzee Study, Current Biology, 2022). 일부는 인간의 전통 약초학에서 실제로 사용되던 종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생화학적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침팬지가 단순한 무작위 선택이 아니라, 경험 혹은 관찰을 통한 ‘효능 기반 선택 행동’을 보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침팬지의 치료 행동은 의학이라는 개념의 경계를 다시 그리게 한다. 만약 동물이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특정 물질을 선택해 행동한다면, 우리는 그 행위를 어디까지 ‘의료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이러한 행동이 단순히 본능적인 위생 관리가 아니라, 상황 판단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연한 행동임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사회성 높은 종일수록 자가치유 및 동료 치유 행동이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공감 능력과 치료 행동 사이의 신경학적 연결고리를 시사한다. 이와 관련해 2019년 『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사회성 높은 영장류일수록 전측대상피질(ACC)이 발달해 공감적 의사결정 능력이 강화된다는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관찰은 인간 의학의 시작이 특정한 시점이나 사건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진화적 선택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였음을 암시한다. 침팬지의 행동은 의학이 단순히 문명의 부산물이 아니라, 생명체의 생존 전략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일종의 적응을 위한 행동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의료의 제도화가 특정 사회 조건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시사하며, 비인간 사회의 구조와 규범에 대한 비교 사회학적 탐색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의학을 인간만의 고등한 지식과 제도의 산물로 여겨왔다. 하지만 침팬지의 사례는 그 기원이 훨씬 더 오래되었고, 넓게 퍼져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치료는 단지 도구나 제도를 통해 실현되는 행위가 아니라, 공감과 돌봄, 사회적 연결성을 기반으로 진화해 온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의학의 기원을 다시 바라보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회적 돌봄의 기원을 동물의 세계에서 찾는 일은, 인간 사회의 의료 제도와 공공보건 정책의 설계 방식에도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의료가 어디서 시작되었느냐는 질문은 곧, 의료가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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